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전 벌금형 끝내 ‘발목’, ‘6인회의’ 멤버도 낙마
친이·친박, 경악·당혹…총선정국 물갈이 후폭풍
이용희 “지역에서 용납 않을 것” 탈당 선진당 입당
‘구 민주당 탈당파’ 무소속 연대…호남민심 혼란 관측

한나라당은 영남권 공천 심사를 진행한 결과 현역의원 교체율이 역대 최대인 43.5%를 나타냈다. 일부에서는 탈락자들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재심신청서를 내는 등 공천 후유증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한나라당의 공천이 ‘중진 대학살’로 나타나면서 친박계를 비롯해 친이계 중진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계 의원들은 공천 결과에 대해 ‘표적공천’ ‘사(私)천’ ‘보복공천’이라고 반발했고 친이계 의원들 역시 공천 결과에 불만을 표시하며 대집단 반발 조짐을 보이면서도 자신들의 향후 행보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김무성·· 등 ‘친박 무소속연대’ 구성키로
친박계 좌장격인 김무성 최고위원을 비롯해 유기준, 이인기 의원 등은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내비쳤고, 권철현 송영선 의원 등도 출마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 친이계 탈락자들도 가세하면서 한나라당내 대규모 지각변동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계 핵심 의원들은 탈당, 독자 출마를 강행해 ‘무소속 연대’를 구성하거나 신당을 창당하려는 등 조직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박근혜 전 대표의 합류 여부에 따라서는 한나라당 공천 내홍이 이번 총선의 향배를 가를 중대 변수로 부상할 전망이다.
친박계 좌장인 김무성 최고위원은 자신의 공천탈락에 대해 “당권 장악의 걸림돌이기 때문에 제거된 것으로 명백한 보복정치”라고 규정한 뒤 “여론조사 열세자를 비롯, 부적격자들에게 공천권을 주는 무원칙한 공천이 자행됐다”며 청와대와 당 지도부, 공심위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김 최고위원은 이번 공천 결과는 예상했던 ‘박근혜 죽이기’라고 판단, 결국 탈당을 선언했다. 김 최고위원은 “등에 배신의 칼날이 꽂혔다”며 “제가 그토록 사랑하고 헌신했던 한나라당이 여기까지 온 데 대해 비통한 심정을 금치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드시 선거에서 이기고 돌아와 한나라당을 국민의 사랑을 받는 당으로 다시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무소속 출마로 승리할 경우, 다시 한나라당에 재 입당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2월 부정·비리 전력자의 공천 신청 자격을 제한하는 당헌당규에 걸렸으나 박 전 대표를 비롯한 계파 전체가 나서서 막아낸 바 있다. 친박 진영에서 중량감 있는 중진의 역할을 해냈으나 이번 공천에서 끝내 고배를 마셨다.
역시 3선이지만 인천 서구·강화군을 공천에서 탈락한 이경재 의원은 “당협위원장으로서 지역관리를 철저히 해 지난 대선에서 인천 지역에서 1등을 했음에도 나를 탈락시킨 것은 지역 특성과 주민의 뜻을 완전히 무시한 ‘정신나간 공천’”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특히 이번 결과는 박근혜계에 대한 철저한 숙청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지역민의 뜻을 완전히 짓밟은 공천에 대해 주민들의 뜻을 물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공천 과정에 반발한 친박계 인사들이 집단 탈당, 무소속 연대 등의 형식으로 출마하기로 하는 등 집단행동의 가닥을 잡음에 따라, 향후 총선 정국에서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MB측근 공천탈락 “토사구팽 아니냐”
친이계도 공천탈락을 피하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김덕룡, 박계동 의원이 탈락됐다. 김, 박 의원 모두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만큼 이들의 탈락에 대해 당 안팎에서는 “토사구팽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김 의원과 박 의원이 이미 물갈이 대상으로 꼽혀왔다는 점 때문에 물밑 조율을 거친 예고된 탈락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친이계 핵심이자 5선 중진인 김 의원(서초을)은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터져 나왔던 부인의 공천 헌금 수수 파문이 끝내 발목을 잡은 케이스다. 그가 이 대통령의 당내 경선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 때문에 “설마 자르겠느냐”는 구제론이 적지 않았다.
