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커다란 나무토막이 하나 작업실에 덜커덩 하고 굴러 들어왔다. 그 나무토막이 작업대 위로 냉큼 올라 앉은 건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일이다…나는 점점 이상한 세상의 악동이 되어 갔다. 벌레를 만나 즐겁게 말을 건넬 수 있었고, 피라미드의 비밀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고 나서는 혼자 즐거워 낄낄거렸다."
김진송 깎고 씀? 재미 있다. 아니, '깎고 씀'이라는 글씨를 대하면 저자가 이 책 속에 나오는 피조물들을 깎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 꽤나 정성을 많이 쏟았다는 그런 느낌부터 먼저 든다. 또한 지금까지의 책 중에 저자 이름 뒤에 '깎고 씀'이라고 표기한 책도 아마 이 책이 처음일 것이다.
<목수일기>의 저자이자 현직 목수인 김진송(44)씨가 나무를 깎아 여러 가지 피조물들을 만들면서 쓴 산문집 <나무로 깎은 책벌레 이야기>(현문서가)를 펴냈다. 이 책은 저자가 지난 1년간 나무를 깎아 달걀귀신, 크레인, 호랑이와 아이, 폭주족, 메뚜기 등을 만들면서 느낀 단상들이 깔끔하게 담겨져 있다.
책을 몹시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떨 땐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책 속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책벌레가 따로 없어' 라고 엄마는 늘 말하곤 했습니다. 책벌레는 아이의 별명이 되었습니다.
어느날 아이는 책을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떠 보니 책 속에서 커다란 벌레 한 마리가 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안녕. 책 벌레. 내가 진짜 책벌레야.'
아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놀라 황급히 책을 덮으려 하자, 책벌레가 눈을 부릅뜨면서 말했습니다.
'책벌레. 책을 덮지 마. 안 그러면 내가 몽땅 먹어 버릴 테니.'
아이는 그 뒤로 책벌레를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보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진짜 책벌레가 다 먹어 버리기 전에 책들을 모두 보아야 했기 때문이지요.
('책벌레와 책벌레' 모두)
목수 김진송은 책과 아이와 책벌레를 나무로 깎으면서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그리고 그 피조물의 단순한 몸짓 속에 번득이는 재치와 비유를 새겨넣고, 그 피조물들에게 새로운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는다. 그러므로 그가 깎은 피조물들은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체에 다름 아니다.
그가 후기에서 "그들과 독백처럼 중얼거렸던 이야기들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가 깎은 절간의 물고기와 고슴도치, 갑오징어, 민달팽이, 그림자에 놀란 아이 등은 생명체 아닌 생명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동안 단순히 나무만 깎고 있었던 게 아니라 이야기까지 깎고 있었던 것이다.
세파에 짠내가 나도록 시달린 물고기 한 마리가 더 이상 속세에 머물 수 없어 절간을 찾았습니다. 저를 받아 주십시오, 부처님께 귀의하고 싶나이다. 아침공양을 마친 스님은 기막혀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온 절간에 비린내를 풍기는 너를 어찌 받아들인단 말이냐 하며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물고기는 냇가에 가서 정성스레 온몸을 씻고 다시 돌아와 말했습니다. 절 받아 주시지요. 제 한 몸 공양으로 바치겠습니다. 점심 공양을 마친 스님은 역정을 냈습니다. 너의 냄새는 본디 네 심성에서 나오는데 비늘 몇 조각 씻는다고 그게 없어질 것 같으냐. 더 이상 마음 산란하게 하지 말고 다시는 찾아오지 말거라.
('절간의 물고기' 몇 토막)
그는 목어를 깎으면서 절간에 물고기가 걸리게 된 사연을 깎는다. 그 사연 속에는 "그렇지 않으면 저 화로 속으로 뛰어들고 말겠습니다"라는 물고기가 내뱉는 익살도 들어 있고, 그 물고기를 쇠꼬챙이에 꿰어 매달아 공양 때마다 두들겨 팬다는 스님(세상)에 대한 풍자도 들어 있다.
그러므로 그는 그저 나무를 깎고 있는 목수만은 아니다. 아니, 그는 어쩌면 스스로 조물주가 되어 이 세상의 피조물들을 그 나름의 원칙에 맞추어 새롭게 깎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가 세운 새로운 질서 속에 그가 만든 피조물들을 편입시키는 일을 하고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오! 너무 완벽하니까 미치겠군. 말이 씨가 된다고 우주를 다 만들고 나자 갑자기 신은 할 일이 없어 미칠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우주를 들여다보는 것도 점점 지겨워졌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뭔가 좀 엉성하게 해 놓는 건데 하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정말 심심했던 신은 우주를 하나 더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번엔 조금 아니 많이 모자란, 그래서 나중까지 심심치 않을, 모든 게 불완전하고 엉망인, 세계를 말입니다. 그렇더라도 원칙은 있어야겠지. 신은 모든 것이 불완전하게 될 원칙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건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먼저 만들었던 우주에 적용했던 원칙을 모두 거꾸로 적용하는 겁니다.
('신은 바보' 몇 토막)
그렇다. 그도 처음에는 여러 가지 피조물들을 깎으면서 완벽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완벽에 가까운 자신의 나무 피조물들을 바라보다가 어느날 문득 그 스스로도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 그 피조물들에게 뭔가 새로운 원칙과 질서를 적용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또한 그 피조물들을 처음 만들 때 적용했던 원칙을 거꾸로 적용해 보았을지 모른다. 그리고 신처럼 "새로운 우주를, 불완전한 우주를 창조한다는 게 정녕 불가능한 일이란 말인가"(신은 바보)라며 좌절도 했을 지도. 또 그 좌절 속에서 스스로도 자신이 피조물인지 피조물이 목수인지 헛갈리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새에게는
새로운 날개를 달아주자.
그리하여 새로운 이름을 붙여 주자.
그 이름 헬리콥새.
('헬리콥새' 모두)
목수 김진송이 펴낸 <나무로 깎은 책벌레 이야기>는 나무로 깎은 피조물들을 통해 바라보는 이 세상 이야기다. 그 이야기 속에는 '헬리콥새'처럼 과학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세상에 대한 그 어떤 기대도 담겨져 있지만, 반대로 첨단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더욱 피폐해져가는 사람들에 대한 조롱과 비유가 담겨져 있기도 하다.
한편, 저자가 나무로 깎은 상상의 피조물들은 인터넷(www.namustory.com)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내년 2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나무로 깎은 책벌레 이야기전'에 가면 실제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