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뿔났다’로 돌아온 ‘시청률 제조기’ 김수현 작가
‘엄마가 뿔났다’로 돌아온 ‘시청률 제조기’ 김수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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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법이요? 그냥 쓰기만 할 뿐이예요

독특한 인물 구도, 깔끔하면서도 직선적인 대사 드라마 힘의 원천
아들·며느리·시어머니의 ‘갈등 폭발’ 장면에서도 현실성 잃지 않아

▲ 일명 '시청률 제조기'로 통하는 김수현 작가.
일명 ‘시청률 제조기’로 통하는 드라마 작가 김수현이 또한번 ‘저력’을 과시했다. 지난해 파격적인 불륜 이야기를 다룬 ‘내 남자의 여자’로 열렬한 지지와 비난을 한 몸에 받았던 김수현은 KBS 2TV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로 시청률 30%를 넘보며 단박에 주말극 일인자에 올랐다. ‘엄마가 뿔났다’는 60대 이상의 여성 시청자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엄마 역을 맡은 김혜자의 독백이 매회 등장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 ‘엄마가 뿔났다’는 중장년층 부모세대와 눈높이를 같이한다. ‘김수현 표’ 드라마의 매력은 무엇일까.

현존하는 국내 드라마 작가 중 최고의 개런티를 받는, 한국 드라마 작가의 상징 같은 인물이자 비․희극 양수겹장의 탁월한 감각을 지닌 김수현 작가.

현재까지 한국 드라마 작가로는 유일하게 ‘죽은 시체도 벌떡 일으켜 TV 앞에 앉게 만든다’는 극찬을 받았을 만큼 그의 드라마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대중문화의 한 부분임엔 틀림이 없다.

김수현은 최근까지 무수한 작품들을 쏟아냈다.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청춘의 덫’, ‘사랑과 야망’, ‘부모님 전상서’, ‘내 남자의 여자’ 등이다.

일일극, 주말극, 특집극은 물론 ‘미워도 다시한번’, ‘에미’, ‘필녀’ 등의 수준 높은 영화 시나리오에서부터 몇 권의 장․단편 소설까지 김수현의 영역은 다양하다.

지난 1969년 MBC라디오 드라마 극본공모에서 ‘저 눈밭에 사슴이’로 입문한 이후 40년 동안 현역활동을 통해 펼쳐지고 있는 김수현의 필모그래피는 ‘그 자체가 한국드라마의 역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뻥꾸다’, ‘물따귀’를 아시나요?


또한 국내 드라마 사상 최초로 같은 작품이 리메이크(청춘의 덫)됐으며 동시에 자신의 작품을 자신이 직접 리메이크 할 정도로 작품에 대한 자부심도 뛰어나다.

한 세대가 지났어도 가공할만한 시청률이 재현될 만큼 진지한 작품성은 김수현 드라마의 최고 가치다.

최근 두 번째 리메이크작 ‘2006 사랑과 야망’은 기대엔 못 미치는 시청률을 보였다. 하지만 김수현표 드라마라는 브랜드 파워는 기본적인 시청률은 보장 받을 만큼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부족함이 없었다는 평가다.

연속극 형식으로 제작됐던 ‘저 눈밭에 사슴이’는 김수현 특유의 독특한 인물과 깔끔하면서도 직선적인 대사로 곧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후 영화로도 각색됐다.

그 후 4년 동안 ‘약속은 없었지만’, ‘지금은 어디서’ 등의 라디오 드라마를 집필하던 김수현은 1972년 목요연속극 ‘무지개’로 텔레비전 드라마를 시작한다.

‘무지개’ 이후 ‘새엄마’라는 드라마로 김수현은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선명히 각인된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그만의 독특한 드라마 세계를 펼쳐내고 있다.

후처의 이야기를 다룬 ‘새엄마’는 방영기간이 1년을 넘긴 대작 중에 대작이었다. 그만큼 애청자들도 많았다. 이 작품을 계기로 김수현은 1973년 제1회 방송대상 극본상을 수상했다.

