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근처 노숙자들 “불 질러라” 지난해 한 대학생이 화재 경고
해당당국 ‘나몰라라’…낙산사 화재 사건 이후 전혀 개선된 것 없어
국보급 목조문화재 불나면 대책 없지만 스프링클러 설치 전무후무
‘숭례문 방화사건 앞으로 더 큰 재앙 예고하고 있다’ 불안감 확산
대한민국 국보 제1호 숭례문. 600년간 서울을 상징하던 숭례문은 지난 2008년 2월10일 웅장하던 자태를 잃고 한줌의 잿더미로 변했다.
이로써 당국은 또다시 허술한 문화재 관리와 보호체계에 대한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기관인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은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어 네티즌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또 “지난해 이미 방화 가능성이 예고 됐었는데도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며 정부를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
‘사고는 이미 예고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어 ‘숭례문 방화사건은 앞으로 더 큰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어 사회적인 파장은 겉잡을 수없이 커지고 있다.
이번 화재로 숭례문은 ‘방화’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지난 2005년 숭례문 주변 광장을 조성하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그만큼 화재 등 사고위험이 상존했지만 안전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그만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국민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 글을 장관님이 직접보시리라 믿지 않습니다. 저는 경복궁을 29번이나 탐사한 청년이고 지금은 중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알려드릴 것은 숭례문 근처의 노숙자들이 대화 도중에 “확 불질러버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숭례문 개방은 바람직했으나 너무 경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
수차례 경고에도 ‘나몰라라’
문화관광부 홈페이지에 지난해 2월24일 김영훈씨가 게시한 글이다. 김씨는 글을 통해 “이 나라를 사랑하시는 분은 한 번 현장에 나가 보라”며 “이런 숭례문 경비 체제로는 조만간 잘못하면 누가 방화할 수 있다”고 직접적인 방화 가능성을 경고했다.
실제로 최근 한 언론 보도에서 숭례문은 그간 갈 곳 없는 노숙자들의 임시거처가 되기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더했다. 특히 여름엔 그들의 안방과도 다름없었다는 것.
숭례문 누각을 제 집 드나들듯 했다는 한 노숙자는 “잠도 자고 노숙자들끼리 모여 고기도 구워 먹고 2층 누각에서 볼일을 해결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뿐만 아니다. 17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는 개원초기인 2004년부터 줄기차게 문화재 화재 위험을 경고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형식적인 답변과 행정결과만 내놨다. 특히 지난 2005년 4월 산불로 인한 낙산사 전소로 인해 각종 방재대책 요구가 끊이지 않았으나 문화재청은 이를 외면했다.
우상호 의원은 지난 2004년 문화재청 국감에서 “국보급 목조문화재 불나면 대책 없다”면서 “심각한 문제”라며 대책 수립을 요구한 바 있다.
정병국 의원은 지난 2005년 문화재청 예산안 심사에서 “내년도 예산에 화재예방설비는 5억원 가량만 반영돼 예년과 전혀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같은해 국정감사에서 민병두 의원은 “선진국 수준의 방화시설을 갖춰 달라”고 요구했다.
천영세 의원은 지난 2006년 국정감사에서 “(목조문화재에) 예산절감을 위해 값싼 분말소화기를 선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천 의원은 지난해에도 이와 같은 내용을 서면 질의했으나 시정되지 않았다.
국감에서도 수차례 지적
지난해 전여옥 의원이 제출한 국감자료인 ‘문화재 화재 안전관리 현황과 제언’에 따르면 국내 소방법령에는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법령이 없다시피하다.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을 특별소방대상물로만 지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 것이다.
당시 전 의원은 문화재청 국정감사장에서 “문화재 화재예방 매뉴얼에 구체성이 전혀 없고, (문화재청에) 화재전문가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문화재 시설에 대한 소화 설비, 경보 설비, 소화용수 설비 등의 설치를 강제할 수 없는 실정이기도 하다.
유흥준 문화재청장은 당시 “행정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바로 검토하겠다”고 답변했으나 그 뿐이었다.
지난 2월9일 밤 숭례문이 불타고 있을 당시 소방당국과 문화재청, 서울시, 중구청 등 관계기관이 화재 진압을 놓고 우왕좌왕한 것도 형식적 매뉴얼과 목조문화재 건축물에 대한 소방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수차례 경고에도 불구, 결국 우려하던 사고는 발생했다.
황당하게도 숭례문에 불을 지른 용의자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의 보상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용의자가 범행을 저지르고 도피하기 까지 걸린 시간은 10분도 채 되지 않았다.
소방대원들은 “목재 건축물엔 화재가 나면 도저히 방법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도 숭례문 누각 내엔 스프링클러는 단 한 대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안일한 초기진화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과거 숭례문 기와 교체 공사를 맡았던 전문가는 “기와에 물이 스며들지 않는 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면서 “초기진화 과정에서 기와는 충분히 제거할 수 있었지만 누구도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아 전소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분석했다.
국보가 전소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해당 당국은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책임 회피만 ‘급급’
실제로 소방당국의 한 관계자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화재 초기 서울소방본부 측이 대전 소재 문화재청과 화재 진압방식을 논의했으나 이 과정에서 문화재청이 ‘문화재가 손실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불을 꺼달라’고 요청해 초기에 적극적인 진화에 나서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문화재청도 발뺌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화재 진압은 기본적으로 현장의 진화 책임자가 상황을 판단, 결정하는 것이지 문화재청과 일일이 상의해 진화 방법을 결정할 수는 없는 것”이라면서 “누각 지붕 해체도 문화재청에서는 조기에 할 수 있도록 통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아이디 ‘jagjag34’를 사용 중인 한 네티즌은 “이것이 우리의 전체적 수준이고 현주소”라면서 “범인과 같은 자가 또 어디에서 같은 범죄를 저지른다고 100% 막을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이번 방화 사건이 “이명박의 대통령 취임을 경고하는 화재”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방화사건 이후 인터넷 상에서 ‘재앙 예고’가 급속도로 퍼져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05년 낙산사 화재, 지난 2006년 창경궁 근정전 화재 등 문화재화재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전국의 문화재 방재시설 역시 허술하기 그지없다.
140여개 목조문화재 가운데 제대로 된 방재시스템이 갖춰진 곳은 단 4곳, 130개 소에는 소화전조차 없어 제2의 숭례문 사고 위협은 여전히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st35@sisa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