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태극기 원형 발굴 공개
최초의 태극기 원형 발굴 공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6년전 제작된 최초의 태극기 원형,일본 시사신보등에 기록남아

▲ 좌로부터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 김삼웅 독립기념관장, 한시준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장이 최초 태극기원형을 공개하고 있다
그동안 태극기의 원형에 대한 여러 논란이 있어 왔으나 이번에 독립기념관에 의해 최초 태극기의 원형이 발굴되어 공개됨으로써 그간의 태극기 원형을 둘러싼 논란이 결말을 맺게 되었고, 국기에 대한 정확한 유래와 자부심을 갖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독립기념관(관장,김삼웅)은 지난 2월초 대한민국의 상징인 최초의 ‘태극기’ 원형을 영국국립문서보관서(National Archives)에서 확인, 발굴하여 3.1절을 기념해 공개한다고 밝히고, 28일 프레스센타에서 원형 태극기의 확인,발굴 과정을 공개했다.

이번에 독립기념관이 발굴, 공개한 최초의 태극기는 1882년 박영효가 일본으로 가는 선상에서 제작한 바로 그 태극기의 원형을 그대로 그린 것으로, 1882년 11월 1일 당시 일본외무성 외무대보(차관) 요시다 기요나리가 주일 영국공사 (Harry Parkes)에게 보낸 문서에 첨부되어 있었다.

공개된 태극기의 원형은 현재 태극기와 같이 중앙에는 태극을 그려 청색과 홍색으로 색칠을 하고, 네 모서리에는 건(乾).곤(坤).감(坎).이(離)의 사괘(四卦)를 그렸다. 원형의 원래 크기는 가로 142.41㎝, 세로 115.14㎝, 태극의 지름 81.81㎝이다.

최초 태극기 원형의 발굴 경위는 동국대학교 역사교육과 한철호 교수가 태극기를 조사,연구하는 과정에서 영국국립문서보관소에 있음을 확인했고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소장 한시준)와 공동으로 발굴했다.

독립기념관은 3.1절을 맞이하여 이번에 발굴한 최초 태극기 원형과 여타 역사태극기들을 대형으로 제작하여, 3.1운동 정신계승 재현 행사에서 일반에 공개한다.

▲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영국국립문서보관서에 보관된 문서를 들어보고있다.

◈ 최초의 태극기 원형 소장처와 발굴과정
현재 최초의 국기인 태극기 원형본은 영국 국립문서보관소(The National Archives)에 소장되어 있다.

그곳에 있는 한국 관련 문서들 가운데 문서번호 FO 228-871에는 1882년 11월 1일자로 당시 일본외무성 외무대보(차관) 요시다 기요나리(吉田淸成)가 주일 영국공사 해리 파크스(Harry Parkes)에게 보낸 문서와 함께 칼라로 그린 국기의 원형이 들어 있다.

이 문서의 존재는 2007년 8월 고려대학교 BK21한국사학교육연구단(단장 최덕수)에 참여하여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연구했던 한승훈(고려대학교 강사) 씨가 파악했다.
그 뒤 한철호 교수는 태극기의 유래를 탐구하던 중 한승훈 씨의 제보를 받아 위 문서와 태극기를 정밀히 분석한 결과 이 태극기가 최초의 국기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시준 연구소장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한철호 교수와 동 연구소 김도형 연구원은 2008년 1월 27일부터 2월 1일까지 영국 국립문서보관소를 직접 방문했다.
이곳에서 최초의 태극기 소재를 확인함과 동시에 그 원형과 관련 문서를 칼라 복사하여 오늘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 1882년11월 당시 일본외무성 외무대보(차관) 요시다 기요나리(吉田淸成)가 주일 영국공사에게 보낸 문서

◈ 최초의 태극기라는 증거
첫째, 태극기와 함께 동봉된 문서의 작성일이 1882년 11월 1일자로 적혀 있다. 이 날은 수신사 박영효가 일본 도쿄에 체류하고 있던 기간과 일치한다.

박영효의 사화기략(使和記略)에 의하면, 그는 10월 13일(음력 9.2) 도쿄에 도착한 뒤 12월 27일(11/18) 도쿄를 떠나 귀국길에 올랐다.

박영효는 9월 25일(음력 8.14) 영국인 제임스선장의 자문을 구해 ‘태극 4괘 도안’의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하기로 결정하고 10월 3일(음력 8.22) 이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이후 그는 도쿄에 체류하는 동안 각종 행사에 참석하면서 이 국기를 내걸었다.

둘째, 태극기와 함께 동봉된 문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요시다 외무대보가 “며칠 전 귀하[해리 파크스]의 구두 요청에 따라 조선의 국기 사본(a copy of a flag said to be the National Flag of Korea)을 동봉”한다고 밝히고 있다.

