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마실이 프레스실보다 백 배 낫지
연마실이 프레스실보다 백 배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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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추억 속의 그 ‘공장일기’

"자네가 평소 일을 잘해서, 생산부장이 특별히 조치를 한 거라네. 그리고 연마실이 여기 프레스실보다는 백 배는 낫지. 먼지가 좀 많아서 그렇기는 하지만."

하긴, 프레스실 주임의 말이 맞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연마실에서는 최소한 손가락이 잘리는 그런 일은 한번도 없었으니까. 또한 내게 큰 은혜라도 베푸는 것처럼 당당하게 말하던 생산부장의 말마따나 잘 따져보면 나의 전공과 전혀 연관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광택을 내는 그 파란 재료가 화학재료였으니 말이다.

나는 그렇게 해서 그 무시무시했던 프레스실 근무를 입사 1년 만에 끝을 냈다. 그래. 나의 프레스실 근무는 참으로 아찔하고도 현기증 나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처음 공장에 발을 디뎠던 내게 프레스실은 현장 노동이 어떤 것이란 것을 제대로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생산현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연마실은 또 얼마나 환경이 열악한 부서인가. 산 너머 산이었다. 근데 생산부장은 그 많은 부서를 제쳐두고 왜 하필이면 이 공장 내에서도 가장 열악한 부서로 낙인 찍힌 연마실로 가라고 했을까.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하지만 안전사고는 프레스실보다는 비교적 적은 편이므로 나는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만 했다.

이 사실은 뒤에 알게 된 일이었지만 생산부장이 나를 연마실로 이동시킨 것은 일종의 경고조치였다. 내가 여러 가지 문학회 행사 때문에 야근이나 철야에 자주 빠진다는 것이 일차적인 이유였다고 했다. 또한 그 당시에 프레스실보다 연마실 일이 더 많았던 것이 이차적인 이유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나와 주변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실제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내가 각 회사의 사내 문학서클을 합쳐 큰 문학단체를 만든다는 것이 생산부장의 눈에 더 거슬렸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소위 내가 만나고 다니는 시인, 작가라는 사람들이 대부분 사상이 불건전(?)하여 나를 그대로 가만 두면 공장에 몹시 어려운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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