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안마도 침몰선에 대한 진실 조만간 밝혀질듯
영광 안마도 침몰선에 대한 진실 조만간 밝혀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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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6월10일 미·중 연합군의 폭격으로 침몰된 화물선으로 밝혀져

▲ 멀리서 바라다 본 안마도 입구에 등대가 보인다
영광군 홍농면에 위치한 계마 항에서 정기 여객선을 타고 2시간 30분여를 뱃길로 가면 말안장 모양의 제법 큰 섬에 도착하게 되는데, 안마 항이 소재한 낙월면은 조선시대에는 진월이라 불리우다 1896년 지도 군에 편입되면서 낙월도로 개칭되었으며 191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광군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안마 항은 군소어항으로서 인근 도서어민의 생활 근거지로 발전되어 1973년 지방어항으로 지정 고시되어 개발되던 중 1986년 국가어항으로 승격 지정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인구수가 줄어 100여명이 살고 있고 추운 겨울에는 거의 많은 주민들이 육지에 나와 살기 때문에 언제나 조용한 곳 이지만 예전에는 1,000 여명의 인구가 살았고 마을도 다섯 곳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조용한 마을이 작년부터 언론의 집중적인 보물선 보도로 갑자기 유명해지기 시작하면서 안마도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높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해방 2개월 전 전남 영광군 낙월면 안마도 인근 바다에서 침몰된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 화물선의 탐사 및 인양을 위하여 2006년 6월27일 허가를 받고 9월말부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언론의 보도를 피해가면서 조용히 작업을 진행 시켰던 것은 국익이 우선이라는 집행부의 생각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친 파도와 바닷물속의 시야가 절대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세간의 관심을 끌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바다 속의 보물 선을 찾아 헤매고 있고 더욱이 몇 년 전 진도 앞바다 동굴에서 보물을 찾았다고 보도하여 주가를 조작한 후 많은 피해자들을 울리게 했던 사건이 모든 국민들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은 시점에서, 또다시 보물선 이야기를 세간에 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 작업을 위해 안마도를 향하고 있는 관계자들의 야심찬 출발

그러나 침몰선 인양에 대한 보도는 지방의 조그만 지역신문에 보도되면서 각 언론사에서는 1920년 이라고 발표했는데 그것은 잘못된 보도이고 지방에서 지역 신문이 보도한 내용을 보고 그대로 여과 없이 쓴 것으로 당시의 소화 20년은 1945년이며, 1920년으로 보도하면서 당시 무슨 미. 중 연합군의 공군폭격이 있었겠냐며 L씨는 너털웃음을 짓기도 했다.

아무튼 최초의 발굴자이면서 허가권자인 A씨는 전남 여수사람으로서 10년 전부터 안마도에서 어촌계의 사업을 도와주며 다수의 잠수부들을 거느리고 사업을 하는 수산업자였다고 하는데 이 침몰선에 젊음을 바쳤다고 할 정도로 미쳐있었고 모든 재산을 탕진하면서 이끌어 오다가 한계를 느껴 최근에 J씨에게 허가권과 인양 권을 넘겨주었다고 하는데 발견 당시 처음에는 수년 동안 안마도에서 사업을 하면서 주민들과 가깝게 지내다 보니 나이 드신 주민들이 마을 뒤쪽 바다에 일본 화물선이 해방 바로 전에 폭격을 받아 침몰되어 있으니 잠수부를 시켜 확인해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 화물선은 군함 한척이 호위를 하고 오던 중에 미군의 폭격을 받고 급히 섬 쪽으로 새까만 연기를 쏟아내면서 닥아 온 후 얼마 안 되어 침몰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A씨는 화물선을 찾기 시작했고 100여명이 넘는 잠수부들을 바다 속에 투입하여 여러 가지 자료들을 수집하게 되었는데 결국에 침몰된 선박은 일본 광남기선 소속의 다도환(다도마루)이라는 화물선으로 일본에서 국내나 중국을 들어올 때는 잡화를 실어 나르고 일본으로 들어갈 때는 철광석 등을 싣고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선수 방향은 정확히 일본 쪽을 향해 있다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탐사전에 작전회의를 하고 있는 관계자들과 작업자들의 진지한 회의 광경
그 후 몇 년간을 탐사하면서 재산을 탕진하고 주위의 싸늘한 시선 속에서 살아오던 중 드디어 지난해 2월경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L씨라는 지인을 만나게 되면서 침몰선의 인양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A씨에 따르면 여수에 사는 L씨와 목포에 살고 있는 P씨 그리고 서울의 B씨는 내 인생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 때문에 오늘의 인양작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인데 실제로 허가 과정에서 부터 어려울 때 마다 해결사 노릇을 해 왔다는 것이다.