김 의원은 “부인의 잘못은 명예회복의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러한 행동엔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원로그룹이었던 ‘6인회의’ 멤버 가운데 유일하게 ‘지분’을 보장받지 못한 데 대한 불만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 전 대표쪽 성향으로 분류되던 김 의원은 경선 직전 이명박 후보 지지로 돌아섰다. 서울과 호남지역에 분포한 이른바 ‘DR계’ 위원장과 당협위원장도 그를 따라 움직였고 결국 그 차이만큼 경선 승부가 갈렸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김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그룹인 6인회의 한 멤버가 되기도 했다.
때문에 당 안팎에선 김 의원이 낙천됐다고 하더라도 주중 대사 등 새 정부 요직에 기용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공천을 앞두고 이 대통령과 김 의원간 회동설도 꾸준히 제기됐었다. 김 의원측은 이날 주중 대사설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서울 송파병에서 탈락한 재선의 박계동 의원은 이 대통령의 측근을 자임하며 누구보다 경선과 대선에서 앞장섰던 인물, 특히 대선기간 공작정치분쇄 범국민투쟁위원장을 맡아 누구보다 ‘이명박 지키기’에 누구 보다 앞장 섰다. 하지만 2006년 술집 여종업원 추행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윤리위 징계를 받았던 전력이 끝내 그를 낙마시켰다.
박 의원은 “부당한 공천이다. 다른 지역에서 낙천한 인사를 살려서 공천하는 것도 원칙에 어긋난다”며 “납득할 수 없는 공천을 한 공심위의 결정 배경을 우선 파악해 보고 그 다음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겠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위원회 간사를 역임했던 맹형규 의원도 서울 송파갑에서 고배를 마셨다.
3선의 맹형규 의원은 “모두가 알다시피 정치인으로서 흠결없이 열심히 살아왔는데 조금 의외의 결정”이라면서 “‘걱정하지 마라’는 이야기만 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며 충격의 강도가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향후 행보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겠다”며 말을 아꼈다.
역시 ‘6인회의’ 멤버이면서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캠프의 선대위원장으로 선거를 진두지휘했던 5선의 박희태 의원(남해·하동)도 공천에서 탈락했다.
박 의원은 경선 이후 이명박 대선 후보의 막후 의사결정기구로 통한 ‘6인회의’의 멤버로 친이 핵심으로 꼽히면서, 당의 원로로서 차기 국회 국회의장 물망에 오르내렸다. 이 때문에 공심위의 발표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박 의원이 비록 고령(70)에 다선 의원이지만 공천을 무난히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우세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박 의원의 지역구가 전략지역으로 분류되면서 결국 공천에서 고배를 마셨다. 박 의원은 “지난 20년간 국회의원 생활을 하면서 나만큼 깨끗하게 산 사람도 없다”면서 “이럴 수가 있느냐. 기절초풍할 일이다”고 탈락에 대한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박 의원은 “아침까지만 해도 주변에서 걱정하지 말라고 전화가 왔었다”면서 “나를 떨어뜨리고 누가 올라가려고 하는 음모가 없으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남권 현역 물갈이의 상징처럼 지목돼 ‘희생양’이 되긴 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경선 캠프를 꾸릴 때부터 선대위원장을 맡아 경선과 대선 승리에 크게 기여한 만큼 박 의원을 예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박 의원의 비례대표 출마설이 여권 내에서 흘러나오고 있어 향후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대선 당시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에 반대하며 단식을 했던 권철현 의원 역시 이번 공천의 칼날을 피해가진 못했다.
권 의원은 “10년 동안 대변인.대선후보 비서실장. 부산시당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한나라당의 정권창출을 위해 몸을 던지며 당에 기여를 했다”며 “공심위는 개혁 공천이라고 하지만 개혁 세력을 오히려 제거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권 의원은 무소속 출마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당내 경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 경선 캠프의 수행실장을 했던 이성권 의원도 고배를 마셨다. 이 의원은 “나를 떨어뜨려 놓고 국민들한테 개혁공천이란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나. 내가 수구·반개혁적 행동을 한 적이 있느냐”며 역시 재심 청구서를 제출하고, 공천결과에 항의했다.
정형근 의원도 현재 일체 연락을 끊은 채 지역구에서 무소속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물급’배제 총선지형 흔들릴 가능성 관측
통합민주당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원칙을 강조한 박재승 공심위원장은 오는 4·9 총선에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인사들은 예외 없이 공천대상에서 배제하기로 하면서 칼날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공심위(위원장 박재승)가 당초 원안대로 비리·부정 전력자의 공천배제 기준을 확정함에 따라 불법 대선자금이나 정치자금 수수에 연루됐거나 선거법에 저촉돼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자는 공천심사에서 탈락하게 됐다.
