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 선생은 오전에 잠시 다녀간 김영길이란 학생의 모습을 불현 듯 회상했다. 너무나 깔끔했고 너무나 육감적이었으며 아울러 너무나 꿈꾸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렇기에 그것은 총체적으로 잊을 수 없는 인상을 그녀의 뇌리에 박아 놓았다. 무심코 대하고, 그리고 지나쳐 버리는 학생들과의 만남이다. 그것을 곰곰히 생각한다거나, 못잊어 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러나 이 학생의 경우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야들야들하면서도 투명한 듯했고, 여성적이면서도 강력한 남성적인 요소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홍 선생 자신이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진반의 지도교수를 맡아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어느 틈엔가 기꺼이 김영길 학생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고 작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알 수 없는 기대감이 가슴 한 구석에서 머리를 들고 있었다.
홍 선생은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왠지 자신의 마음이 퍽 가벼워져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아무래도 자신이 새로운 서클을 지도하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듯했다. 게다가 그 인상적인 학생의 모습이 서너 번 눈앞에 떠오르곤 했다.
이 강변 캠퍼스를 떠나 있던 자신의 마음이 이제는 지난 3개월간의 공백을 딛고 다시금 여기로 되돌아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이 자신의 삶의 터전인가, 가족이 있는 서울이 자신의 진정한 삶의 터전인가 금방 구별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강변 캠퍼스의 바람 부는 운동장에 서니 알 수 없는 감격이 가슴을 메워 왔다. 그것은 물론 격렬한 감정의 파동은 아니다. 미풍처럼 흘러가는 감격의 여린 흔들림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 서울의 어느 거리에서건, 어느 장소에서건 조금도 느껴 보지 못한 감동이 아닌가.
가족과 함께 있지 않은 여기 이 반짝이는 강변 소읍이 그의 진정한 삶의 무대는 아닐지언정, 그것은 분명히 자신에게 있어서 지울 수 없는 삶의 한 큰 요소임에는 틀림없는 듯했다.
"선생님, 안녕히 들어가세요."
먼데서 누군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목소리는 청아했고, 가라앉은 주변의 대기를 흔들면서 멀리서 울려왔다. 오미진 조교였다.
연구실을 나와 학과 사무실에 들르지 않고 나와 버렸더니, 그녀는 새삼스럽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언제나 상냥한 태도에 청아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도무지 구김살이 없는 아가씨이다. 그녀는 지금 서울의 모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오 조교는 대학 강단에의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