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이 위험하다. 대선승리를 기반으로 총선까지 몰아친다는 전략에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나라당은 대선 직후 ‘과반 의석 확보’를 자신했다. 한나라당 공천이 곧 금배지로 연결된다는 말에 1000여 명이 넘는 이들이 한나라당 공천에 몰려들었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 시작된 악재는 당을 흔들고 ‘4월 총선 위기설’을 부르고 있다. 이미 수도권에서는 한나라당 비토 세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당 공천 잡음은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들은 한나라당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도부는 서둘러 당 추스르기에 나섰다. 하지만 당을 흔드는 요인들에 대한 대책은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천 갈등 ‘부글부글’…“이대론 납득 못해” 집단 반발 움직임
‘장관인사 파동’ 대통령 지지율 한나라당 민심 이반으로 연결
당·정·청 협력체제 구축? “거수기 정당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
‘안정적 국정운영’ VS ‘거대여당 견제’ 여론 비등한 수준으로
끊임없이 터지는 각종 악재들로 한나라당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4월 총선 위기설’이 고개를 들고 있어서다.
“당 공천 인정 못해”
한나라당 위기설은 종합적인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당·정·청의 문제가 복잡하게 이어지며 사태를 가중시키고 있는 것.
우선 당에서는 공천과 관련한 갈등이 내홍을 부르고 있다. 한나라당 공천 명단이 속속 발표되며 이에 대한 불만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당 1차 공천 명단에 포함된 후보 중 지역구 현역 의원들은 친이·친박 모두 공천을 통과했다. 공천자 66명 중 친이측 인사는 47명, 친박측 인사는 12명으로 친이가 4배 가까이 많았다. 중립은 7명에 불과했다. 당 공천이 모두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박근혜 전 대표측은 위기감과 함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당 공심위가 5일까지 발표한 공천 확정자 106명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106명의 공천 확정자 중 친박은 19명으로 전체 20%에도 못 미친다. 현역의원 탈락자 4명 중 3명도 친박계 인사다. 비례대표인 문희, 배일도 의원과 충남 아산의 이진구 의원이 고배를 마셨다.
게다가 당 공천 최고 접전지가 될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지역에서는 대대적인 물갈이가 이뤄질 수 있어 친박계 핵심인사들의 공천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이혜훈, 유승민, 김재원, 최경환 의원도 공천 확정을 받지 못해 공심위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는 친이계 핵심인사들이 일찌감치 공천을 확정 받은 것과 비교된다.
공천 탈락자들의 불만도 커져가고 있다. 공천에서 탈락한 이들 중 일부는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공천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의 불만은 박 전 대표측과의 갈등보다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나라당 1차 공천심사에서 탈락한 공천신청자 지지자들은 한나라당 여의도 당사 앞에서 “공심위원들은 입만 뻥긋하는 금붕어와 같다”며 금붕어가 든 물병을 들고 ‘금붕어 시위’를 벌였다. 공천 탈락 후보들의 모임인 ‘공천후보자연대’는 “도대체 공천 심사 기준이 뭐냐” “낙하산 인사의 공천 내정을 중단하라”고 외치며 공심위 심사 채점표 공개와 공천 재심을 요구했다.
대선승리≠총선승리
당 중진들도 나섰다. 인명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은 당 1차 공천명단에 포함된 공천 내정자 중 2명에 대한 윤리적 부적격 사유를 공심위측에 전달하며 문제 제기를 시작했다. 그는 철새 논란을 빚고 있는 정덕구 전 의원을 공천한 것에 대해 “사람을 공천해야지 새를 공천하면 어떡하느냐. 이러면 한나라당이 정말 힘들어질 거 같다”고 날선 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급기야 “이런 식이면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찍지 않겠다”고 선언,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밀실공천’ ‘낙하산 인선’이라는 비판이 잇따르자 강재섭 대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최고위원회의를 거쳐 공심위원을 교체할 수도 있다”며 공심위에 대한 경고성 발언으로 분위기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러나 이미 당은 공정성 시비의 ‘태풍의 눈’에 들었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안에서는 부글거리는 박근혜 전 대표측과의 갈등이, 밖으로 눈을 돌리면 공천 탈락자들의 아우성이 당을 흔들고 있다. 민주당의 공천도 한나라당을 압박하고 있다. ‘계파 공천’ 시비에 휘말린 한나라당에 ‘박재승 칼날’이라 불리는 위험할 정도로 곧은 잣대는 다시 한 번 타격을 주고 있다.
