쏴 - 하고 빗물 쏟아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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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안개 2

두 시간 이상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내려온 탓으로 피로감이 있었다. 그녀는 전깃불을 끄고 침대속으로 들어 갔다. 왠지 모르지만 초봄의 이 신비스런 밤은 그녀에게 이제까지는 정말 몰랐던 새롭고 영원한 사실을 소곤소곤 얘기해 줄 것만 같았다. 조금 전 샤워한 자신의 육신에 이상한 탄력감이 번지는 것 같아, 그녀는 두 손으로 전신을 스다듬었다. 벽시계는 10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쏴 - 하고 빗물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비가 내리면, 멀잖아 강물이 붓게 된다. 홍영희는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오늘 아침에 서울을 떠났건만 시골에 내려온지 여러 날이 지난 것같이 여겨지는 것이었다. 서울은 아득해지고 가족의 존재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들은 멀어진 자리에 자아와 자신의 육신, 그리고 자연의 계곡 속으로 흘러온 것 같았다. 그 계곡 속에서는 오직 자기만이 존재할 뿐인 것 같았다. 호젓한 고독감이 밀려왔다. 그녀는 몰려드는 고독감에 전신을 맡긴 채 비바람소리와 천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쩌면 서울에서 전화가 올지도 몰랐다. 늦게 귀가한 남편이 전화할 것 같았다.

과연 전화벨이 울렸다. 늦게 귀가한 남편임에 틀림없었다. 이렇게 전화해줄 정도로 자상한 사람이 아니지만, 딸아이들이 부추겼을 것이다. 그렇지도 않으면 아이들이 다이얼을 돌려서 아버지에게 쥐어 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비바람 소리가 세차서 수화기를 귀에 바짝 가져다 대었다.

"여보세요, 홍영희 교수님 댁입니까"
"………"

홍영희는 얼른 무슨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남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분명히 자기의 이름을 대면서 통화를 청했으나, 이 비오는 밤중에 전혀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것은 굵직하고 부드러운 중년남자의 목소리였다. 학교의 직원이 아니면, 도대체 이런 긴급전화를 할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가끔가다가 보직인사를 알린다거나, 출제를 의뢰한다거나, 타교수의 논문심사를 의뢰할 때 이런 방법을 쓰기는 한다. 그러나 교무과 직원들의 목소리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 한두차례 들은 적이 있어서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어감으로 봐서 그들이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그런 부드러움과 윤기가 있을 턱이 없었다.

"홍영희 교수님댁 아니십니까?"

홍영희는 이 낯선 목소리가 어쩌면 옛날에 한두 번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누구시죠? 제가 홍영희입니다만."

조금은 역정이 섞인 목소리였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한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분명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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