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 제도 이르면 내년초 폐지... 하지만 개인연체정보 은행연합회서 계속 공유
366만에 이르고 있는 신용불량자의 신불제도가 폐지될 전망이다. 신용불량자로 등록되어 은행으로부터 금융거래 중단과 채권추심을 받는 일도 사라지게 되었지만 신용불량자 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적 책임 회피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어 논란이 예고되고 있다.
여야 4당 신용불량자 폐지법 연내 통과 추진
여야 4당은 21일 신용불량자 용어를 삭제하는 한편 신용불량자 등록 때 사전 통보하도록 한 금융기관의 의무를 폐지하는 내용의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또 신용불량자라는 용어를 연체자로 바꾸기로 했다.
이 법안은 정부와 협의 아래 여야 4당이 공동추진하는 사안으로 국회 통과 후 정부의 공포 절차를 거쳐 6개월 뒤부터 시행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재정경제부는 가능한 한 공포 후 2∼3개월 내에 시행하도록 한다는 입장이어서 이르면 내년 2∼3월쯤 시행될 전망이다. 정부는 당초 법 시행을 위해 은행권의 전산망을 정비하는데 6개월 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 2~3개월이면 충분한 것으로 파악돼 되도록 신용불량자 제도를 빨리 폐지한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앞으로 모든 금융거래에서 신용불량자라는 용어는 사용되지 않으며 현재 신용불량자 기준인 `30만원을 3개월 이상 연체한 자'의 통계도 별도로 집계되지 않는다.
신용불량자는 획일적인 금융기관의 연체관리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금융거래가 가능해지고 사회적으로 좋지 못한 인식에서 탈피할 수 있지만 연체금이 탕감되거나 연체정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어서 채무변제 의무는 계속 남는다.
정부는 앞으로 신용불량자 숫자 대신 연체율을 기준으로 금융정책을 수립하고 금융기관은 현재의 신용불량자라는 획일적인 기준에서 벗어나 자체적인 프로그램에 따라 연체자들을 관리하게 된다.
재경부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신용불량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이들의 통계를 별도로 집계하는 나라는 우리 밖에 없다"면서 "신용불량자 숫자가 아직도 많지만 최근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어 제도를 폐지할 시점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신불자제도에만 의존해온 금융기관들이 신용이 낮은 연체자들에 대해 평가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당분간 신불자에 준하는 대우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개별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면 30만원 이상 연체했더라도 신용거래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체율 중심 금융정책, 금융기관들은 연체자 자율 관리
정부는 신용불량자 등록제도 폐지를 계기로 향후 연체율을 기준으로 금융정책을 수립하고 금융권은 내년 1월을 목표로 공동 개인신용정보회사(CB)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CB설립 추진위원회(위원장 최범수)에 따르면 이달말쯤 CB설립 예비인가 신청서를 제출하기 위해 금융감독 당국과 사전 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내년 본인가를 거쳐 각 금융회사들로부터 데이터를 받아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친 뒤 4월부터 우량 정보가 포함된 신용보고서를 발급하는 등 개인들에 대한 신용평가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그러나 연체금이 탕감되거나 연체정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어서 신용불량자의 채무변제 의무는 지속돼, 문제의 근원적 해법은 제시하지 못한 채 통계 은폐를 통해 문제를 회피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낳고 있다.
허울뿐인 신용불량자
게다가 신용불량자 등록 제고가 폐지되면 신용불량자라는 이유로 금융거래가 중단되거나 취업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어지게 된다고 하지만, 신용불량자라는 말만 사라질 뿐 사실상 금융기관들이 종전의 신용불량자 관리를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변화되는 것은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한 지난 9월말 현재 366만명에 달하고 있고 이로 인해 내수침체가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신용불량자 제도를 폐지할 시기가 아니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신용불량자 폐지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시기상조론을 앞세우고 있다. 이제까지 금융회사들은 한달에 한번 은행연합회가 집계한 신불자 통계와 명단을 받아 고객관리에 활용해 왔다. 새 제도가 도입되면 금융회사들이 개별적으로 고객의 신용상태를 파악하거나 설립을 추진중인 개인신용정보회사(CB)를 통해 고객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다. CB는 그러나 내년 중반 이후에나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라 그동안 연체자 관리에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불자에게 주는 혜택도 생각보다 적을 가능성이 높다. 금융회사들이 충분한 정보가 확보되기 전까지는 대출심사를 더욱 엄격히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금융회사에 신불자로 등재된 사람이 다른 금융회사에 대출을 신청하면 대출 조건으로 모든 금융회사와의 대출 및 연체여부를 제시토록 요구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수익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금융회사로서는 당연한 조치다.
