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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련타 그 행색 가련한 신세
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네.
가련한 내 뜻을 가련에 전해
가련은 알 거야 가련한 내 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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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이 선창을 한다.
"바지 속에 붉은 몽둥이란 놈이 씨끈벌떡거리는데,"
가련이가 대꾸를 한다.
"분홍치마 밑 고쟁이 속에서 흰 조개는 좋다구나 입이 헤벌어져요."
김삿갓. "뼈없는 장군이 공격을 하면,"
가련이 또 받는다.
"맑은 계곡 조개부인이 흰 기를 드네요."
('김삿갓과 가련의 로맨스' 몇 토막)
이 글을 읽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삐져 나온다. 김삿갓, 그 자신도 전국을 정처없이 떠도는 가련한 신세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김삿갓처럼 가련한 신세에다 이름마저 가련이었으니, 둘은 운명적으로 만난 셈이 아닌가. 게다가 서로 마음에 꼭 드는 시를 주고 받았으니 어찌 첫눈에 반하지 아니하랴.
만덕의 나이가 오십 중반에 이르렀을 때 제주에 큰 흉년이 연이어 들었다. 정부에서도 많은 구호미를 보내 굶는 사람을 구제했지만 역부족이었다...그 참상을 보다 못한 만덕은 전 재산을 털어서 목포, 부산, 마산, 여수 등지에서 긴급히 곡식을 사들여 죽을 쑤어 제주도민을 아사에서 구출했다./이 사실이 조정에 보고되자 조정에서는 만덕의 공적을 치하하고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만덕의 소원이란 게 겨우 '도성에 올라가서 임금님 계신 곳을 우러러 뵙고 이어 금강산 구경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제주도민을 구휼한 만덕' 몇 토막)
이 외에도 '여장부 가녀들' 편에 나오는 '목숨을 바친 논개와 의기들', '소춘풍의 해학' 등과 '기생으로 정승도 되고 패가망신도 하고'에 나오는 '단천기 월매와 암행어사 김우향', '선녀가 된 갈릉기 홍장' 등은 기생이 사대부나 선비 못지 않은 문사였다는 것을 강조한다.
심영구의 기생 에세이 <조선 기생 이야기>는 조선 시대 기생들의 수준 높은 풍류문화를, 때로는 익살로, 때로는 날카로우면서도 재치 있게 짚어낸다. 또한 조선시대 기생들이 관능적 쾌락만을 추구한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한 시대의 문화를 당당하게 이끌고 나간 문화전위대였다는 것을 새롭게 재평가하고 있다.
수필가 심영구는 1935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대학 등 교직에 종사하다가 1955년 <월간문학>에 수필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수필집으로 <이매망량뎐> <물 아래 뜬 달> <숨겨둔 애인> <자미화를 보러 간다>가 있으며, 고전수필집으로 <本一 찾자> <本二 찾자> <本三 공자도 뭘 몰랐다>를 펴냈다.
그 외, 한시수필집으로 <눈물로 베개 적신 사연>(한국편)과 <그리움에 잠못 이룬 서연>(중국편)이 있다. <노산문학상> <한국수필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