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영남 공천 ‘화약고’ 터뜨렸다…친이·친박 갈등 일파만파
친박계 탈당·무소속 연대·신당 창당 등 공천 후폭풍 휘몰아친다
영남 친이·친박 혈투 ‘일촉즉발’…“당 아니라 국민 심판 받겠다”
침묵하는 박근혜 ‘결단’ 요구 목소리 빗발 “친박 2인3각도 좋아”

한나라당에 북풍한설이 몰아치고 있다. 당의 텃밭이라 할 수 있는 영남권 공천에서 현역의원 25명이 탈락한 것. 당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탈락 의원들은 이를 갈고 있다.
‘피의 목요일’ 곡소리 요란
한나라당 공천이 시작되면서부터 영남권 공천은 ‘뇌관’으로 주목받아왔다. 당의 텃밭으로 공천이 곧 당선으로 연결된다는 점과 함께 당 공천 개혁의 중심지로 꼽혔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밀어오면 영남 공천이 뚜껑을 연 순간, 당은 충격으로 일시적인 공항상태를 맞았다.
영남권 공천에서 탈락한 현역의원은 대구 박종근, 안택수, 이해봉, 김석준 의원, 경북 권오을, 이상배, 임인배, 이인기, 김재원, 김태환 의원, 부산 권철현, 김무성, 정형근, 엄호성, 유기준, 이성권, 이재웅 의원, 울산 강길부 의원, 경남 박희태, 이강두, 김기춘, 김명주, 김양수, 김영덕, 최구식 의원 등 25명이다.
불출마를 선언한 김용갑, 김광원 의원을 포함하면 27명의 의원들이 공천에서 미끄러진 것. 영남권 현역의원이 62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역의원 교체율은 43.5%에 달한다.
이중 친박 의원은 친박계의 좌장 김무성 최고위원을 비롯해 박종근, 이해봉, 이인기, 김재원, 김태환, 엄호성, 유기준, 이강두, 김기춘 의원 등 10명이다. 친이측에서는 박희태 국회부의장을 비롯해 안택수, 김석준, 권오을, 정형근, 김양수, 최구식, 이성권, 이재웅, 권철현 의원 등 14명이 공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 같은 공천은 유래가 없을 정도다. 탄핵 역풍을 뚫기 위해 물갈이를 시도했던 17대 총선에서도 영남권 물갈이율은 42.8%였다. 당 내에서는 이를 두고 ‘피의 목요일’ 혹은 ‘피의 13일’이라는 말로 충격의 강도를 표현하고 있다.
안강민 공심위위원장은 “공심위는 전문성, 당의 정체성과 지역 사회 활동을 중심으로 영남권 개혁지향적인 방법으로 후보를 공천했다”며 “전문성, 활동역량, 도덕성, 당선가능성과 국가와 지역사회 및 당 기여도에 따라 고행 끝에 25명을 탈락시켰다”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여당의 발전적 의회 운영이 중요했다”며 “탈락 의원 중 의정활동이 우수한 의도 있었으나, 개혁을 열망하는 국민 뜻에 부응키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10여 년간 어려운 야당생활을 하면서 당협위원장과 당 소속 후보 신청자들의 탈락에 가슴 아프다. 그러나 화합의 정치목적 아래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 당선 위해 지원활동을 열심히 하는 이들에겐 각종 선거와 후보공천 그리고 가산점을 줘 특별 배려키로 했다”며 탈락자들을 다독였다.
그러나 공천 결과를 받아든 친박계는 울분을 토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친박’이 주홍글씨?
당 공천에 대해 “친박·친이 물갈이 비율을 맞춘 표적공천이며 보복공천”이라며 친박계 의원들의 원성이 잇따르고 있다.
친박계의 좌장 김무성 의원은 공천 결과 발표 후 “결국 예상대로 ‘박근혜 죽이기’가 집행됐다고 생각한다”며 “박 전 대표를 도운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탈락한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급기야 “이재오, 이방호가 공천 개혁을 빙자해 박근혜 죽이기를 하고 있다”며 “이번 공천은 한마디로 ‘청와대 기획, 밀지 공천’이다.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다. 공심위원장과 당 대표, 사무총장과 청와대가 조율해 만든 명단대로 된 것”이라고 ‘청와대 공천 개입설’을 주장하며 당 탈당을 선언했다.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전 대표 캠프의 상임고문으로 활동 서청원 전 대표는 “현재 진행되는 한나라당 공천은 최소한의 원칙도 기준도 없는 밀실야합과 정적 제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는 승자독식에 모든 것을 거는 반역사적 퇴행”이라며 “오로지 박 전 대표를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유능한 정치인들을 생매장시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입으로는 개혁을 외치면서 뒤로는 모든 암수를 동원해 무자비하게 반대편을 숙청해 나가고 있다”고 날선 비판을 했다.
