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풍날 없어서는 안 되는 음식, 김밥과 사이다 그리고 삶은 달걀. 다른 친구들이 김밥을 싸 올 때 나는 계란찜을 싸가서 혼자서 먹던 기억도 있다. 창피한 마음에 누가 볼 새라 숨겨놓고 먹었지만 삶은 달걀은 계란찜이 망쳐놓은 기분을 되살리는데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사각 도시락에 들어있던 달걀 프라이는 점심시간을 기다리게 하는 이유였다. 잠시 방심하기라도 하면 친구들의 젓가락이 가만 놔두지 않았다. 그렇게 귀했던 달걀이 조금씩 흔해지기 시작하자 도시락 반찬으로 싸가는 횟수도 점점 늘어났다. 달걀을 풀고, 파와 청양고추 다져넣고 고춧가루 뿌려서 전처럼 부쳐내서 마름모꼴로 썰면, 맛있고 훌륭한 반찬이 되었다.
흰자가 노릇노릇 해 질정도로 익혀먹었던 달걀은 언제부터인가 반숙으로 먹기 시작했다. 반숙이 몸에 좋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노른자를 제외한 흰 자를 먼저 먹고 나서, 마지막에 노른자가 터지지 않게 한 잎에 먹으면 접시에 노른자가 묻을 일이 없었다.

닭장이나 집 주위에서 주워 온 따뜻한 달걀을 아버지는 날로 드셨다. 젓가락으로 달걀 아랫면에 구멍을 뚫고, 윗면은 ‘이’로 깨뜨려서 쭈욱 빨아 드셨다. 어찌나 먹음직스럽게 드시던지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나도 날달걀을 먹어보기도 했다. 미지근한 흰자는 그런대로 먹어줄만 했지만 노른자는 그 향이 싫어서 입안에서 터지지 않게 바로 삼켜버렸다.
그런 추억 때문인지 나는 시골 재래종 닭이 난 달걀을 만날 때면 반갑기도 하다. 한 두 개는 반드시 날로 먹기도 한다. 지금이야 입과 접촉하는 껍데기 부분을 물 타월로 닦아내고 먹지만 그때는 막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며칠 전, 알고 지내는 어떤 분이 시골집에서 가져온 달걀이라며 20여개를 건네줬다. 껍데기에 닭똥이 묻어 있다. 그 자리에서 한 개를 맛봤다. 어렸을 적엔 싫기만 했던 노른자의 향이 참 고소하게 느껴진다.
집으로 돌아와서 몇 개를 삶았다. 시중에서 사 온 달걀을 삶으면 몇 개는 금이 가 흰자가 나오기도 하지만, 이 달걀은 한 개도 깨지지 않았다. 껍데기가 단단하다는 건 그만큼 건강한 닭에서 정상적으로 나왔다는 뜻이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24시간 불을 밝혀놓은 양계장의 닭들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알을 낳으니 껍데기가 얇아지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얇아진 껍데기가 아니고, 달걀의 영양상태가 떨어진다는 데 있다. 시골의 닭들은 밤에 잠을 자고 해가 뜨면 모래를 쫀다. 벌레들을 잡아먹기도 하며 날개 짓을 해서 조금 날기도 한다. 환경이 그러하니 알도 건강하다. 노른자의 색도, 햇볕에 퇴색된 듯한 달걀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진하다.
삶은 달걀을 까서 맛소금 대신 굵은 천일염에 찍었다. 1개를 다 먹고 또 다시 먹었다. 이상하다. 두 개만 먹고 나면 서양음식 먹고 난 뒤 김치생각 나는 것처럼 느끼함을 느끼는데, 이 달걀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내리 5개를 먹었어도 김치생각이 나지 않는다. 시중에서 구입한 달걀과 시골에서 가져온 달걀의 성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달걀을 더 이상 완전식품이라고 볼 수는 없겠다.
조루인플루엔자의 위협 속에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시대에, 누군가가 나에게 시중에서 나온 달걀을 익혀서 먹으라고 한다면, 차라리 시골에서 건강하게 자란 닭의 달걀을 날로 먹겠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