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공천 내홍…강재섭 불출마로 ‘책임론’ 짊어진다
계파 갈등에 경고, 줄타기 끝 승부수 ‘큰 강재섭’ 이룬다
‘박재승 효과’ 탄 손학규 개혁의 조율자 역할로 상승곡선
종로 출마로 당 ‘수도권 바람’ 선봉에 선 ‘바보 손학규’?
총선을 위해 살고 총선을 위해 죽고 총선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 이들이 있다. 각 당을 이끌고 있는 대표들이다. 총선에 당의 생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선두에 선 이들은 어깨는 무겁다. 또한 이 막중한 책임감은 이들의 정치사를 다시 쓸 ‘기회’이기도 하다. 이번 총선에서도 여당인 한나라당과 야당인 통합민주당 수장의 정치 주판은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다. 강재섭 대표는 총선을 통한 기회를 위해 ‘희생’을 택했다. 당장 당 내 모든 분란을 자신의 불출마와 대표 사퇴 카드로 막아서며 ‘희생의 정치’를 보이고 있다. 손학규 대표도 대의를 위해 몸 바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가 최종적으로 택한 것은 ‘실익’이다. 박재승 칼날을 활용 당 내 파워맨들을 거침없이 날림과 동시에 자신의 인물들을 총선 곳곳에 배치, 세력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
여당과 야당의 선두에서 총선을 향해 달리는 이들의 눈빛이 매섭다. 4·9 총선을 기점으로 자신이 이끌고 있는 당뿐 아니라 자신의 정치 인생을 다시 써야 하기 때문이다.
‘노련한 여우’ 강재섭

대권을 목표점으로 뒀으나 지난 2006년 7월 당권으로 방향을 급선회, 박근혜 전 대표의 지원을 받아 이재오 의원을 누르고 대표최고위원 자리를 꿰찼다. 당시 당 내에서는 대표 자리를 두고 오간 ‘뿌리론’ ‘색깔론’ 등 거센 공방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상태여서 강 대표는 수장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리더십을 시험받아야 했다.
그가 정치사가 새롭게 쓰여지기 시작한 것은 대선을 치르면서다. 당 경선 초부터 과열양상을 띄었던 친이(친이명박계)·친박(친박근혜)간 갈등과 이로 인한 당의 위기를 특유의 균형감각으로 조율해 나갔다. 박 전 대표의 지원으로 당선, 박 전 대표를 위한 당 대표가 될 것이라는 기존이 우려를 씻어낸 것이다.
계파 갈등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을 때마다 그의 조정능력은 빛났고 경선 후 이명박 대선후보와 대선을 향해 전력질주, 대선 승리를 일궈냈다.
하지만 그가 치러야할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당 공천을 두고 친이·친박간 갈등이 재현된 것이다. 낙천한 친박 의원들은 탈당, 친박연대 혹은 무소속으로 한나라당의 표밭을 위협했다.
박 전 대표도 “나도, 국민도 속았다”며 당 공천을 지적하는 한편 “강 대표를 믿고 ‘하시라. 대신 잘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나이, 지지율 기준 적용도 멋대로였고 대선 지지율(당 기여도)은 이방호 사무총장이 반영하겠다고 얘기했는데 오히려 득표력 높은 사람은 다 떨어졌다. 또 살생부와 비슷하게 됐다”며 “이는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강 대표와 이방호 사무총장을 싸잡아 질타했다.
‘희생’으로 더 큰 ‘승리’ 얻는다
강재섭 대표는 당 공천에 대한 박 전 대표의 비판에 총선 불출마로 답했다. 박 전 대표의 독한 발언을 자신의 불출마라는 더 큰 불로 막아선 것이다.
그는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공천이 잘못돼 총선에 불출마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희생해 당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 결심한 것이다. 내 스스로 희생해서 솔선수범을 보이면 이제 모두가 다 수긍하지 않겠느냐. 더 이상 친박이다, 친 MB다 이런 얘기 나오지 않길 바란다. 공천은 신이 하는 공천에도 불만이 있기 마련”이라고 공천으로 인한 파열음이 커지는 것을 막았다.
