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년에 비해 올 겨울이 좀 따뜻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해마다 그런 느낌을 받고 있긴 하지만 유난히 올 겨울은 추웠다, 라는 생각보다는 겨울인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저의 생각에 반기라도 들듯이 며칠 전부터 전국에 눈이나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중부지방이나 강원도 일대엔 엄청난 양의 눈이 내리고 있어 이래저래 피해가 심하다는 방송을 접하고 마음이 좀 무거웠습니다. 아무 탈 없이 잘 넘어가야 할 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 이곳 남부지방엔 비가 내립니다. 남부지방에서도 울산에는 눈 대신 비가 계속 내립니다.
비로 인해 차가워진 기온이 겨울다운 느낌을 전해주기는 하지만 모든 게 적당히 내리고 얼른 따뜻한 봄소식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저의 간절한 마음만은 아닐 거라 생각이 됩니다. 비가 며칠째 내리니 아침마다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도 번거롭고, 많은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버스 안에서도 이만저만 불편하게 아닙니다.
사람들 손에 제각기 들린 우산, 그 우산들을 쳐다보고 있으려니 문득 얼마 전의 일이 불현듯 스쳐갑니다. 우산하면 제일 먼저 남편이 떠오릅니다. 결혼하고 십 년을 지내면서 얼마나 많은 비오는 날이 있었겠습니까. 깔끔하고 좋은 우산을 사서 늘 신발장 한 모퉁이에 보관해 두었는데 비오는 날이면 자연스레 하나씩 없어졌습니다. 당연히 남편이 아침에 들고 갔거니 생각을 합니다. 한데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그 새로 산 우산 자리엔 새 우산 대신 낡고 오래되었거나 혹은 창살이 하나 떨어져 나간 우산이 하나씩 생겼습니다.
처음 몇 번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별 말을 안했습니다. 남편의 직업상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그리고 비가 와서 어디 식당이라도 들어가고 또 술 한 잔 하게 되면 바꿔올 수도 있으려니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횟수가 잦아지면서 저는 화도 나고 비오는 아침엔 늘 잘 챙겨오라는 당부를 몇 차례 더 해야 했습니다.
물건을 사거나 어디서 사은품 주는 것이 있으면 기를 쓰고라도 챙겨오고, 아는 사람한테서 얻어오기도 하고 어떨 땐 제 자신이 우산 모으기가 취미 같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싼 우산도 많이 있어 살 수도 있겠지만 살 때마다 느끼는 기분은 정말 짜증까지 섞입니다. 산 지 얼마 않았던 우산들이 줄줄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 우산을 사기보다는 자급자득 하는 마음으로 우산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길거리에 버려진 우산이라든지, 버스 안에서 누군가 두고 내린 우산(창피함이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남편을 생각합니다. 그러면 가능합니다), 상가나 학원 앞 사람들이 가져가지 않은 오래된 우산들을 우산꽂이에 꽂아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란 문구는 저를 행운으로 이끌어줍니다. 그리고 얼른 가서 쓸 만한 우산을 챙겨옵니다.
젊은 사람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싶겠지만 저 같은 경우를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심정입니다. 그래도 남편은 들고 나간 우산과 똑같은 건 아니지만 언제나 하나씩은 들고 옵니다. 그런 걸 보면 저의 남편은 요술쟁이인가 봅니다.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른 우산을 챙겨오니 말입니다. 신기하죠?
아직도 전 우산을 늘 챙깁니다. 남편이 중요한 모임에 가면 그 중 제일 괜찮은 것으로 건네고, 잃어버려도 괜찮거나 요술을 부려도 된다 싶은 건 그 중 제일 허름한 것으로 줍니다. 이런 저의 철저한 우산 챙기기에 남편은 아무 말도 못하고 우산을 받아 갑니다. 이제까지 자신이 우산 요술쟁이란 걸 몰랐던 남편, 며칠 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저의 속사정을 듣고 난 남편은 웃으면서 말합니다. 우산 요술은 이제 그만 부리고, 올해는 돈 많이 버는 요술, 우리 가족 건강해지는 요술, 각자 하는 일에 행복웃음 가득 선사하는 요술을 부릴까, 그렇게 말입니다. 지금도 우산은 그때그때 모아두는 저의 우산 취미는 계속되고 있지만 남편의 말처럼 돈 많이 벌고 우리 가족 아프지 않고 건강한 한 해로 남편의 요술이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길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