더욱이 2006년 10월 달의 날씨는 100년 만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좋은 기상조건으로 작업하기에는 너무 좋은 여건이었기에 조금 시 마다 진행되는 한 달에 두 번의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세 번째 작업을 진행 하던 중 리프팅작업(뻘 제거작업)을 끝내고 올라온 작업자가 나무상자가 많이 있는 것 같다고 보고하면서 순식간에 갑판위의 많은 사람들은 흥분하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작업자들이 선수 창고를 드나들면서 나무상자임이 확실하다고 나무판자를 가지고 나와 확인해 보니 고운 무늬에 반듯하게 대패질 되어 절반은 불에 타있는 것이 확실하게 폭격은 맞았구나 하고 생각을 하며 계속해서 리프팅작업(뻘 제거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11월초 작업까지는 너무도 쉽게 작업이 진행되었고 두 번째 조금 시 작업 때부터 상자를 인양하려는 시도는 이어져 갔는데 겨울철로 접어든 날씨가 애사롭지 않게 파도는 높고 추위와 강한 바람으로 인해 더 이상의 작업을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탐사 및 인양을 위해 현장에 배치한 탐해호의 모습

A씨와 L씨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주위의 아는 사람들은 물속에 상자가 있다면서 그거 하나 못 건져 올리냐며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는데 정말 물속 사정도 모르면서 아무렇치도 않게 말하는 사람들이 정말 밉더라고 말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조류가 심하게 흐르는 곳인데 쉽게 가능 하겠느냐며 실제 낚시대에 지름 약4Cm정도 되는 무거운 추를 달아 물속에 가만히 던져보니 순식간에 100m되는 낚시 줄이 풀어지면서 튕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너무 빠른 속도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고 한다.

해양수산청에 날씨 관계로 당분간 작업을 중지하겠다고 보고하고 3개월을 보내면서 작업 관계자들의 고충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고충을 느꼈다고 하는데 주위의 시선과는 달리 우선 본인들이 알고 있는 바다 속 선수 창고에 있는 나무상자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을 것인가, 가장 궁금하여 몇 날 며칠을 잠 못 이루고 어떤 날은 술을 먹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가 없었다고 한다.

드디어 2007년 4월에 들어서면서 작업은 다시 재개 되었고 선수 창고에 다시 채워진 뻘 제거작업은 약5일간에 걸쳐 어느 정도 마치고 나무상자를 들어 올리는데 만 모든 신경을 쓰면서 작업을 계속 진행시키려 했는데 아무리 좋은 날씨라 할지라도 물속에서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시야가 나오지 않은데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허탈해 하기도 했다.

▲ 바다속 침몰선의 갑판에 있는 녹슬어 있는 밧줄을 묶는 비트
더욱이 선수창고 내부는 폭격과 침몰하면서 받은 충격으로 엉망진창이 되어 바닥이고 벽이고 구분 없이 뒤섞여 있어 도무지 바로서서 힘을 쓸 수가 없을 정도로 헝클어져 있었고 선수창고이다 보니 조그만 박스를 들어 올려 확인해 보니 몽키 스패너 줄 등이 나왔으며 더 이상 상자를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집행부들의 고뇌에 찬 얼굴들에는 실망의 빛이 어리기도 했지만 실망도 잠시 뒤로 미루고 협의 끝에 3개로 나뉘어진 화물칸을 탐사해 보고 난후 물건이 있으면 준설선을 이용하여 끌어 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작업 팀장이었던 K씨에 따르면 바다 속에 침몰 되어있는 화물선은 실제로 선수가 일본 쪽을 향해 있으며 선수 앞에서 부터 약 40미터정도 선수창고와 3개의 화물칸이 그대로 살아있는데 작업조건이 너무 어렵다 보니 어떤 누구도 쉽게 접근을 못했을 거라 생각하고 그래서인지 작업을 하면서도 느끼는 감이 무척 좋았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한편 금속 탐지기를 가지고 방문한 대구에 살고 있는 L씨의 말에 의하면 침몰선박에는 여러가지 금속이 가득 실려 있다고 확신 했다고 하는데 관계자들은 반신반의 하면서 작업은 계속하고 있으며, 그래도 나이 드신 노인들이 어렸을 때 직접 보았는데 호위선을 거느린 화물선이니 뭐가 있어도 있지 않겠냐는 말씀에 잔뜩 기대를 가지고 열심히 작업을 했다고 하는데 2007년 날씨는 6월부터 잦은 비와 돌풍으로 인해 그 이후 도저히 작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어 중단한 채 2007년도를 훌쩍 넘겨버린 채 허가기간이 끝나 현재는 재 허가를 받아 다시 작업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에 있다고 한다.

▲ 바다속에 잠수하기 전 장비를 추스리고 있는 모습

현재 세 개의 화물칸 위에 헝클어져 있는 그물을 치우고 일부 잔해들을 들어내고 중간 출입구 부분과 선박의 측면을 절단하여 내부의 뻘을 기계를 이용하여 제거한 후 실려 있는 화물의 실체를 확인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늦어도 금년 7월경에는 반세기가 훨씬 지난 64년 전의 비밀이 세상에 공개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L씨는 말하면서 고생한 만큼 우리들에게는 틀림없이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면서 작업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했다.

참고로 국유재산에 매장된 매장물의 발굴에 관한 규정을 보면 바다에서는 허가권자가 80%, 정부가 20%의 지분을 갖게 되며 육지에서는 60:40의 지분을 갖게 된다고 하는데 만약 많은 금이 실어있다면 국제적인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하나 이미 1964년도에 한, 일 간 청구권협약에 의해 이미 일본은 한국 영해에 침몰된 선박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했다고 하며 유네스코 협약에 의해 우리나라도 회원국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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