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黑山島)에서

저 절해의 고도 흑산도에서 억울한 유배살이 16년째에 끝내 해배되지 못하고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난 손암(巽菴) 정약전(丁若銓)의 흔적을 찾아보는 일이 더 큰 여행의 목적이었기에 우리는 다음날 새벽 목포에서 대형 페리호를 타고 흑산도로 들어간 것입니다.
8월의 하늘은 더위가 식지 않아 불볕더위이자 찜통의 여름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연의 힘은 무서운 것, 바닷바람은 역시 시원하고 깨끗해 배안에서의 여행은 즐겁고 경쾌했습니다. 그날따라 망망대해의 바다도 호수처럼 잔잔하여 정말로 즐거운 항해였습니다.
“6월 초엿샛날은 바로 어지신 둘째형님(정약전)께서 세상을 떠나신 날이다. 슬프도다! 어지신 분인데도 그렇게 궁하게 사셨단 말이냐. 원통한 그분의 죽음에 나무나 돌맹이도 눈물을 흘릴 일인데 무슨 말을 더 하랴!
외롭기 짝이 없는 이 세상에서 다만 손암선생만이 나의 지기(知己)였는데 이제 그분마저 잃고 말았구나. 지금부터는 학문연구에서 비록 얻어진 것이 있다하더라도 누구에게 의논을 하겠느냐.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는 지기가 없다면 이미 죽은 목숨보다 못한 것이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98쪽)
두 아들에게 보낸 다산의 편지입니다. 손암이 1816년 6월 6일 세상을 떠났는데 이 편지는 그해 6월 17일자로 명기되어있으니 형님의 별세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보낸 편지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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