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년은 중뜰 아지매가 서럽게 우시는 게 제 잘못 같았습니다. 우체부가 슬픈 편지인지 미리 알아서 그 편지를 전하지 않았던 걸까요.
소년은 빡빡머리를 하고 있었고, 깜장고무신을 신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타박타박 걸어 혼자 뒷내로 나왔습니다.
마을에서 뒷내로 나오는 길은 복세기 땅이었습니다. 강변의 모래에 냇물이 날라 온 유기물질이 섞인 땅을 그 마을에서는 복세기 땅이라고 불렀습니다. 복세기 땅은 배수가 잘 되었으며 밟으면 발자국이 날만큼 폭신폭신했습니다.
소년의 콧등에 땀방울이 송알송알 맺혔습니다. 소년은 강가로 나와, 한참 동안 냇물을 바라보다가 납작한 돌멩이를 주워 냇물 위로 빗겨 던졌습니다.
그날따라 물수제비가 잘 떠졌습니다. 보통 때는 두 개도 못 뜨던 물수제비가 열 개도 넘게 떠졌습니다. 납작한 돌멩이는 고요한 냇물 위로 찰랑 찰랑 물너울을 지으며 한참 동안 뻗어나가다가 잦아들었습니다.
처음으로 그렇게 열 개가 넘게 물수제비가 떠진 것입니다. 뒷내 물도 소년의 마음을 알아주어 마을 형들처럼 물수제비를 잘 뜨게 해준 것 같았습니다. 소년은 물수제비가 잘 뜨여 졌지만 슬펐습니다. 뒷냇물도 그날따라 슬퍼 보였습니다.
강 건너 불거리쪽 신작로 길에 먼지를 뽀오얗게 일으키며 버스가 오고 있었습니다. 신작로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을 때 새로 낸 길이었습니다. 가파른 산허리를 깎아 만든 길인데 읍내에서부터 이어져 강 건너를 휘돌아 더 멀리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길로 많은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소년의 식구들도, 샘재 할배도 떠났습니다. 샘재 할배는 일제 때 징용에 가서 돌아오시지 않으셨답니다. 그래서 샘재 할매네는 여자만 두 분 사시게 되었나 봅니다.
오늘도 강 건너 신작로엔 버스가 지나쳤지만 내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배가 고팠습니다. 전쟁 뒤끝이라 그 마을에서 소년은 늘 배가 고팠습니다. 소년은 물수제비를 그만 뜨고 마을로 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