강 대표의 ‘맞불작전’은 큰 파급효과를 줄 수 있던 박 전 대표의 발언을 ‘공천에 대한 원칙’으로 막아서는 역할을 했다. 강 대표는 이어 “이제 당대표로서 떳떳하게 곳곳을 누비면서 당을 위해 희생하겠다. 저는 공천 받은 우리 한나라당의 후보만을 위해 어디든 뛰어가겠다”고 총선 지원 유세를 펼치겠다는 뜻을 밝혀 “한나라당 지원유세를 하지 않겠다”는 박 전 대표와 대조를 이뤘다.
또한 강 대표는 “7월11일까지가 내 임기”라며 “총선에서 과반이 안 되면 내가 책임지겠다”며 ‘책임지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강 대표의 초강수는 당의 위기를 위한 ‘자기희생’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 일각에선 그의 지역구에 ‘친박연대’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사덕 전 의원이 출마를 선언한 데다 친박 측 인사들이 공천 책임을 강 대표에게 몰아붙이려 한다는 점도 결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 일고 있다.
강 대표는 홍 전 의원의 출마에 “나오면 붙어야지”라고 말했으나 TK(대구·경북)에서 박 전 대표 열풍을 타고 친박이 득세, 지역구 수성이 어려워 질 것으로 보이자 위기의 순간 몸을 뺀 것이라는 것.
정치권 한 관계자는 “강 대표는 5선 다운 노련한 정치력을 뽐내는 인물”이라며 그를 ‘여우’라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강 대표는 대표최고위원이 되기 전에는 당권이 아니라 대권을 바라봤던 인물”이라며 “불출마를 통해 잃은 것 보다는 얻은 것이 많다”고 평가했다.
이미 대선과 총선 공천 등을 통해 자신의 세력기반을 키운 상태에서 불출마를 선언, ‘희생의 정치인’이라는 큰 이미지를 통해 도약을 노렸다는 것이다. 또한 그의 뒤에는 대선을 통해 도움을 주고받은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자기희생’을 통해 과반의 의석을 확보한다면 살신성인으로 총선 승리를 일궈냈다는 우호여론을 업고 당 내 요직으로의 자리이동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결과가 향하는 곳에는 ‘차기 대권’이 있다. 강 대표는 이미 한번 대권에 대한 뜻을 비쳤었다. ‘킹메이커’로 자리를 옮기기는 했지만 꿈이 사라지지 않은 이상 모든 정치적 상황에서 ‘큰 강재섭’이 향하는 길엔 ‘대권’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는 게 정치적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모진 세 살이 끝 ‘새집’ 얻다

그러나 2007년 3월, 손 대표는 “시베리아 벌판에 서겠다”며 한나라당을 탈당, 매서운 바람과 차디찬 땅만이 있는 이른바 ‘제3지대’로 나왔다. 그 곳에서 ‘선진평화포럼’으로 독자노선을 걸으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범여권의 ‘대통합 기류’에 합류,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의 주역으로 대선후보 경선에 참가하게 됐지만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구축한 조직의 힘을 넘지 못했다. 대선후보는 정 전 장관의 차지가 됐고 손 대표는 기꺼이 그의 한 팔이 돼 대선을 치러냈다.
상황이 역전된 것은 대선 직후 책임론이 불거지면서부터다. 정 전 장관은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했다. 새롭게 대표에 추대된 것이 인고의 시간을 보냈던 손학규 대표. 그러나 이는 손 대표에게 결코 유리한 자리는 아니었다. ‘총선까지의 한시적인 자리’라는 제한 때문이었다.
지지율 하락 곡선을 그리는 당과 총선 결과에 따른 대표직의 향배, 손 대표는 “독배인줄 알고 이 잔을 들었다”는 말로 복잡한 심경을 대신하며 대표직에 올랐다.