친박계 내부에서는 “영남권 공천은 한마디로 대학살”, “얼핏 보기에는 양쪽 다 출혈이 큰 것처럼 보이지만 당내 친박계 의원들의 수를 생각하면 이건 너무 가혹한 처사다”, “영남권 3선 이상 중진을 보면 이상득, 김형오, 정의화, 최병국 의원 등 친이쪽 인사가 더 많다”는 말이 나오는 등 불만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행동으로 보일 수밖에”
친박계의 불만이 커져가는 것과 함께 박 전 대표가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순간도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 계파의 수장으로 식구들을 챙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친박계 내부에서부터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정치권 관계자들은 판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카드로 ‘집단탈당’을 꼽는다. 전국적인 지지도를 가지고 있는 박 전 대표가 친박계를 이끌고 당을 나선다면 한나라당과 친이계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것.
박 전 대표는 이미 “이 대통령과 분명히 기준을 갖고 공정하게 공천이 이뤄져야 한다는 약속까지 했다. 그런데 국민이 공정하게 되고 있지 않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신뢰는 깨진 것 아니겠느냐”고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몰아친 바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친박계와의 갈등이 당이 갈라지면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한나라당의 ‘원내 제1당’의 꿈이 무산될 수 있다. 이는 곧 이 대통령이 바라는 ‘개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이 대통령이 ‘단일대오’를 형성하기 위해서라도 결국에는 박 전 대표측을 감싸 안을 것”이라는 관측을 제기했다.
박 전 대표의 카드는 그가 원했던 원하지 않았건 이미 던져졌다. 이미 친박계 곳곳에서 무소속 연대나 집단탈당, 신당 창당 등 구체적인 ‘생존전략’이 심도있게 거론되고 있는 것.
김무성, 이해봉, 엄호성, 이인기 의원 등은 영남 공천발표 후 “지역 주민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심판받겠다”고 무소속 출마를 시사했으며 경선 때 박근혜 캠프 제주선대본부장을 맡았던 현경대 전 의원은 공천 탈락에 반발해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진구 의원과 이규택 의원 등 낙천한 친박 현역 의원들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을 중심으로 무소속 연대 결성, 신당 창당, 제3의 정당과의 합당 등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은 이중 신당창당으로 의지를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계 한 인사는 “여러 사람의 뜻을 모은 결과 군소정당에 들어가서 공천을 받고 총선을 치르는 방안이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청원 전 대표도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도, 다른 당으로 갈 수도 있다고 본다”며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근혜계 원내외 인사들의 탈당과 무소속 연대 결성 등 단체행동 가능성을 언급했다.
서 전 대표는 “무소속 연대를 할 경우 예를 들면 기호라든가 이런 것이 일괄 같지 않다. 그리고 지원팀이라든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에 남아 있다면 앞으로도 팽 당할 가능성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5년 후에 박 전 대표를 대통령 만들기 위해서라도 그동안 씨를 뿌리고 밭을 갈자,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이 있는 게 좋지 않으냐 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며 무소속 연대에서 신당 창당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음을 밝혔다.

친박계가 인수할 정당으로 정근모 총재의 미래한국당(구 참주인연합) 합류설이 거론됐다. 하지만 박사모 정광용 대표는 미래한국당이 아닌 선진미래연합 인수에 무게를 뒀다. 그는 <시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모 대학교수가 준비해놓은 당이 있다. 4년 된 당으로 전국 지구당이 여섯 개나 있고 완벽하게 우리한테 인수해 줄 준비가 돼 있다”며 당명을 (가칭) 선진미래연합으로 소개했다.
정 대표는 미래한국당이 아닌 선진한국당 인수쪽으로 가닥을 잡은 이유에 대해 “미래한국당은 부채가 있어 인수가 힘들다”고 전했다.
선거법상 4·9총선거 후보등록 마감일인 26일까지 총선 후보자의 기호를 결정해야 한다. 때문에 친박계의 신당 창당은 26일까지 빠른 속도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치적 결단 ‘?’
정치권은 친박계의 신당 창당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 신당에 박 전 대표까지 합류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극히 극단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영남권 공천에서 친이측도 손해를 보았고 당 전체로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안강민 위원장의 입장을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당 내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에게는 표를 주지 않겠다는 여론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친박계의 집단행동은 ‘계파챙기기’로 전락할 수 있다.
박 전 대표도 “이렇게 잘못된 공천으로는 선거가 끝난 뒤에도 당이 화합하기 힘든 상황이 올 것이다. 무소속 출마는 당사자들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라면서도 자신의 거취에 대한 말은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박사모 정 대표는 “박 전 대표는 아직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았다. 고민 중”이라면서 “당을 나올지 말지는 개인적인 판단에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당을 나올 경우 친박계가 단일대오를 형성, 기동성과 파워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공천이 확정된 친박계 인사들이 당에 남아있는 만큼 이들의 거취를 생각한다면 박 전 대표는 안에 남아주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일부는 당을 나서서 영남권에서 한나라당이 세운 후보와 승부를 벌이고 공천을 받은 이들은 당에 남아 지역구에서 승부를 벌이는 ‘양동작전’을 펴는 것이 후일 친박계가 하나로 모일 때 전국 정당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전략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