김수현은 ‘새엄마’로 ‘우리나라 TV 일일극의 중흥을 예고하는 불꽃이 됐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면서 본격적인 ‘김수현 시대’의 막을 열었다.

요즘은 시청률 50%대만 근접해도 ‘국민드라마’라는 엄청난 수식어가 붙지만 정확한 시청률 통계가 전무했던 그 시절 그의 히트 드라마들은 정말 무서우리만큼 TV드라마의 위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수많은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렸다.

김수현 드라마와 40년간 동고동락을 해온 중장년 이상의 시청자들과 일각에선 ‘맨날 그 타령이 그 타령’, ‘매번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똑같은 말투와 성격’이라는 불평이 나오기도 한다. 이는 맞는 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틀린 말이다.

‘사랑이 뭐길래’, ‘부모님 전상서’ 등의 코믹 홈드라마의 경우 각 세대 계층을 폭넓게 아우르면서 각각의 세대가 고민하고 열광하고 좋아할 그런 공통분모를 끌어내 가치관의 내면들을 충실히 표현해낸다.



깐깐한 ‘간섭쟁이’

그러면서 각기 다른 세대의 충돌, 본질적인 남성과 여성의 가치관 충돌에서 비롯되는 갈등을 드라마적 재미로 이끌어 냄과 동시에 그 화두에 대한 모범 답안을 시뮬레이션 해주기 때문에 김수현 드라마는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없는 ‘트렌디 드라마’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자체가 작품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그만큼 시청자들에게 쉽게 다가가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게다가 김수현 드라마의 특징 중 하나인 속사포 같은 빠르고 긴 대사는 요즘 TV드라마들 특히 판타지만을 지향하는 단순한 시각적 자극과는 반대되는 말 그대로 ‘대사위주’로 캐릭터의 내면심리와 상황의 심각성을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즉 ‘라디오 소설적 분위기’를 지향하는 것이다.

실제로 김수현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하나같이 “대사가 많다”고 입을 모으기도 한다. 탤런트 윤여정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는 다른 작품에 비해 대사가 2배쯤 되는 것 같다”면서 “주 조연 할 것 없이 확실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대사를 써준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이어 “게다가 대본 리딩을 할 때 인물 간 대화에 공백이 생기는 걸 달가워하지 않아 여백의 미학은 꿈도 꿀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수현 표’ 드라마엔 독특한 색깔과 맛이 있다. 김수현이 만들어 내는 대사는 언제나 직설적이고 표독스럽기까지 하다. 때문에 그 말맛이 최대화 되는 효과를 톡톡히 누린다.

김수현 드라마엔 소위 ‘죽은 인물’이 없다. 하다못해 붙박이 도우미나 가게집 아저씨같은 카메오 역까지 생생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이는 카메오 캐스팅까지 철저하게 관여하는 그녀의 깐깐한 제작 간섭 태도, 또한 특정 배우의 지속적인 캐스팅에서 비롯된다. 김수현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은 ‘거기서 거기’지만 이는 그녀의 메시지를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배우에 대한 신뢰도에서 오는 것이기에 단점으로 긁어낼 사항은 되지 않는다. 결국 드라마의 원천적인 힘은 김수현의 대사처리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언어의 마술사’라는 별명답게 그의 드라마 속에선 언제나 신조어가 등장, 화제가 돼왔다. 최근 ‘엄마가 뿔났다’에서도 신조어는 여지없이 등장했다.

이 드라마에선 ‘물따귀(젖은 손으로 때리는 따귀)’, ‘뻥꾸다(거짓말하다)’, ‘치알딱곱만큼(눈곱만큼)’ 등이 등장했다. 생생한 대사에 집착하며 ‘실명’을 거론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논란도 발생한다.

얼마 전 방송분에선 부잣집 마나님인 고은아(장미희)는 아들의 애인 나영미가 살고 있는 길음동을 무시하는 투로 말했다. 이 장면이 전파를 타자 시청자들 사이에선 반발이 일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뭐니뭐니해도 우리 현대극 드라마 중에서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대표적 유행어를 꼽는다면 ‘청춘의 덫’에서 나온 ‘부셔버릴 거야’가 아니겠느냐”며 입을 모았다.

