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데 산토끼나 잡으러 가보까?
심심한데 산토끼나 잡으러 가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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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의 ‘자치기’

"그 참! 날씨 한번 희한하네~"
"아, 멀쩡한 하늘만 자꾸 쳐다보모 우짤 낀데? 마른하늘에서 쎄(돈)가 떨어질 끼가, 쌀이 떨어질 끼가?"
"아, 날씨가 이럴 줄 알았으모 아침에 나무라도 한짐 하러 가는 긴데."
"허어~ 이 사람 정말 못 말릴 사람 아이가. 오늘 같은 날 나무하러 갔다가 잘못하모 생사람 잡는다카이."
"안 그라모 심심한데 산토끼나 잡으러 가보까?"

그날은 밤새 내린 쌀눈이 우리 마을의 초가집은 물론 우리 마을을 둘러싼 산들과 들판을 하이얀 눈의 나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 눈이 내렸냐 싶게 눈 시리게 푸르른 하늘에서는 따스한 겨울 햇살이 내려 쪼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햇살에 온 마을이 은빛으로 빛나 눈을 뜨기조차 어려웠다.

초가집에 주렁주렁 매달린 고드름에선 술에 취해 밤새 얼어죽은 아들을 부여잡고 아이고, 아이고, 하며 하루종일 울던 그 듬정댁의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마을 앞에 유일하게 한 마지기 정도 있는 미나리꽝에서는 시퍼런 코를 줄줄 흘리는 서너 살짜리 동생들이 우리들이 만들어준 그 스케이트를 신나게 타고 있었다.

부엉~ 부엉새가 우는 밤~
부엉~ 춥다고서 우는데~
우리들은 할머니 곁에~
모두 옹기종기 앉아서~
옛날 이야기를 듣지요~

붕붕 가랑잎이 우는 밤~
붕붕 춥다고서 우는데~
우리들은 화롯가에서~
모두 옹기종기 모여서~
밤을 호호 구워 먹지요~

얼어붙은 물꼬에서 거울처럼 투명한 얼음을 따는 아이들, 들마당에서 제기를 차고 있는 아이들, 활과 새총을 들고 마당뫼로 새 잡으러 가는 아이들, 신작로에서 팽이를 돌리고 있는 아이들, 산수골 들판을 향해 연을 날리고 있는 아이들, 그 곁의 양지 바른 곳에서 '부엉 부엉새가 우는 밤~' 이란 노래를 부르며 까만 고무줄 사이를 폴짝폴짝 뛰며 놀고 있는 마을 가시나들...

내가 열 살 남짓했을 때, 우리 마을의 겨울 아침은 아이들의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와 고함소리, 누군가 징징 우는 소리 등으로 정말 시끌벅적했다. 특히 눈이 소복히 쌓인 그날 아침은 더욱 시끌벅적했다. 그날은 우리 마을의 평소 겨울아침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그날은 대부분의 마을아이들이 공동우물이 있는 들마당에서 눈사람을 만들었고, 산수골로 열린 들판에서 편을 갈라 눈싸움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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