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 대다수 보좌관 패닉 상태
지역구 출마 포기한 비례대표 보좌관 “이제 뭐하나…”
각 정당의 공천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의원들을 보좌하는 보좌진들 앞길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총선이 끝난 오는 4월이면 여의도 정가엔 보좌진들의 취업난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당장 자신이 모시고 있는 ‘영감’(의원을 칭하는 말)이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불출마 선언을 할 경우 이들은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기 때문. 따라서 보좌진들은 저마다 자신이 보좌하는 의원이 금배지를 달 수 있도록 안간힘을 쓰거나 혹은 각자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밀실야합’, ‘승자 독식’ 등 요즘 여의도 정가에선 이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공천 갈등이 격화되면서 해당 의원뿐만 아니라 보좌진들도 공천 결과에 반기를 들고 있다.
하지만 보좌관들이 핏대를 세우며 반박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는 것. 그 이유는 결국 보좌관들의 취업 시스템과 연관성이 있었다.
이들이 의원실에 근속할 수 있는 기간은 단 4년. 경우에 따라선 이보다 더 짧아질 수도 있는 실정이다. 근무 도중 권고사직을 당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도 이들의 일자리를 보장해 주는 사람은 없다. 의원의 수명이 끝나는 순간, 이들의 수명 또한 끝이 나게 마련이다.
‘풍전등화’ 신세
“그 자리가 얼마나 위태로운 자리인줄 아십니까?” 한때 보좌관으로 일했던 인사의 말이다. 그는 “요즘 공천문제로 여의도가 시끌벅적한데 보좌관들이 핏대를 세우면서 공천 결과에 반박하는 이유를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어 “그 이유는 자신의 영감이 금배지를 놓치면 자신도 앞길이 막막해 지기 때문”이라면서 “공천 심사에서 탈락한 사람들도 그렇지만 의원이 아예 불출마 선언을 한 경우엔 더 속이 타는 경우”라고 덧붙였다.
그는 “내가 알기론 불출마 선언한 의원실 보좌진들의 대다수가 거의 패닉 상태”라면서 “의원 그늘에 가려져 있는 보좌진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실제 이번 총선에 불출마 선언을 한 김한길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향후 계획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냥 쉴 계획뿐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공천 심사에서 고배를 마신 이진구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독기를 강하게 품고 있었다. 한나라당 후보의 낙선운동에 앞장서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나는 경제적인 활동이 필요치 않은 사람이다”면서 “당적은 유지한 채 내가 속한 정당 후보의 낙선 운동에 앞장서겠다”며 독설을 뿜어댔다.
이어 “현재 이 지역에 공천을 받은 내정자들로는 절대 총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면서 “한나라당이 아예 충남지역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른 의원실의 또 다른 보좌관은 “요즘 비례대표 의원실 보좌관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귀띔했다. 그는 “비례대표의 경우 보좌진들의 불안감은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면서 “그렇다고 놀고 있는 보좌관들을 그 의원들이 책임져 주는 실정도 아니다”고 말했다.
임기 후 그들의 진로
비례대표를 보좌하고 있는 한 보좌관은 한숨을 내쉬며 “이제 의원 임기가 끝나면 뭐 할지 고민이다”고 털어놨다. 의원 임기가 끝나면 할 일이 없어지니 막막하단 얘기였다.
그는 “더더욱 우리 의원은 지역구에 출마하는 것도 포기했다”면서 “그러니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다수의 보좌관들은 의원 임기가 끝나기 전에 줄대기에 바빠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새로운 직장을 찾거나 다른 의원실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인맥을 총동원한다.
하지만 다른 의원실에 입성하는 것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의원들의 뒤에서 그림자처럼 일을 도맡아 하는 그들이기에 의원을 향한 충성도는 보좌관이 갖춰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이에 대해 “초선 의원들도 자신이 선거 준비를 할 때부터 데리고 있던 보좌진들을 채용 한다”면서 “다른 의원실에 있던 사람을 데려다 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설명했다.
이어 “타 의원실에 들어가는 보좌관들은 그 의원실에 있던 보좌관들과의 인맥이 닿아 그리되는 것이지 의원이 직접 데리고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더 이상 보좌관으로 활동할 수 없다면 이들이 택하는 길은 무엇일까.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모든 보좌관들이 백수가 되는 것은 아니고 그들의 일부는 이미 자기가 갈 길을 정해놨을 것”이라면서 “일반 기업에 취업을 하든 보좌관으로 있든 혹은 당 사무직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아무리 그렇다 해도 현역 의원들도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물갈이를 당하는 상황이고 공천을 받는다고 해도 승리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또 “전체 300여 석의 의원석 중 절반가량이 물갈이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원 한 명당 딸린 식구들이 대여섯명이란 점을 감안할 땐 앞으로 여의도를 강타할 취업난은 실로 대단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