한나라당의 ‘4월 위기설’은 이명박 정부의 실세라 불리는 정두언 의원에게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정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정부 인선과 한나라당 공천은 총선에서 압승한다는 전제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참으로 아슬아슬한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지도부의 주의를 촉구했다.
그는 “지금부터 수도권 표밭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세상에 거저먹기는 없는 것 같다. 나는 당초부터 대부분 사람들이 예상하듯 한나라당이 대선승리의 여세를 몰아 총선에서 압승한다고 믿지 않았다. 이는 우리 모두가 알듯이 민심은 격변하는 것이며, 국민은 권력이 오만하다 느껴지면 바로 등을 돌려버린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한나라당 수도권 출마자들도 “명함을 돌리는데 지난주 돌릴 때와 이번 주 돌릴 때 분위기가 다르더라”며 돌아서고 있는 민심을 전했다.
새 정부는 ‘수리 중’
정부 조직도 ‘삐그덕’거리고 있다. 장관인사 파동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주요 장관 인사들을 야심차게 발표했지만 각종 의혹에 휩쓸려 줄줄이 사퇴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부동산 투기 의혹, 논문조작 의혹 등 각종 의혹들로 무성한 인재등용에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인재풀이 이 정도냐”고 따졌을 정도다. 손 대표는 “이 정부가 진정 보수주의의 요체가 되는 도덕성에 생각이 있는지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며 내각명단을 들먹였다.
가까스로 검증을 거친 이들을 장관 후보로 세웠으나 이번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문제제기에 나섰다. 삼성특검 수사와 관련 ‘제2의 삼성 떡값인사’를 폭로한 것. 사제단은 검찰을 지목했던 지난 떡값인사 파문과 달리 이번에는 새 정부 사정라인의 핵심 2인을 겨냥했다.
사제단은 “새 정부에도 삼성 떡값 인사가 있다. 삼성이 금력으로 공권력을 장악해 대한민국 국가기능이 망가지고 있다. 삼성 비리를 캐는데 적합하지 않은 분들이 사정기관 핵심에 임명되는 것은 안 된다”며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과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내정자를 지목했다. 이들은 검찰 조사가 불가피해 새 정부 인선에 또 다른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도 하락하고 있다. 인사파동이 직접적으로 작용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현대리서치연구소가 지난달 29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이후 국정운영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국민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49.1%였다.
인사 파동의 원인에 대해서는 34.8%가 ‘사전 검증 부실’을 지적했고, 31.7%가 ‘국민의 수준보다 낮은 당사자들 도덕성’을 꼽았다. 청와대와 여권이 불만을 표시했던 ‘언론 및 야당의 협조 부족’이 문제였다고 밝힌 답변은 8.8%에 불과했다. 지역편중·코드 인사(7.2%)와 실용주의 우선 인사(6.8%)를 잘못으로 꼽기도 했다.
5일 조선일보 여론조사에서도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이유는 장관 인사파동 때문으로 나타났다. ‘장관 인선이후 이 대통령에 대한 인상이 이전에 비해 어떻게 변했는가’란 질문에 부정적 평가가 45.2%를 차지 한 것. 같은 날 문화일보 여론조사에서도 ‘새 정부가 가장 크게 잘못한 점은 다음 중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부도덕한 인물등용과 지역편중인사’를 꼽는 응답이 37.4%로 나타나 ‘인사파동’이 이 대통령의 지지율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혹독한 4월’ 될 수도
청와대의 인사파동은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이어 한나라당에 대한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한나라당의 공천 갈등에는 친이(이명박)계열이 포함, 이 대통령과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한나라당과 정부, 이명박 대통령의 연쇄작용이 커지자 이들은 당·정·청 협의체를 만들고 3월 중순부터 가동키로 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협의체의 활동 방향에 대해 “주로 정책부분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당·정·청 협의체 구성에 서두르는 이유를 이 대통령와 일부 측근들의 독주, 설익은 정책 남발 등이 민심 이반을 불러와 4·9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입지가 흐려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방어책으로 해석하고 있다. 공동대응을 통해 잡음을 최소화하려는 계산이다.
그러나 각종 악재들을 당·정·청 협의체로 헤쳐 나갈 수 있을지의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내부적 잡음에 대한 해결 방안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견제론’ 등 외부요인에는 미약하다는 지적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대선 후 국민여론이 ‘안정적 국정운영’쪽으로 쏠렸다면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안정론과 견제론이 대립구도를 보이고 있다”며 “현 총선구도가 일순간에 바뀌기는 어렵겠지만 분열이 계속된다면 한나라당도 총선 목표치를 수정하는 일이 불가피 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