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LG의 화두는 '유교적 가풍'
21세기 LG의 화두는 '유교적 가풍'
  • 오공훈
  • 승인 2004.12.1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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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대' 잇기 위해 양자들인 구본무 회장
아무리 시대를 앞서는 첨단제품을 만들어 명성을 드높여도, 내부적으로는 '전통'을 지키는 게 그룹의 최선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삼성과 더불어 전자업계를 양분하고 있는 LG그룹이 새삼 '유교적 가치'를 들고나와 화제다. 더욱이 이 가치가 '후계상속'과 맞닿아 있을 때, 파장은 보다 더 복잡미묘해 진다. 12월 7일, LG그룹은 구본무 회장이 첫째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 광모(26)씨를 양자로 입적했다고 밝혔다. 구광모 씨는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 인스티튜트 공과대 학생으로 현재 국내 IT 솔루션 업체에서 산업기능 요원으로 근무 중이며, 내년에 근무를 마치면 복학해 학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LG는 전했다. '유교적 가풍'에 따른 LG LG는 "이번 결정은 구본무 회장이 슬하에 딸만 둘이 있어 장자로서 대를 잇고 집안 대소사에 아들이 필요하다는 유교적 가풍에 따라 구자경 명예회장 등이 참석한가운데 열린 LG그룹 구씨 집안 회의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LG는 "경영권이나 후계구도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잘라 말했지만, 후계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여부는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는 관측이 재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구본무 회장은 연경(26·미국유학), 연수(8·초등학생) 두 딸을 두고 있으며, 구자경 명예회장은 구본무 회장, 구본능 회장, 구본준 LG필립스LCD 부회장, 구본식 희성전자 사장 등 네 아들과 훤미, 미정씨 등 두 딸이 있다.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첫째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 광모 씨를 양자로 입적하자 후계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LG그룹 총수는 구인회 창업회장에서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회장으로 이어져 내려져 왔으며, 최근에는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LG필립스LCD 부회장이 유력한 차기 총수후보로 꼽혀왔다. 구본준 부회장은 업계에서 LG필립스LCD의 위상을 높이고 7세대 생산라인이 들어설 파주 디스플레이 단지 조성사업을 매끄럽게 추진하는 등 많은 '점수'를 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이런 상황에서 구본무 회장이 양자를 들이자 후계구도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 이에 대해 LG는 광모씨의 양자 입적이 경영권이나 후계구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단순한 '집안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LG는 "구본무 회장이 딸만 둘이 있어 장자로서 대를 잇고 집안 대소사에 아들이 필요하다는 유교적 가풍에 따라 광모씨를 양자로 들였을 뿐 다른 의미는 없다"며 "구자경 명예회장 등 집안어른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어 입적을 결정한 것을 봐도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밝혔다. LG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구광모 씨의 입적이 후계구도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아직은 광모씨가 학생 신분이라 경영 일선에 투입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 LG와 전혀 상관없이 다른 길을 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 특히 형인 구본무 회장에게 아들을 양자로 준 구본능 회장도 자녀가 1남1녀 밖에 없는데 집안 대소사를 챙기라고 하나뿐인 아들을 내줬겠냐는 분석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는 정황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또 구본무 회장이 바로 아랫동생인 구본능 회장의 아들을 양자로 맞은 것도 구씨 집안과 LG그룹 안에서 광모씨의 양자 입적이 차지하는 무게를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LG 관계자는 "LG는 많은 사람들이 주식을 나눠갖고 있을 뿐 아니라 지주회사 체제여서 경영권이라는 게 별 의미가 없다"며 "구씨 집안은 해마다 수십차례의 제사를 지내는 등 집안일이 많아 장자인 구본무 회장에게 아들이 꼭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구씨 집안은 아들이 하나밖에 없어도 장남한테 양자를 주기로 어른들이 결정하면 순순히 따를 정도로 유교적 가풍이 강하다"고 전했다. '내겐 아들이 꼭 필요하다' LG 구씨 가문은 주요 그룹 오너 가운데도 자손이 많은 편.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은 6남 중 맏아들이었으며 6남 4녀를 슬하에 두었다. 구인회 회장의 장남인 구자경 명예회장도 4남 2녀를 두었다. 이처럼 자손이 많은 LG 가문이 57년간 3대에 걸쳐 허씨 가문과 동업을 하면서도 잡음이 없었던 이유로는 무엇보다 유교적 가풍에 따른 엄격한 '위계질서'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LG그룹 관계자는 "회장 집안에는 연상의 조카, 연하의 숙부가 허다하지만 머리가 희끗희끗한 조카가 자신을 '자네'라고 부르는 젊은 숙부에게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리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고 전했다. 이런 가풍이 있기에 LG 가문은 많은 형제와 자손들을 잡음 없이 거느릴 수 있었다는 설명. LG는 일찌감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 주요 재벌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경영체제를 굳혔지만 정작 구 회장이 아들이 없어 후계자에 대한 설왕설래가 가장 빈번한 그룹이었다. 미혼인 구광모 씨는 현재는 병역의무를 마치기 위해 LG계열사가 아닌 국내의 한 IT 솔루션 회사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년 중으로 복무를 마치면 미국으로 돌아가 학업을 계속할 계획. 구광모 씨는 지난달 8일자로 (주)LG 주식 47만주를 추가 매입, 지분율을 1.63%로 끌어올렸다.LG의 4세대 가운데 가장 많은 지분. LG에 따르면 양자 입적은 지난 11월 구자경 LG명예회장을 비롯한 LG그룹 구씨가의 가족회의에서 결정됐다. LG관계자는 "구 회장이 슬하에 딸 둘만 두고 있는 상황에서 '장자의 대'를 잇고 집안 대소사에 아들이 필요하다는 유교적 가풍에 따라 결정됐다"고 전했다. 따라서 구인회 창업주-구자경 명예회장-구본무 회장으로 이어 온 장자승계의 원칙이 구 회장대에 이르러 어떻게 바뀌는지에 재계의 관심이 쏠렸다. 구 회장의 '양자입적설'이 끊이지 않았고 셋째 동생인 구본준 LG필립스LCD 회장이 '대권'을 이어받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무성했다. LG측은 구 회장의 양자 입적과 그룹 경영권 승계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보수적인 구씨가가 동생보다는 양자를 받아들여 적통을 잇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특히 올해를 마지막으로 허씨가와 맺었던 57년 간의 동업관계가 청산됨에 따라 후계구도를 명확히 해둘 필요가 생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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