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지지하고도 끈 떨어진 YS “한나라당 교만 바로잡아야”
DJ, 박지원 비서실장·김홍업 의원 공천 배제 공식적 불만 표출

18대 총선을 승리로 장식하려는 각 당의 공천이 살벌한 가운데 이번 공천의 가장 큰 특징은 동교동계와 옛 민주당계의 사실상 소멸이다. 이미 위축된 동교동계는 현실 정치권에 남아 있던 근거지마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김대중 전 대통령 측 박지원 비서실장과 김홍업 의원이 공천심사조차 받지 못했다. 특히 옛 민주당계의 몰락은 확연히 드러난다. 외견상 당 대 당 통합의 형태로 합류했지만 공천 과정에서 제 몫을 보존하지 못하고 계파로서 근거마저 흔들린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일까 정치를 떠났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대 총선을 코앞에 두고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전직 대통령들이 일제히 ‘공천 유감’을 표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이 4월 총선과 관련해 일제히 입을 열었다. 공천에서 탈락한 혈육 또는 측근들에 대한 엄호와 지원, 그리고 이들을 탈락시킨 당 지도부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 18~20일 사이 부산·마산·거제를 차례로 방문했다. 그는 18일 부산 경성대에서 강연했고, 다음날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김무성 의원(부산 남구을) 사무실을 방문하고 격려했다.
마지막날 그는 고향인 거제 생가를 방문했다. 2년 만에 거제를 찾은 그는 가는 곳마다 한나라당 공천을 비난했다. 거제에서 그는 “이번 한나라당 공천은 잘못됐다”며 “거제 지역구의 한나라당 공천도 잘못됐다”고 말했다.
그는 김무성 의원의 사무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선거에는 국민의 지지가 제일 중요한데 한나라당에서 공천했다는 사람보다 여론조사에서 7배나 높은 지지를 받은 김무성 의원을 낙천시키는 것이 공천이냐”고 반문한 뒤 “한나라당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경성대 특강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을 “아주 잘못된 공천”이라며 비난했다.
옳은 말, 정의로운 말 할 터
한나라당 총선 후보 공천 결과 후 김 전 대통령의 ‘거침없는 발언’은 언론과 일반인들의 관심 대상이 됐다.
김 전 대통령은 ‘상도동계’로서 공천에서 탈락한 김덕룡 의원과 오찬 회동을 가진 자리에서도 “한나라당이 교만한 것에 대해 국민들이 고쳐줘야 한다. 내가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옳은 말, 정의로운 말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계속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면서 연일 한나라당을 맹공격하고 있다. 퇴임 이후 정치 일선에 이렇게 적극 개입한 적이 거의 없었다.
김 전 대통령의 ‘거침없는 발언’을 두고 민주계 수족이 공천 과정에서 모두 잘려나간 것에 대한 강력 반발이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공천 심사에서 YS 핵심측근인 김덕룡 의원을 비롯해 YS 대통령 시절 청와대 민정, 사정비서관을 지낸 김무성 의원과 이규택 의원 등을 포함한 범민주계 10여 명 인사들이 공천을 받지 못했다. 민주계에선 이를 두고 ‘민주계 말살 공천’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YS도 무작정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며 직접 ‘행동’에 나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나라당과 선을 분명히 긋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민주계 인사들의 명맥을 잇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미 정치를 떠난 사람이 총선을 앞두고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 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반응이다.
한나라당 경선 때부터 이명박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온 김 전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변화는 아들인 현철씨가 ‘비리 전력자에 대한 공천 배제’ 규정으로 아예 공천 신청조차 못한 데다 민주계인 김 의원과 김덕룡 의원마저 공천에서 탈락, 당내에 민주계가 고사될 직전에 놓여있기 때문으로 풀이되는 가운데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이 총선정국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 올 것으로 보인다.
꺼져가는 생명 보고 있을 수 없어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차남인 김홍업 의원과 최측근인 박지원 전 청와대비서실장의 공천 배제가 확실시 된 후 사흘째 침묵을 지켰다. 당시 최경환 비서관은 “오늘도 그대로다. 아무 말씀 없으셨다”고 상황을 전했다. 측근들은 “아무런 말이 없다” “화가 나셨다” 등 엇갈린 반응을 동교동 밖으로 전하고 있지만 사실상 DJ는 일종의 ‘침묵시위’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일단 김 의원과 박 전 실장은 7일 공천심사 재심 신청서를 당에 제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김 전 대통령과는 물론 측근들과도 대책을 상의하며 분주히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 의원은 “보궐선거에서 압승해 이미 유권자들에 의해 명예회복이 됐는데 (공심위 결정은)아주 서운하다”면서 “일단 재심을 청구할 것이며 (탈당 문제는)지지자들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김 전 대통령과 거취를 상의할 수밖에 없다. 결국 재심을 신청했다는 것은 아직 김 전 대통령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 의원과 박 전 실장은 당 공심위에 재심청구까지 했으나 당이 공천을 받아들이지 않자 결국 무소속 출마를 결행했다.
두 사람이 탈당해서 낙선할 경우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진다. 하지만 아들과 ‘오른팔’의 정치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을 터, 이런 점에서 김 전 대통령의 침묵은 ‘시위’와 ‘고민’ 두 가지를 다 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물론 본인이 직접 나서진 않았지만 그동안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최경환 비서관이 자신의 이름으로 낸 성명에서 “김 전 대통령은 ‘당은 비리에 관련된 사람을 배제할 책임도 있지만, 억울하게 조작된 일로 희생된 사람의 한을 풀어줄 책임도 있다’고 생각하고 계신다”고 말함으로써 차남 김홍업 의원과 박지원전 비서실장이 민주당 공천에서 배제된 것을 두고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이어 “김홍업 의원의 경우, 같은 문제를 두고 지난번에는 괜찮다고 공천을 주고, 이번에는 불가하다고 공천을 주지 않았는데, 김 전 대통령은 이것은 일사부재리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생각하신다. 더욱이 지난 보궐선거에서 더블 스코어(2배)로 압승해 심판을 내린 지역구민을 무시한 처사라고 생각하고 계신다”고 설명하고 “두 분의 출마문제는 두 분이 각자 선거구민과 상의해서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계신다”고 덧붙였다.
총선을 앞두고 두 전직 대통령의 발언이 거침없는 이유는 공천 후폭풍 속에 전직 대통령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며 본격적으로 현실정치에 가세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것으로 풀이되는 동시에 한편으론 계파 챙기기에 집착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크다
김 전 대통령은 “아직 우리의 지지기반은 살아있다”고 자신 한 뒤 “그런데 우리 스스로 의기소침해서 기적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며 자신의 측근들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에서 일어났던 공천갈등을 두 전직 대통령이 강력하게 비판하고, 직접 선거사무실에 방문해 강도높게 비난하고, 비서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각에선 자신을 따르고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 동거동락을 했던 사람이 공천과정에서 배제되었다고 강하게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