공심위의 공천 칼날에 휘둘림을 당한 거물들은 ‘무소속 부대’를 편성하고 돌풍을 예고했다. 당 중진에서부터 주요 당직자, 동교동계에 이르기까지 ‘거물급’ 인사들이 망라돼 있는 이들의 거취에 따라 총선 지형이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다.
통합민주당 신계륜 사무총장은 공천심사위원회가 금고형 이상의 형을 받은 사람을 공천심사에서 제외키로 하면서.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모 대부업체에서 정치자금 3억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8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던 전과에 의해 공천 심사에서 탈락됐다.
신계륜 사무총장은 전날 공천배제 방침이 흘러나왔을 때만 해도 “위원들간 의견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발언을 자제했으나 자신의 공천배제 기준이 확정되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신 총장은 “내 마음은 무척 아프고, 슬픈데 이것은 개인의 심정이고, 지금은 당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속내를 밝혔다.
그러나 신 총장은 공천 심사에서는 탈락했지만 당내에서 총선기획단장으로 총선에서 실무를 총괄 지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신 총장은 “제 개인적 억울한 측면과 아픔에도 불구하고 당이 전진해야 할 길이 있기 때문에 저는 그 길을 위해서 제가 가진 여러 가지 능력과 소신을 받쳐서 노력하는 것이 지금 현재의 저의 당면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용희 국회부의장 역시 비리전력자 공천배제의 기준에 걸려 통합민주당 공천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 국회부의장은 “이럴거면 사면복권제도는 왜 만들었느냐”며 “지역에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저 사람들이 애당심이 있느냐. 동지애가 있느냐. 그냥 칼을 막 휘두르고 간다”고 불쾌한 심기를 드러냈다.
탈당 후 무소속 출마의사를 여러차례 피력해 왔던 이 부의장은 지난 17일 자유선진당에 입당했다. 이로써 선진당은 충북 옥천·보은·영동이 지역구인 4선의 이 부의장의 입당으로 충남·대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지역으로 분류한 충북권 바람몰이에 적잖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다선 의원인 3선 정동채 의원도 이번 공천 심사에서 탈락했다. 사연은 ‘바다이야기’사태의 주무장관이었다는 점이 결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원은 “공심위 결정에 승복하며, 당의 앞날에 영광이 있길 바란다”며 “지역주민에 감사함과 죄송함을 전한다. 당에 힘을 보탤 수 있으면 보태겠다”고 밝혀 호남지역 탈락 의원 중 유일하게 즉각 수용의사를 밝혔다.
불법 정치자금 사건에 연루됐던 김민석 최고위원(서울 영등포을) 역시 “낙인찍기”라고 반발하면서도 “당의 처리과정을 지켜보면서 거취를 결정할 것”이라며 조금 더 고민의 시간을 가질 뜻을 밝혔다.
김대중(DJ) 전 대통령 측 박지원 비서실장(전남 목포)과 DJ 차남 김홍업 의원(전남 무안.신안)은 공심위의 결정에 대한 수용불가를 천명하며 다음 행보에 나설 태세다.
김 의원은 “주변 사람들과 상의해볼 것”이라며 무소속 출마 여지를 열어 놨다. 한 측근은 “탈당까지 불사할 태세”라며 격앙된 분위기를 전했다. 박 실장 측은 “침묵으로 봐주시면 된다”고 했다. 그는 탈당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탈당을 통한 무소속 출마를 결행할 경우 호남지역 민심은 일대 혼란을 겪을 것으로 관측된다.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호남지역 정서가 DJ측 인사들의 이탈로 양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신중식 의원은 함께 공천에서 탈락한 채일병, 이상열 의원 등 ‘구(舊) 민주당 탈당파’ 의원들과 원외위원장들을 규합해 무소속 연대를 구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신 의원은 “의견을 모아야 할 것이지만 전 지역에 걸쳐 경쟁력있는 예비후보들을 규합, 무소속 연대나 준결사체를 구성해 총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은 뒤 비판세력에 가담하자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상열 의원은 “탈락 이유에 상당히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면서 “구 민주당은 의원수가 적어 당직 활동과 국회 특위 활동이 많은 관계로 본회의와 상임위 출석률이 낮을 수밖에 없는데 공천심사가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들이 탈당을 통한 무소속 출마를 결행할 경우 호남지역 민심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