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의 달이 기어간다
거미의 달이 기어간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인 황인숙 다섯 번째 시집 <자명한 산책>

"내 시가 최소한 세상에 악취를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것이 내 소극적 바람이다. 적극적 바람은 즐겁게 시를 쓰는 것이다. "난 즐거움으로 달려요. 난 일로 달리기 싫어요"라고 말하는 달음박질꾼처럼 즐거움으로 시를 쓰고 싶다. 매혹적인 시의 길이 영원까지 뻗어 있었으면 좋겠다."

5년 전, 네 번째 시집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를 펴낸 황인숙(45) 시인이 "돌이켜 보면 나는 시에 있어서도 후한 값을 받고 살았다. 그게 다 빚이다. 힘을 내서 빨리 빚을 까자!"라는 톡톡 튀는 소리를 내지르며 다섯 번째 시집 <자명한 산책>(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빚을 갚자"가 아니라 "빚을 까자"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황인숙은 감각의 시인이다. 그러므로 삼라만상이 황인숙의 시각에 닿으면 이내 황인숙 특유의 오감(五感)으로 재구성된다. 이번 시집에서도 시인의 톡톡 튀는 감각은 갓 건져올린 얼음장처럼 투명한 빛을 낸다.

하지만 이번 시집은 그러한 감각 속에서도 깊이와 무게가 더 많이 느껴진다. <자명한 산책>이라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이번 시집에 실린 '강', '거미의 달', '시멘트 연못', '겨울밤', '삶은 감자', '담쟁이' '눈길' 등 77편의 시는 대부분 살아온 날들에 대한 회억으로 가득하다.

거미의 달이 기어간다
숨소리를 죽이고
조금도 망을 출렁이게 하지 않고
조금 바랜 빛깔의 실을 뽑으면서
살금살금 기어간다
누구도 몰래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휘감겨 붙게 꼼꼼히
망을 보면서

저 잿빛 얼룩진
거미의 달의 궁둥이
진득거리고 메마른
수은의 실을 뿜는 궁둥이

지붕들이 침식된다
누가 그리도 깊이 자니?
섬뜩하지도 않으냐?

('거미의 달' 모두)

밤하늘, 휘영청 떠오른 달을 거미에 비유한 시다. 근데 왜 하필 달을 거미에 비유했을까. 달이 거미줄 같은 "수은의 실"을 사방으로 쭉쭉 뽑아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리하여 모든 사물이 달이 뽑아낸 거미줄에 갇혀 꼼짝을 하지 못하고 주검 같이 깊은 잠에 빠져 있다는 그런 뜻인가.

거미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혐오스런 곤충으로 인식하기 쉽다. 그런데 하필이면 달이 거미라니. 그래, 어쩌면 황인숙은 달을 일종의 조물주에 비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 아무리 날고 기어도 결국 삼라만상은 조물주의 품 속에 있다는 것을 내뱉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아니 삼라만상이 조물주가 처놓은 거미줄에 걸려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깊이 잠들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시의 마지막 구절 "섬뜩하지도 않으냐?"를 읽으면 금세 이상의 수필 '권태'가 떠오른다. "지구 표면적의 백분의 구십 구가 이 공포의 초록색이리라"라는 그 섬뜩한 말.

그래, 이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초록색에서도 공포를 느낄 정도의 권태를 느꼈다. 그리고 "초록색은 조물주의 몰취미와 신경의 조잡성으로 말미암은 무미건조한 지구의 여백인 것을 발견"하고 "어쩔 작정으로 저렇게 퍼러냐"라며 더없는 지겨움을 느낀다.

그렇다. 이는 황인숙 또한 마찬가지다. 달을 거대한 거미로 바라보고, 달빛을 거미줄로 바라보는 시인이 느끼는 그 '섬뜩함'은 실은 이상이 지구 표면적의 99%가 초록색으로 뒤덮힌 것을 바라보고 느끼는 무서운 '권태'와 맞닿아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