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두 얼굴
대통령의 두 얼굴
  • 김의중
  • 승인 2004.11.2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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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민주주의 실천하는 동시에 피해의식 가져
노무현 대통령의 첫 번째 얼굴 = 민주주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 노무현 대통령은 이 땅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처음으로 실천한 국민의 지도자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그 어떤 패거리 정치에 끼어 불의를 눈감아주고 부정부패에 가담한 적도 없는 깨끗한 대통령이기에 자신을 진심으로 믿어주는 순수한 지지자들의 표에 의해 당선된 최초의 대통령이다. 사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정부만 하더라도 그의 지지기반이던 민주당의 힘에 의해 당선이 된 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는 일반 국민들이 김 전 대통령을 친근하고 가까운 인물로 느끼지 못할 시기기도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우리가 ‘노짱’이라고 부를 정도로 평범한 시민들에게 가깝게 느껴지는 존재고, 또 그가 걸어온 삶 역시 힘없고 불쌍한 서민들의 편에 서서 불의한 힘과 싸우는 투쟁의 시간들이 많았다. 그 결과 지금 노 대통령을 믿고 따르는 많은 국민들은 이제 더 이상 국가의 권력이 국민들의 권리보다 더 높은 곳에 있지 않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으며, 그것이 바로 진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게 만든 것이다. 국가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터질 때마다 누가 불러내지 않아도 스스로 걸어 나와 자기 의사를 표시하고 국민이 곧 나라의 주인임을 그 자리에서 당당히 밝히는 모습이 바로 한 단계 성장한 민주주의의 증거다. 미군정 당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삼선개헌을 시도해 장기 집권을 노렸던 이승만 전 대통령,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원천 봉쇄한 유신헌법을 만들어 종신 집권의 욕심을 부린 박정희 전 대통령, 그 두 사람에 이은 군부쿠데타 정권의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이들까지는 모두 국민의 손에 의해 뽑힌 대통령이 아니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린 대가로 얻어진 대통령 직선제에 힘입어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 두 정권에서도 국민들은 언제나 그늘에 가려져 있었고 오로지 정당간의 세력 다툼만으로 점철된 역사가 이어졌다. 그것은 과거 박 전 대통령의 유신 통치 하에서 유력한 야당 인사로 활동하던 두 사람이 과거의 당파 위주 정치 행태를 아직 떨쳐내지 못한 결과 발생한 어쩔 수 없는 과도기적 현상이었을 수도 있다. 재벌기업이나 언론 등으로부터의 지원 없이는 정치 생활을 할 수 없는 세월을 겪었던 그들이었기에 그들과의 관계에서 냉철해질 수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특정한 정치세력의 영향권 아래에 묶여 있지 않은 홀홀 단신의 정치 초년생으로 노 대통령이 등장한 후부터 자생적인 지지기반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한 시위현장에서부터 국정감사장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리를 거리낌 없이 성토하는 장면 등 노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하나둘씩 지지자들이 생겨나고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힘이 마침내 노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두 번째 얼굴 = 민주주의를 사랑하는만큼 그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피해의식 가져 노 대통령은 솔직하다 못해 가끔은 필요이상으로 야당이나 그 외 반대세력들에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곤 해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한다. 이는 탄핵 당했던 후유증과 그에 따른 피해의식으로 보여 지는데 대통령으로선 부적절한 태도다. 노 대통령은 또한 지나치게 스스로를 과소평가한다. 그래서 자꾸 무언가를 증명하고 싶어하고, 모든 비판에 일일이 반응을 보이며 하나하나 자신을 이해시켜주려 한다. 이런 노 대통령의 행동들을 보고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열정이 많은 사람 특유의 오지랖이라고 귀엽게 봐주기엔 그가 자리한 위치가 너무나 막중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또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그들의 성장과정에서 얻어진 상징성(개혁과 진보의 레테르)에 어느 정도 중독 되어 있다. 그것은 일정부분 거저 얻어진 부분도 있고 실제보다 많이 과장되어 있는 측면도 있는데, 그 상징성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지 않는 한 그것은 정권말기까지 그들에게 크나큰 족쇄가 될지도 모른다. 추종자들에겐 필요이상의 기대를 갖게 만들 것이고 반대세력에겐 필요이상으로 저항감을 갖게 만들 것이다. 때문에 아직까지 한쪽에선 색깔론으로 시비를 거는 것이고 다른 한쪽에선 무늬만 다른 보수우파란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철학이나 가치관이 지금보다 훨씬 더 뚜렷해진다면 이런 문제가 다소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써 기대하긴 힘들다. 왜 노무현 대통령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큰 것일까? 수십 년간 지속된 박정희식 유신독재 기간은 피해자도 많이 만들어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추종자들과 지원 세력도 많이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예로 당시 급속히 추진된 경제 성장의 성과물들을 독차지하다시피 한 재벌그룹들과 오랜 세월 여당으로써 독재권력의 손발 노릇을 하며 특권을 보장받아온 정치인들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 사회의 커다란 정치세력이라 할 수 있는 거대언론이다. 언론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유신 독재 기간 동안 가장 역점을 두었던 정책 중 하나가 반정부적인 논의나 주장, 이의제기 등을 철저히 차단하기 위해 언론을 통제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권에 협조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강압적인 환경 속에서 언론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정권의 입맛에 맞는 기사만을 줄기차게 써대는 나팔수 노릇뿐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유신정권은 그 나팔수 노릇을 충실히 한 언론사들에게 각종 세제 혜택과 감사 면제 등의 당근을 나눠주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세 가지 세력들은 이제 사회 내에서 부와 권력과 발언권을 독점한 기득권층이 되어 그러한 지위를 위협하는 모든 시도에 대하여 강력하게 반대하는 가장 반정부적인 집단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노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개혁의 작업들이 모두 과거의 부정한 행위들을 밝혀내고 사죄와 보상을 온당히 치른 후 새로운 출발을 하자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이 모든 작업에서 결코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들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바로 ‘박정희 시절 경제가 가장 발전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인데, 그 말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고도성장의 결과물들이 있긴 했지만 성장만 있었지 분배는 없었기에 배부른 사람은 배가 터져나가고 배고픈 사람은 여전히 굶주리는 기형적인 사회 구조가 오랜 시간 동안 고착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자기가 가진 것을 내놓기 싫어하는 인간의 특성상 일단 국가적 차원에서 경제 성장의 소득 분배에 밸런스를 맞춰주지 않으면 시간이 흐른 뒤에는 ‘부익부 빈익빈’의 굳어진 틀을 바로잡기가 어렵다. 박정희 유신독재의 아주 큰 오점이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하다. 이같은 이유로 현재 노 대통령을 미워하고 대단치 않은 이유로 비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많이 들리는 것이다. 실제 부정축재를 했다거나 친인척들만 뽑아 쓰는 부당한 인사를 행했다거나 하는 큰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터무니없는 근거를 계속 들어가면서 대통령 깎아내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의 대통령들은 실제로 엄청난 민간인 살상과 부정축재, 인사비리, 재벌-언론 등과의 결탁 등 훨씬 더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당시는 정부의 막강한 권력에 눌려 오히려 정부를 옹호했다. 그러나 현재 민주주의 시대가 열리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주니 그들은 잘못된 자신들의 과거를 감추고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현 정부를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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