인간과 자연의 안녕'...독소 중의 독소
인간과 자연의 안녕'...독소 중의 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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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 홍기빈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그대는 만약 어렵게 꾸려가고 있는 사업에 누군가 큰 관심을 나타내며 선뜻 큰 돈을 투자하겠다고 나선다면 어찌하겠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며 그 누군가의 투자금을 쉽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 투자자가 가까운 벗이든 잘 모르는 외국인이든 간에.

그런데 그 투자자가 마치 공짜로 주는 것처럼 큰 자금을 내놓은 뒤, 그대 사업체가 남긴 잉여금의 일부를 받으면서 그대의 사업운영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도전할 수 있다면 어떡하겠는가. 아마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그 투자금을 받아들이겠는가. 아마, 얼토당토 않은 짓이라며 화부터 먼저 내지 않겠는가.

서울 옥수동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며 <한겨레>, <말>, <대자보> 등에 국제정치경제 칼럼을 쓰고 있는 경제학자 홍기빈이 지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녹색평론)는 한미FTA 협상내용에 들어 있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시커먼 속내를 샅샅이 훑어낸 우리나라 최초의 책이다.

정부의 '계몽'에 반대하기 위한 책

"한미FTA는 단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다. 금융에서 농업, 서비스를 거쳐 숱한 부문에서 무수한 쟁점들과 난제들이 득실대는, 그야말로 빈대와 벼룩으로 가득 찬 초가집이다. 꼼짝없이 그 초가집에서 대대손손 삶을 펼쳐야 하는 우리들은, 그래서 한미FTA가 이대로 체결되면 빈대와 벼룩과 온갖 흉측한 벌레들이 창궐하여 사방에서 물어뜯기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당연히 느끼게 된다." - '서문', 몇 토막

이 책은 지금 한창 진행 중인 한미FTA 협상안에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문제점과 위험성, 한국 정부의 안이한 사고 등을 거세게 꼬집는다. 그리고 이 책 곳곳에서 한미FTA 협상에서 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란 이 괴물 같은 제도를 꼭 빼야 하는가, 앞으로 한국 정치, 경제의 나아갈 길은 무엇인가를 조목조목 밝힌다.

그렇다고 글쓴이가 한미FTA 협상에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만 빠지면 한미FTA를 체결해도 아무런 탈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글쓴이는 오히려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속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독소조항들을 낱낱이 짚어내며, 한미FTA 협상이 앞으로 우리나라 경제에 얼마나 큰 절벽이 되는가를 꼼꼼하게 곱씹는다. 한미FTA 협상은 곧 빈대와 벼룩 몇 마리를 잡기 위해 초가집에 불을 지르는 것과 같다는 것.

홍기빈은 이 책의 머리글에서 "이 책은 한국정부의 '계몽'에 대한 '반계몽'을 위해 씌어졌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일방적인 '계몽'의 논리는 피계몽자뿐만 아니라 계몽자 자신도 매한가지로 희생시킨다, 일방적인 논리를 휘두르고 또 거기에 휘둘리기 이전에, 가급적 폭넓은 정보를 바탕으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 대해 냉철하게 살펴보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외국인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빛 좋은 개살구'

"라우더와 CME는 아예 체코정부를 사냥감으로 삼기 시작한다... 라우더와 CME는 각종 양자간 투자협정에 포함되어 있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조항에 호소하여 체코 정부를 국제 중재기관으로 끌고 가 손해보상을 청구하기로 했다. 이들은 체코 정부의 감독 소홀이 결국 자신들이 체코에 투자한 자산의 가치를 심대하게 훼손했고, 결국 이는 사적 소유물의 '수용'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마땅히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 31~32쪽, '2003년 체코에서 있었던 일이 '남의 일'일까' 몇 토막

홍기빈은 미국인 로널드 라우더와 체코의 노바TV 사이에 있었던 사례를 들며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우리 정부가 주장하는 것과는 그 뿌리부터 다르다고 말한다. 즉,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외국인 투자자를 보호하는 '방패'가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 대상국의 법적, 제도적 장치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기 위한 공격 무기인 '창'이라는 것이다.

홍씨는 최근 3년 동안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라는 제도를 통해 벌어지는 국제 중재절차의 건수가 폭증하고 있으며, 그 결과 투자대상국 정부가 물게 되는 보상금 액수도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투자대상국의 각종 조치라는 것이 경제적인 것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환경, 보건, 안전 등에도 모두 포함된다고 되뇐다.

