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그저 그렇게 자연스럽게 모르고 지내는 것도 어쩌면 보다 객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또 그렇게 스치듯이 만나 그럭저럭 통성명을 대충 하는 것보다는 내가 그분의 가마에 가서 그분이 사발을 굽는 것을 직접 보고 난 뒤에 정식으로 통성명을 하는 것이 예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지요. 제가 전시회를 하기 위해 사발을 선물한 친구에게 사발을 잠시 빌려달라고 했지요. 그리고 전시장에 놓을 때 가격을 5000만원이라고 써붙였지요. 그래야 그 사발이 팔리지 않을 것이고 전시회가 끝난 뒤 친구에게 되돌려 줄 수가 있을 테니까요. 또 간혹 정말 좋은 사발이 나오면 저는 남들에게 팔기가 싫어서라도 일부러 그렇게 붙이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전시회가 끝난 뒤 그 사발과 다른 사발 몇 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단다. 정말 낭패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사발과 비슷한 사발을 그 친구에게 이거 맞냐, 하면서 건네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친구 또한 그 사발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그래, 이게 맞아, 하면서 맞장구를 쳤다고 한다. 당시 그분은 그 친구에게 마음을 모두 들켜버린 것처럼 당혹스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한번 사발을 꼼꼼히 챙기기 시작했단다. 며칠 뒤 알고 보니 처남이 그 사발을 실은 박스 하나를 쓰레기인 줄 착각하고 쓰레기장에 그대로 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서둘러 그 쓰레기장에서 박스 하나를 찾아낸 그분은 친구에게 그 사발을 바꾸어 주면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너, 정말 그 사발이 진짜 니 사발이라고 생각했냐?"
"아니, 다 알고 있었다네."
"근데?"
"너의 성격으로 보아서 그 사발 때문에 너무 큰 상심을 할 것 같아서 그랬네. 그리고 어차피 그 사발은 자네가 내게 선물한 사발이 아닌가 말일세."
그 이후부터 그분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이 구워낸 사발은 남에게 선물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청자, 백자보다 훨씬 더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 사발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사발이나 청자, 백자도 모두 같은 방법으로 구워내지만 청자나 백자는 눈요기 거리에 불과하지만 사발은 우리의 식탁을 빛내줄 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용기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즈음 가스 가마로 수없이 구워지는 사발들을 바라보면 마치 우리 민족의 올곧은 기상과 아름다운 정서가 무너진 것처럼 슬프지요. 나 하나만이라도 우리의 장작불을 지켜내야지요. 좋은 사발이든 좋은 자기든 결국 우리 나라에서 자란 나무가 일으키는 불이 모든 것을 결정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