‘손학규 체제’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정부조직 개편안과 인사 파문으로 민심을 잃은 까닭도 있겠지만 그 자신도 박재승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공천위원장을 영입, 당 내 개혁과 안정의 구도를 맞추는 등 ‘조율자’ 역할을 하는 대표로 무난한 연착륙을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손학규 체제’ 후 당의 지지율은 안정됐고 이어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박 위원장은 ‘박재승 신드롬’을 일으키며 당 공천 개혁을 단행, 당 내 변혁을 주도했다. 박 위원장에게 공천에 대한 ‘전권’을 위임한 손 대표로서는 공천 공정성 시비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손대지 않고 코푸는 격’으로 당 내 주요 세력들의 힘이 약해지는 효과를 얻게 됐다.
당 지도부가 공천에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공천 결과를 볼 때 수도권 386 등 이른바 손학규계가 당의 주류로 발돋움 한 것이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비례대표 구성을 보면 ‘손학규 체제’라는 말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상위순번에 손 대표가 추천·영입한 인물과 측근들이 눈에 띈다. 반면 대선직후까지만 해도 당내 최대 계파를 형성했던 정동영계는 ‘멸문지화’라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라고 전했다.
‘바보 손학규’의 희생 카드
손 대표가 내민 카드에도 강 대표와 같은 ‘희생’이 있다. 지역구 출마가 그것이다. 일찍이 비례대표나 연고가 있는 곳에서의 출마를 염두에 뒀던 손 대표에게 당 공심위는 수도권 출마를 종용했다.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였다.
수도권 민심을 반영한다는 상징성을 가진 종로에서 승리, 수도권에 ‘민주당 바람’을 일으켜 달라는 주문이었다. 손 대표는 기득권을 버렸다. 그는 종로 출마 회견문에서 “지금 우리는 뼈를 깎는 아픔을 견디며 자기 쇄신의 과정을 걷고 있다. 공천혁명을 통한 환골탈태의 변화의 길을 걷고 있다. 쇄신만이 당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길이며, 국민의 여망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라며 “야당세력을 이끄는 당의 대표로써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세력이 살아나서 서민을 대변하는 건강한 야당을 살리는 일이라면 어떠한 어려움도 피하지 않고 과감히 정면으로 맞서겠다”고 자신이 힘겨운 싸움의 선봉에 서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손 대표는 “당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자기희생과 결단이 필요하다. 희생과 결단을 통한 쇄신만이 당을 구하고 이명박 정부의 독선과 독주로부터 국민의 살림살이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솔선수범하겠다. 종로 출마를 통해 당의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이명박 1% 특권층 정부의 독선과 횡포를 막아내는 수도권 대오의 최선봉에 서서 싸우고자 한다”고 비장한 각오를 전했다.
그러나 그의 종로 출마에 대한 정치권의 견해로 여러 가지로 나뉜다. 종로에 터를 가진 한나라당 박진 의원에 의해 열세에 처한 그의 사정으로 봤을 때 ‘솔선수범’의 ‘희생’으로 봐야 한다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바보 손학규’라고 그를 평하는 이도 있다.
‘바보 손학규’의 의미는 이중적이다. 당 공천을 통해 지지율 상승을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수도권에서 민주당이 한나라당의 지지율을 넘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종로 출마는 ‘바보같은 일’이었다는 것이 표면적인 ‘바보 손학규’의 의미다.
또 하나는 이런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손 대표가 종로 출마를 통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을 것’으로 보고 출마를 결심했다고 보는 이들의 의견이다. 질 게 뻔해보이던 지역구에 출마, 당선을 하면 ‘폭풍같은 기세’를 얻게 되는 것이고 당선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안정한 자리를 던지고 당 대표로서 힘든 싸움의 선봉에 서는 담대함을 보였다’는 당 안팎의 여론몰이가 가능하다는 것. 이를 통해 총선 후 3개월 내 치러질 당 전당대회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도 있다.
손 대표가 향하는 길의 끝에도 ‘대권’이 있다. 한나라당에서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 사이에서 ‘캐스팅보트’ 역을 할 수 있었지만 과감히 새로운 기회를 노린 것도 ‘만년 3위’는 되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로였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우선 손 대표가 총선 후폭풍을 이겨내는 것이 관건이다. 지역구 공천은 ‘박재승 카드’에 넘겼지만 비례대표 구성 과정에서 불거진 박상천 공동대표와의 나눠먹기 논란과 정동영계와의 앙금이 ‘내부의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