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윤천의 제4시집 『구석』에서 구석진 것은 버려지는 것들이 아니라 잊혀 질 뻔한 것들이다. 시인이 망각의 구석을 애써 들추어내며 가려진 삶의 뿌리를 다시 보여주는 시에서 우리가 놓쳐버린 기억으로부터 선명히 다가오는 '산다는 것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미안하다 / 나는 언제 옷 벗어부치고 시 써본 일 없었으니 / 나탈리 망세*. 스무 살의 그 여자가, 벗은 몸으로, 눈부신 대낮 같은 겁 없는 육체의 순간으로, 흠씬 껴안아선, 힘주어선, 사람들 앞에서 악기를 연주할 때, 그녀에게 첼로가 단지 첼로뿐이었으랴. 사랑한다고 감히 주절거려본 적 있었는가. 그 앞에서 제대로 너를 벗어준 적 있었는가. // 미안하다 / 시야.
- 「시에게 미안하다」 전문
이 시는 시에 대한 시인의 신앙고백과 같다. 시인이 시를 우상화 할 수는 없지만 시에 대한 자신의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어쩌면 시에게 미안한 것이 아니라 시인이라고 이름 붙혀진 자신에게 미안했을지도 모르는 고백이다. 고백은 시인이 무엇으로 시를 삼을 것인가, 무엇을 시로 대할 것인가 표제시「구석」에 잘 나타나 있다.
시로 삼아 시집에 넣기에 만만한 것이 하나 있다. 외진 상가 부근....(중략)....마지막 수공업과도 같은 이발소여, 그렇게 시집과 이발소는 여겨볼수록 닮아 있다...(중략)....삐걱임 많은 의자에 걸터앉아 녹슨 바리캉에 들기름을 치기라도 하듯이, 그래도 어디 쓸 만한 낱말 하나 찾아 나서다 보면, 저절로 쓸쓸해지기도 하던 시의 저녁 무렵이여, 두 구석이 닮았다.
- 「구석」 부분
그는 동네 이발소의 오래된 풍경을 ‘구석’이라고 보았다. 그것이 시와 닮았다고 노래하고 있다.
‘시로 삼아 만만한 것들’에 대한 그의 시선은 대단히 경이로운 것들이 아니라 기억의 저편에 있는 부스러기 같은 삶의 소품들이다. ‘온수 한 바가지 물뿌리개’로 담아 세상의 거품을 씻어주는 ‘거친 바리깡에 기름을 치기라도 하듯’이 ‘쓸 만한 낱말 하나 찾아 나서다 보면 저절로 쓸쓸해지는 저녁 무렵’을 시인은 자신의 시와 닮았다고 노래한 것이다.
'멀리서 오고 있는 것들도 그렇겠지만 먼 곳을 향해 떠나가는 것들의 뒷모습들은 한결 같이 그렇다 입술 사이로, 가만히 되뇌어 보는 멀다 멀다 머얼다’(「머얼다라는 그 말」후반부)라는 그 말은 ‘ 오후의, 한 사람의, 빈 들을 가로지르며, 전생을 싣고, 기차가 혹은 꽃상여가 가는 모습은 산굽이 도는 순간은, 슬프고, 아픈’(「머얼다라는 그 말」전반부) 기억이다. 시인은 이 멀리서 오는 것들을 기다린다. 그렇지만 정윤천의 시는 그 슬픔에 쉬 흥분하거나 그 아픔에 쉬 소리 지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