박영효가 10월 3일 국기 제정을 정부에 보고하는 서한에서 “영국ㆍ미국ㆍ독일ㆍ일본의 여러 나라가 모두 그려 가기를 청하니, 이것은 천하에 알려 밝히는 데에 관련된 것”이라고 기록했던 사실로 미루어, 방문 당사국인 일본 외무성이 박영효가 제작한 태극기 2본(대.중) 가운데 하나를 그려놓았고,
이를 다시 파크스의 요청으로 사본을 만들어 보내준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된다.

셋째,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태극기가 박영효의 기록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박영효는 9월 25일에 “새로 만든 국기를 묵고 있는 누각에 달았다.

기는 흰 바탕으로 네모 … 중앙에는 태극을 그려 청색과 홍색으로 색칠을 하고 네 모서리에는 건(乾)ㆍ곤(坤)ㆍ감(坎)ㆍ이(離)의 사괘(四卦)를 그렸다”든가, 또 10월 3일 보고서에서도 국기 제정을 의논했던 제임스 선장이 “태극ㆍ팔괘의 형식은 특별히 뛰어나 눈에 뜨이지만, 팔괘의 분포가 자못 조잡하여 명백하지 못한 것을 깨닫게 되며, 또 각국이 이를 모방하여 만드는 데 있어서도 매우 불편하니, 다만 사괘만 사용하여 네 모서리에 긋는다면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고 말한 사실을 적어 놓았다.

▲ 영국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되어있는 원형 태극기

◈ 최초의 태극기의 형태
첫째, 4괘는 박영효의 기록대로 건.곤.이.감이 현재의 태극기와 동일한 위치에 그려져 있다. 다만 괘의 색은 지금의 것과는 달리 청색이다.

둘째, 태극은 현행의 태극기와 같이 청,적색으로 되어 있지만, 그 모양은 조금 다르다.

셋째, 바탕색은 현재의 태극기와 마찬가지로 흰색이다.

넷째, 이번 발굴된 태극기에서 처음 밝혀진 점은 태극기의 크기이다. 최초의 태극기는 가로 4척 7촌, 세로 3척 8촌, 깃대 1촌 2푼이며, 태극의 지름은 2척 7촌이다.

1척을 30.3㎝로 보면, 가로 142.41㎝, 세로 115.14㎝, 태극의 지름 81.81㎝이다. 이 크기는 박영효가 제작한 태극기 대․중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러한 형태와 크기를 지닌 최초의 태극기 발견으로 지금까지 진행되어 왔던 태극기에 관한 모든 의문은 사라지고 논쟁은 해결되었다.

이 태극기는 지금까지 태극기 원형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던 통상장정성안휘편(通商章程成案彙編)의 태극기와 형태가 거의 비슷하다.
이 자료는 1998년 1월 18일 단국대학교 김원모 교수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발굴.공개한 것이다.

여기에는 「대청국속(大淸國屬) 고려국기(高麗國旗)」라는 이름 아래 태극기를 게재하였고, 1883년 3월 6일(음력 1.27)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국기 제정을 반포한 지 불과 12일 뒤인 “광서 9년 2월 초10일(음력 3.18)자로 수령한 조선국왕 자문”에 “국기를 제작하고 그 형태와 색깔을 그려 보낸다. … 아울러 국기 한 장을 첨부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김원모 교수는 “이것은 태극기의 완전한 원형으로 태극기 연구의 결정판”이라고 강조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우리나라 국기를 「대청국속 고려국기」라고 명명했던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청국이 우리나라를 자국의 속국으로 여기고 이를 대내외에 역설하려고 의도함으로써 국기 자체를 왜곡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바탕을 황색으로 표시하고 태극 모양 위에 흰 동그라미를 그려 넣은 데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하지만 그 형태나 4괘의 모양이 이번 공개된 국기와 일치하는 점으로 볼 때, 청국이 우리나라 국기를 완전히 왜곡한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대청국속 고려국기」는 간접적으로 이번 발굴된 태극기가 바로 그 원형임을 입증해주는 근거가 된다.

◈ 최초의 태극기 원형 발굴 의미
최초의 태극기는 1882년 9월 25일(음력 8월 14일) 수신사 박영효가 일본으로 가는 선상에서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태극기가 만들어진 지 12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원본은커녕 원래의 형태조차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둘러싸고 수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따라서 이번 최초의 태극기 원형을 발굴한 것은 단순히 태극기에 대한 기존의 모든 오류와 학설을 바로잡는 데 그치지 않고, 그동안 우리 국기의 원형조차 알지 못한다는 자괴감에서 벗어나 국가적,국민적 자존심을 회복하는 데 크게 기여 할 것이며, 더욱이 건국 60주년을 맞이한 올해 최초의 태극기 원형 발굴은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새롭게 각오를 다지는 국민들에게 가장 소중하고도 뜻 깊은 선물이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