신불자제도 폐지는 결국 양산된 신불자 숫자가 경제에 미치는 심리적인 불안요소를 제거한다는 명분만 있을 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연체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혜택은 거의 없다고 봐도 틀리지 않다.
신불자들이 도덕적 해이에 빠지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금융금치산자’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개인파산제를 보다 활성화하는 등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불자제도가 폐지되면 부실을 막기 위해 은행권은 신용평가를 더욱 까다롭게 할 가능성이 큰 반면 2금융권은 상대적으로 신용이 낮은 고객도 끌어들이려고 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금융기관별로 신불자정보를 대신할 평가기준을 아직 만들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2년부터 매월 신불자 현황을 발표해온 은행연합회도 제도 폐지 이후 어떤 신용정보를 금융기관에
제공하게 될지 모호한 상황이다. 연합회 관계자는 “신불자 추이 발표도 없어지겠지만 금융권으로부터 연체정보는 계속 수집하게 될 것”이라면서 “그러나 신불자정보가 아닌 연체금액·연체기간 등 정보를 어디까지 세분화해 제공하게 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배드뱅크(다중채무지원기구)에 신청했다가 선납금을 내지 못해 탈락한 한 채무자는 “신불자제도가 폐지되면 신불자의 신용도 회복되는 것 아닌가.”라면서 “다른 신용회복지원제도를 찾아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이용할 필요성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신불자로 전락해 사채를 쓰고 있는 또 다른 채무자는 “신불자제도가 폐지되면 제도권 금융기관 거래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은행은 오히려 까다로워질 것이라는 얘기도 들었다.”면서 “제도 폐지가 신용도 낮은 사람들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내용은
정부와 여야 4당이 입법 발의한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크게 세가지 내용을 담았다. 신용불량자라는 용어를 없애는 대신 이를 연체자로 바꾸는 것과 신용불량자 등록 전 금융기관의 사전 통지의무 폐지이다. 또 지금과 같은 은행연합회의 신불자 통계도 별도로 집계되지 않는다. 신불자를 연체자로 바꾸는 것은 채무자들을 획일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생기는 폐단을 없애기 위한 조치. 이에 따라 신불자로 등록하는 행위나 이를 개인들에게 통지하던 의무조항도 당연히 없어지게 된다.
이번 조치는 ‘신불자=불량한 사람’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형식적인 굴레에서의 탈피 이외에 실질적인 기대 효과는 거의 없다는 게 금융계의 시각이다.
▲개인 연체정보 은행연합회서 계속 공유
신불자제도가 폐지되면 은행연합회의 연체정보 공유가 없어지는 것으로 오인되면서 혼선이 생기고 있다. 22일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신용불량자제도가 폐지되면 연체정보 공유도 하지 않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또 ‘30만원 이상을 3개월 이상 연체한 자’라는 기존 신불자의 기준도 계속 존속된다. 결국 신불자는 연체자로 명칭이 바뀌지만 이들의 연체정보는 여전히 개별 금융기관들에 공유돼 신불자 폐지 이전과 달라지는 게 없다. 신불자로 등록되면 무조건 금융거래가 중단되는 식의 획일적 규제가 법적으로는 없어지지만 모든 금융기관의 연체정보가 종전처럼 공유됨으로써 사실상 금융거래의 제약은 그대로일 가능성이 높다.
기업 채용시 개인 연체정보 조회 등도 여전히 가능하다. 이는 신불자 폐지에 따른 기대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의 배경이 되고 있다.
▲개인 우량정보와 거래 이력 등 종합 평가해야
단지 신불자 딱지만 떼는 것이 아니라 신불자의 구제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선 지금과 같은 획일적 제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선 개인의 우량정보와 그동안의 금융거래 이력, 향후 자산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개인 신용의 질’을 평가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신불자제도 폐지 법안은 획일적 제재에 따른 부작용은 줄일 수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다”며 “개인 신용평가시스템의 보완이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23일 BNP파리바증권은 신용불량자 제도 폐지가 미치는 영향은 극히 표면적인 것에 그칠 것이라고 판단했다.
BNP는 은행들의 자체적인 판단에 의해 신용불량자에 대한 정의와 제재가 이루어 질 것이며 다만 매달 신용불량자가 늘어가던 추세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또 제도 폐지가 부채 탕감이나 태만한 신용불량자 축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며 은행연합에 의한 연체 정보 공 유는 여전히 지속될 방침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이번 조치가 은행들의 수익이나 개인의 신용 리스크 관리에 의미있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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