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엽 팬택계열 부회장의 협박범으로 알려진 배모(28)씨(본지 350호 참조)가 지난 3월13일 숨진 것으로 확인 됐다. 지난해 말부터 팬택계열(이하 팬택)의 1인 시위로 재계의 시선을 모았던 배모씨는 휴대폰 고장 때문에 박 부회장을 협박한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출소이후에도 “팬택이 누명을 씌웠다”며 팬택 사옥에서 시위하는 등 적극적으로 항의해왔다.
그의 그런 억울함 때문이었을까. 그는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휴대폰의 고장에서 비롯돼 교도소, 자살까지 이르렀던 그의 삶은 불과 28세에 불과했다. <시사신문>이 배모씨의 유족들을 만나봤다.
유족들 오열 “팬택이 이야기만 좀 들어줬어도 자살까지는…”
팬택사옥 앞에서 수차례 자살시도 “나는 팬택에 누명썼다!”
휴대폰 고장으로 시작돼 박병엽 부회장 협박범으로 징역까지
“팬택이 이야기만 좀 들어줬어도 이런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최근 숨진 배모(28)씨 유족들의 이야기다. 배모씨는 팬택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항의하는 과정에서 실형을 살고, 줄곧 “팬택이 누명을 씌웠다”라고 주장해왔다. 그런 그가 결국 충북 제천의 한 야산에서 목을 매고 자살해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소비자와 분쟁이 벌어진 제조업체는 적지 않지만 소비자가 자살까지 한 경우는 흔치 않은 탓이다.
배씨는 지난 3월12일 오후 충북 제천시의 한 야산에서 목을 맨 채 산책 중인 한 시민에 의해 발견됐다. 그의 유해 밑에는 빈 맥주 캔과 소량의 안주만 있을 뿐 어떠한 유서도 없는 쓸쓸한 최후였다.
자살 이유 “팬택밖에 없다”
그는 어째서 자살했던 것일까. 배씨와 함께 살던 형 부부는 그 이유로 팬택과의 마찰 외에는 생각 할 수 없다고 한다. 배씨의 형은 “그 외에 다른 부분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라며 “팬택의 고발로 실형을 살고 많이 힘들어했다”고 토로했다.
실제 배씨는 지난해 11월말부터 팬택사옥 앞에서 간헐적으로 1인 시위를 펼쳤다. 그 시위는 여느 시위와 달랐다. ‘스카이로 인생이 변한 남자’라고 써진 점퍼를 입은 채 한 겨울 바닥에 종이 한 장을 깔고 누웠을 뿐이었다. 물 한모금 안마시고 며칠씩이나 같은 자리에 누워있었던 것이다.
실제 배씨는 지난 1월 본지의 취재 당시 “팬택 앞에서 죽을 각오로 시위에 임했다”라고 밝혔을 정도였다. 그는 “정말 휘발유라도 끼얹고 분신하려고 마음먹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배씨는 취재 이후에도 팬택사옥을 찾아 “팬택의 옥상에서 뛰어내리겠다”라고 말하며 억지로 회사에 진입하려다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고, 이후에는 팬택사옥 앞 나무에서 목을 매려다가 제지당하기도 했다.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지만 팬택 측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으리라는 유족들의 추측이다.
특히 배모씨는 지난해 9월 출소 이후 친구와도 연락을 끊었고, 늘 혼자 집에서 있었을 뿐 별 다른 사회활동을 하지도 못했다.