한미FTA 속에 들어 있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이제 경제적 이해득실의 차원을 넘어, '인간과 자연의 안녕'이라는 밑뿌리까지 송두리째 뒤흔드는 독소 중의 독소라는 것이다. 그리고 투자자 보호라는 것이 그저 외국 투자자의 재산이 물리적으로 침해되는 것을 예방하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현금 수익을 낳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자산의 가치가 줄어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곧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외국 투자자의 현금 수익의 흐름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국가(정부)의 조치는 모두 이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어 그 절차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문제들이 충분히 고려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단지 투자자와 투자대상 국가가 만나 오직 상업적인 이해관계만을 절충하는 '비밀스런 장'이다.

미국 안에서도 반대 여론 높아

"본 위원회는 나프타를 포함한 자유무역협정은 지방정부, 주정부, 중앙정부 등 모든 차원에서 정부의 규제에 도전할 수 있을 만한 부당한 권력을 미국 기업들에게 넘겨주게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 174쪽, '호주는 어떻게 직접 소송제를 물리쳤나' 몇 토막

홍기빈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도는 1990년대 초중반까지 외채위기와 구조조정을 통해 제3세계 각국의 '거시경제 차원의 지구화'를 마무리 지은 세계 자본이 이제 세계 각국의 '미시경제 차원의 지구화'라는 기획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무기"라고 못박는다. 그리고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실제로 동원되었던 사례들을 수자원, 환경정책, 공공정책의 세 가지로 나누어 살핀다.

이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때문에 위태로워지는 국가 정책과 투자대상국 국민들의 삶의 범위가 얼마나 폭넓어지는지, 그러한 목적을 추구하는 외국 투자자들의 행태와 전략이 얼마나 집요하고 악랄한지를 꼼꼼하게 더듬는다. 그리고 이 제도가 얼마나 넓은 영역에서, 많은 이들에게 위협을 주는 것인지 우리나라 밖의 사정을 통해 밝혀낸다.

글쓴이는 얼마 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례를 들춘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일반국민들부터 지방정부, 중앙정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제도의 위험성과 문제점을 철저하게 인식했다. 또한 그 때문에 미국과의 FTA 협상에서 이 제도의 관련 조항을 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마침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도를 무릎 꿇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FTA 협상에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도를 폐기하려는 움직임이 미국 내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난 미국 대선 때 대통령 후보였던 존 케리 상원의원이 이 제도의 문제점을 들추어내기 시작하면서 미국 곳곳에서도 반대 여론이 드높았다. 이는 곧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FTA 협상에서 이 제도를 빼버림으로써 미국 내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말해준다.

정부의 안이한 태도, 우리 경제 발등 찍을라

"정부는 지난 2월초 한미 FTA 협상 개시 선언을 한 이후로 한사코 우리 측 협상안의 공개를 거부했다. 그러자 한 언론이 그 내용을 입수해 지난 5월 19일 전격 공개했고('미국 기업에 한국 정부 제소권 보장'), 이를 통해 우리측 협상안의 8장 투자항목에 '국제중재를 이용한 적법 분쟁절차 보장', 즉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들어 있음이 확인됐다." - 186쪽, '한국정부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이해하는 방식' 몇 토막

글쓴이는 이 책의 끝자락에서 우리 정부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정부측 발표 자료를 중심으로 깊숙이 파고든다. 우리 정부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안이하게 나아가고 있는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우리 경제에 얼마나 큰 위험성을 끌어안고 있는지를 글의 씨줄과 날줄로 더듬는다.

이어 그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한국사회가 걸어온 길은 멕시코나 아르헨티나 등 남미 여러 나라들의 발걸음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한미FTA 체결을 서두르고 있는 정부의 편안한 태도가 결국 아르헨티나의 경우처럼 우리 사회 전체를 가라앉힐 수도 있는 첫 걸음마라는 것을 지적한다.

홍기빈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한미FTA 협상안에 들어 있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란 제도의 속살 속에 피멍처럼 깊숙이 박혀 있는 여러 가지 독소를 낱낱이 파헤침으로써 한미FTA의 문제점과 허구성에 날선 칼날을 갖다댄다. 그렇잖아도 지난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쓴맛 단맛 다 본 우리가 왜 우리 경제를 한꺼번에 몽땅 불태워버릴 한미FTA라는 '불새 포로젝트'를 또 짊어지려 하느냐며.

송기호(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는 "한국 정부가 자청하여 이 독소조항을 한미 FTA 협정문 초안에 넣음에 따라 이 제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경각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며, "이 책은 외국인 투자자가 어떻게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이용하여 국가에 도전하는지를 여러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병천(강원대 경제무역학부, 참여사회연구소장) 교수는 "누가 날더러 왜 한미FTA를 반대하는가, 왜 한미 FTA가 문제인가 딱 한 가지만 말해 보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인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꼽을 것이다"라며, "이 아담하지만 날카롭고 날렵한 '팸플릿' 형식을 띤 책은 한미 FTA의 심장을 향해 쏘는 화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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