김수현은 자신의 캐릭터와 메시지를 극중 캐릭터를 통해 일관되게 표현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해왔다. 과거엔 윤여정, 최근에는 김보연(부모님 전상서), 하유미(사랑과 야망, 내 남자의 여자)가 김수현의 기질과 작품 속 메시지를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입바른 소리 잘 하는 캐릭터’로 단골 캐스팅되는 배우들과 드라마 속 인물들이 언제나 오버랩된다.

김수현은 쪽대본을 쓰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의 사전엔 쪽대본이란 없고 촬영에 앞선 배우들의 대본 리허설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 연출자와 대략적인 회의 후 출연 배우들을 기다린다.

이렇게 해서 모인 배우들의 리허설이 시작되면 김수현은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배우의 억양, 발음 하나하나를 지적하면서 소위 연습 같은 실제상황을 이끌어낸다.


권위적인 가장이 없다?

지난 2월17일 방송된 6회 식사 장면에선 나영일(김정현)이 자신의 아이에게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 ‘한별’이 대신 ‘인성’이를 쓰고 싶다면서 식사 자리에서 불만을 털어놓는 장면이 있었다. 영일이 “(아내가) 한별이 마음에 안 든대요”라고 말하자 장미연(김나운)은 “내가 언제? 한별이 마음에 든다고 했지”라며 놀란다.

그러자 시어머니(김혜자)는 “너 그러지 마. 한 입으로 두말 왜 해. 나 두 마음 싫으니까 미역국도 먹기 싫으면 그만 먹어.” 아들·며느리·시어머니의 ‘갈등 폭발’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지자,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편견에 사로잡힌 교양 없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달고 사는 고고하고도 위선적인 인물 고은아(장미희) 또한 속물근성을 점잖게 포장하고 싶어 하는 일부 상류층의 심리를 적절히 구현하고 있다.

‘엄마가 뿔났다’ 큰 줄기의 설정 자체는 홈드라마와 비슷하지만 이전의 전형적인 인물구도가 바뀌었다는 것이 특징. ‘사랑이 뭐길래’에서 권위적인 가장 역할을 맡았던 이순재는 이 드라마에서 할아버지 나충복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의 권위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아들보단 며느리와 친한 시아버지로 등장한다. 또 이상할 만큼 이해심도 많아졌다. 밥상머리에서 싸우는 가족들이 할아버지 눈치를 보자 “다 먹었어. 상관 말고 계속해”라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며느리 김한자(김혜자)가 손자를 봐 줄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우자 “내가할게, 내가 키운다”고 얘기한다.

이 드라마에선 나충복의 아들이자 가장인 나일석(백일섭) 또한 자식들과 부인 눈치를 보며 사는 남성으로 출연한다. ‘내 남자의 여자’ 이후 김수현 드라마 속 남성들은 점점 약해지거나 유연해 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김수현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우리 삶의 기본 구성은 가족”이라면서 “그걸 외면해서는 절대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대해서 김수현은 “나는 그저 쓰기만 할 뿐 시청률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모른다”고 덧붙였다.

‘엄마가 뿔났다’는 요상한(?) 캐스팅에 이목이 주목된 바 있었다. 드라마 속에서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인 이순재와 김혜자는 과거 ‘사랑이 뭐길래’에서 부부였고, 부녀지간인 이순재와 강부자 또한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부부였다.

김수현은 이에 대해 “연기자들은 경우에 따라 이 역할 저 역할 다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시청자들도 예전 드라마 속 관계는 잊어버리고 새 드라마를 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연기자들의 실제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지만 실제 나이를 일일이 비교해가며 캐스팅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김수현의 ‘엄마가 뿔났다’는 초반에 강세를 타다, 최근 시청률이 잠시 주춤한 상태. 하지만 김수현 카리스마가 있는 한 50%돌파는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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