배씨의 형은 “팬택 앞에서 시위도 하고 전화도 해봤지만 묵묵부답에 전혀 대화가 되지 않는다며 막막함을 느껴했다”면서 “누구보다 착한 동생이었는데 이렇게 가다니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배씨의 시신이 발견된 13일이 모친의 생일이었던 탓에 유가족들의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유족들에 따르면 배씨가 집을 떠난 것은 지난 3월3일이다. 형 부부가 늘 맞벌이로 직장에 나가기 때문에 퇴근 후 집에 없는 경우도 드물지는 않았다. 배씨는 종종 별도의 연락 없이 외출을 하곤 했는데, 팬택 사건 이후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던 탓에 외출 중에는 가족들과 연락조차 불가능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배씨의 귀가를 기다리는 이들 부부에게 날아온 것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제천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3일까지도 배씨가 별다른 고민이나 고통을 호소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배씨의 형은 “전혀 자살의 징후가 없었다”며 “오히려 자기의 형수 생일 선물까지 무리해서 사올 정도로 착실했다”고 설명한다. 이어 그는 “동생은 이미 ‘내가 팬택에게 내밀 수 있는 마지막 카드는 자살밖에 없다’라고 이야기한 적까지 있다”라고 설명했다.
수차례 자살시도 끝에
하지만 배씨가 자신의 억울함에 대해 항의할 수 있는 수단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1월25일 경찰에 체포돼 영업방해죄로 검찰에 송치 된 이후로는 실형을 살게 될까 적잖게 두려워했던 것이다. 배씨 형의 부인 “시동생은 영업방해 혐의로 팬택에서 경찰에 체포된 후 적잖은 공포에 시달렸다. 행여나 또 실형을 살게 될까봐 초인종만 울려도 경찰이 찾아온 것 같다고 깜짝깜짝 놀랐다.

이후 2월 초부터는 배씨가 팬택의 사이버감사팀을 향해 수차례 요구사항을 보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팬택 측에 따르면 그는 ‘누명을 공표할 것’ ‘취직자리를 알아봐줄 것’ 등을 토로했다. 팬택이 누명을 씌웠다는 것을 공표하라는 것이 주요 골자다. 하지만 배씨 e-메일에는 “의견은 철저한 검증을 거쳐 신속하고 공정하게 처리될 것”이라는 회신만 와 있을 뿐 배씨 주장의 수용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가 사용하던 노트에는 “이글을 보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팀이라면 회장이든 아니든 그 역할에 충실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라고 휘갈겨져 있어 당시 그의 심경을 짐작하게 한다. 결국 방법을 더 이상 강구할 수 없었던 배씨가 죽음 택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이뤄지는 대목이다.
유족가슴에 상처로 남아
배씨의 형은 “팬택 시위와 항의를 수차례 설득도 해보고 그만두라고도 말해봤지만 막을 수 없었다”며 “방관자적 자세를 취했던 것은 아닌지 너무 후회스럽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특히 그는 “정말 해준 것도 없이 세상을 뜨게 한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라면서 “생일날 사준 가죽 재킷을 결국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갔다”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부인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그녀는 “배씨는 퇴근하고 돌아오면 집안청소를 해놓거나 설거지도 도와줄 만큼 배려가 많았다”면서 “정말 친동생보다 더 잘하던 시동생이었다. 가슴에 구멍에 휑하게 뚫린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배씨의 유골은 지난 3월17일 화장돼 할아버지의 묘소 앞 소나무에 뿌려졌다. 팬택과 2년이 안된 갈등은 결국 유족들의 눈물과 한 사람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 셈이다. 배씨의 휴대폰 소비자에서 협박범, 이어 자살까지 이르러야 했던 짧은 생애는 주변에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팬택 측 입장 “글쎄, 팬택 때문이 아니래도!”
팬택계열(이하 팬택) 측은 배모 씨의 자살에 대해 안타까운 반응을 보이면서도 책임론으로 번지는 것에 대해 민감한 기색이다. 팬택은 이미 박병엽 부회장이 협박범에 시달리며 재계 구설수에 오르는 등 적잖은 부담감에 시달린 바 있다. 특히 워크아웃 이후 최근 흑자전환하며 정상화를 향하는 팬택으로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A씨는 “사실 배씨의 연락을 직접 받았지만 늘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했고 이에 대해 들어줄 수 없다고 말하는 상황이었다”며 “젊은 친구인데 조금 더 발전적인 데 노력을 쏟으라고 충고했었다”고 밝혔다.
