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6월 A 교수의 지인으로부터 처음 소개받은 후 돈독한 사이
“어렵던 집안 형편에 어느 날 갑자기 외제차, 고급 아파트 사들여”
희대의 섹스스캔들 사건이 또다시 터질 것인가. 박철언 전 장관을 둘러싼 거액의 횡령 사건에 대한 정,관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박 전 장관은 최근 서울의 H대학 A 교수를 ‘176억원을 횡령당했다’는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자 A 교수와 박 전 장관의 관계, 거액의 돈의 출처 등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박 전 장관은 “돈은 물려받은 유산과 재단 설립금이었고 A 교수와의 인연은 이 일과는 관련이 없으니 말하지 않겠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6공 시절 그의 보좌관이 “박 전 장관이 대기업으로부터 수십억원대의 돈을 받아 1000억원대의 비자금을 직접 관리했다”고 주장하고 나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시사신문>은 A 교수와 박 전 장관의 관계, 돈의 출처 등을 추적해봤다.
일각에선 이번 사건을 두고 ‘제2의 신정아 사건이 터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신정아 사건’과 유사한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박 전 장관과 A 교수가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986년 6월 A 교수와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B 교수로부터 소개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박 전 장관은 최근 A교수와의 관계에 대해 “감옥에서 나온 1986년 6월 A교수와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B여교수 소개로 서울 G호텔에서 B교수와 함께 처음 만났다”며 “(돈은) 내 책임하에 갖고 있었지만 만기가 되면 통장이 여러 개 있어서 A교수에게 1998년 말~1999년 초부터 은행 심부름을 시켰다”고 덧붙였다.
‘제2의 변양균, 신정아’?
A 교수는 그때부터 박 전 장관의 자금을 관리하는 관리책 중 한 사람이 됐다. 박 전 장관과 송사에 휘말린 A 교수는 누구일까. 최근엔 법정 소송이 불가피할 만큼 등을 돌렸지만 한때 두 사람은 아주 돈독한 관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무용계에 정통한 한 인사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1990년대부터 박 전 장관이 A 교수의 후견인 역할을 해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이어 “A 교수의 작품이 무대에 올라갈 때면 박 전 장관이 직접 공연장을 찾기도 했다”면서 “90년대 후반엔 박 전 장관이 의장을 맡은 한 포럼에서 문화 세미나가 열리자 A 교수가 축하공연을 자처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인사는 A 교수에 대해 “영남 출신인 A 교수는 지인들에게 ‘나의 춤 인생이 40년이 넘는다’고 말하곤 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A 교수는 언젠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4살때무터 아버지를 따라 권번을 드나들면서 한국춤을 접하게 됐다’고 얘기했을 만큼 어릴적부터 그의 끼는 남달랐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A 교수는 뛰어난 외모와 춤솜씨 덕분에 초등학교 시절 ‘리틀논개’로 뽑히기도 했다. 시대가 변해 권번이 문을 닫자 그는 타지역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한국 무용을 익힌 것으로 알려진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A 교수는 자신의 이름을 딴 무용단을 창립하기도 했다. 안무가일뿐만 아니라 40대 중반이 넘은 나이에도 직접 무대에 설 만큼 왕성한 활동력을 과시했다. 무엇보다 화려한 외모와 사근사근한 말솜씨로 무용계의 ‘마당발’로 통했다.
A 교수의 한 측근은 “자기 작품세계에 파묻히는 일반적인 무용인과 달리 A 교수는 처음 보는 사람과도 쉽게 어울릴 만큼 사교력이 뛰어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이런 강점이 오히려 다른 무용과 교수들에겐 시기와 질투의 요소로 작용했던 적도 많았다”고 했다.
A 교수와 박 전 장관은 과거에도 언론에 등장한 바 있다. A 교수가 서울의 한 시내 호텔 뷔페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던 중 가방을 도난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었다.
당시 A 교수가 경찰에 신고한 피해금액은 무려 6300만원. 400만원 상당의 명품 핸드백과 1700만원 상당의 수표, 3800만원짜리 명품 다이아몬드 시계 등이었다.
A 교수의 측근은 이에 대해 “원래 돈이 없던 처지였는데 어느 날 고가의 아파트를 연달아 구입하더니 수입차도 수시로 바꿔 타고 다니더라”고 회상했다.
이어 “얼마 전에도 밝혀졌듯이 박 전 장관이 A 교수에게 고가의 선물을 한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느냐”면서 “주변에선 이를 두고 ‘변양균과 신정아의 관계처럼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였냐’며 수근 대고 있다”고 말했다.
“자금 모았을 땐 합법적”
비자금, 섹스스캔들 의혹이 불거지자 박 전 장관은 즉각 해명에 나섰다. 박 전 장관은 지난 3월5일 A 교수와의 176억원 횡령자금 반환 소송과 관련한 비자금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횡령당한 돈은 유산과 재단 설립비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횡령 당했다고 주장해온 자금 176억원을 금융실명제 이후에도 60개 통장에 나누어 차명관리해 온 사실은 시인해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박 전 장관은 “당시 관리를 맡긴 통장들은 여러 사람 명의로 된 차명 계좌로 심부름이 끝나면 (계좌) 도장과 통장은 다시 연구소로 반납토록 했다”며 “또 차명계좌가 법상으로는 문제가 있지만 서 모 은행 지점장이 차명으로 해주겠다고 해서 유지가 가능했다”고 차명계좌 운용을 시인했다.
그는 “자금을 모았을 당시는 합법적이었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관리한다는 사실이 정치인의 이미지상 좋지 않다고 판단해 사기를 계속 당하면서도 차명계좌를 유지하게 됐다”며 “정말 내 불찰이고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직 대통령이 받은 것도 드러나는 세상에 내 것만 알려지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거듭 비자금 조성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과거 박 전 장관의 보좌관이었던 C씨가 “박 전 장관이 대기업으로부터 수십억원대의 돈을 받아 1000억원대의 비자금을 직접 관리했다”고 주장,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