A씨에 따르면 배씨는 크게 누명에 대한 ‘사과공고’와 ‘취직자리’를 요구했다고 한다. 팬택의 C/S팀이라도 좋으니 취직시켜달라고 요구했다는 것. A씨는 당시 이들 요구를 거절했지만 행여나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배씨가 팬택의 대표번호로 끊임 없이 전화했기 때문에 배씨의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A씨는 “나중에는 전화가 오면 은연중에 반갑기도 했다”면서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을 통해 취직할만한 곳을 알아보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자살한 것은 유감이다”라고 설명했다.
팬택 법무팀 소속 B씨는 “사실 배씨는 일반적 소비자보다는 블랙컨슈머(Black Consumer·악질소비자)에 속한다”며 “이미 그가 과거에 모인터넷 쇼핑 사이트 등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던 것을 보면 팬택이 문제가 있어서 이 같은 갈등이 생긴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예컨대 A배씨 개인적인 문제로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홍보실 소속의 C씨는 “팬택이 아주 이야기를 안 들어준 것도 아니고 A씨 경우에서 보듯 해줄 수 있는 한도에서 해줬다”면서 “배씨의 자살에 팬택이 근본적 원인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히려 배씨가 그 추운 날 동상도 감수하면서 시위를 하고, 자살하겠다고 사내로 들어온다면 가족들이 말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오히려 팬택보다는 가족 간의 관계가 원활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C씨는 “팬택 측에서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닌 만큼 자살의 원인으로 보기는 힘들다”라고 강조했다.
▶ 배모 씨, 박병엽 <팬택계열 부회장> 협박 사건 풀스토리
“팬택이 내게 누명 씌웠다!”

그는 당초 A/S센터를 찾아갔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인터넷고객상담실을 통해 수리를 하소연했다. 하지만 “A/S센터는 잘못한 것이 없다”라고 답변이 올 뿐이었다. 결국 배모씨는 이때부터 욕설로 상담코너를 도배하고 팬택사옥을 찾아가는 등 본격적인 항의를 개시했다. 지난 1월 본지 인터뷰에서 그는 “너무 억울해서 다리 뻗고 자지를 못했다”며 “심지어 잘 다니던 직장도 그만둬야 했다”고 회고했다.
2006년 8월 팬택사옥 방문 이후에도 이렇다 할 해결책이 없었고 그는 결국 박병엽 팬택 부회장을 미행하기에 이른다. 결국 이를 눈치 챈 박 부회장이 차를 세우고 배모씨에게 “확인 후 보상해 주겠다. 내일 찾아와라”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 이후 박 부회장과 배모씨의 대면은 이뤄지지 않았다.
팬택 측 관계자는 “배씨는 이후 보상금 300만원을 받았지만 계속해서 박 부회장의 사과를 요구하는 등 들어주기 힘든 요구를 해왔다”며 “결국 박 부회장을 해치겠다는 협박 메일과 전화 등이 이어져 결국 고발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배씨는 2006년 11월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배씨의 주장은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지난 1월 본지 취재 당시 “내가 욕을 하고 협박을 했던 것도 사실이고 잘못이다”라면서 “하지만 팬택 측은 내게 금품갈취라는 누명을 씌웠다. 나는 그걸 참을 수 없다”고 호소했다. 오히려 팬택이 배씨에게 300만원을 쥐어줬고 이를 되돌려주려 했지만 팬택 측은 받지도 않았다 설명이다.
배씨가 지난해 출소 이후 11월말부터 팬택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것도 팬택을 향해 ‘누명을 풀고 사과하라’는 요청이었다. 그는 지올 1월부터는 ‘자살을 하겠다’며 소동을 일으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팬택 측 관계자는 “법정 판결이 난 만큼 대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밝혔지만 배씨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누명을 벗겠다”고 첨예하게 맞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