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저래 앞길 막막한 상황 ‘한반도 대운하로 정면돌파’만이 살길
“침묵하던 MB, 이재오와 만남 이후 ‘국토대개조론’ 언급은 전략적”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의 당권 쟁취를 향한 오랜 염원은 이뤄질까. 그가 7월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을 쥐기까지는 넘어야할 산이 너무 많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정몽준 최고위원 등 내로라하는 대선후보급 경쟁자들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탓이다. 뿐만 아니다.
이 의원이 당권에 도전하기 위해선 우선 현실적으로 총선에서 먼저 승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조차도 만만치 않은 상황. 대운하 반대 여론이 거세지면서 최근 자신이 출마할 지역구 여론조사 결과,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에게 한참 밀리고 있다.
당내 그의 입지도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그야말로 갈 길이 ‘첩첩산중’이다. 이 의원이 당권 쟁취를 위해 거쳐야할 난관과 핵심 계획 등을 취재했다.

해프닝으로 끝난 ‘323 쿠데타’ 소장파로부터 ‘배신자’ 낙인
‘이상득 죽이기’+신진세력 규합전술, 아니면 승산은 없다?
한나라당 최고 실세로 통하는 이 의원이 18대 국회 입성에 성공하면 그는 곧바로 당 접수 계획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계획이 순탄하게 간다면 차기 대권에 도전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하지만 총선에서 실패할 경우, 한나라당 권력 구도에서 멀어질 공산이 크다.
이 의원이 원외로 빠진다면 이상득 국회부의장 등 직속 ‘친이계’ 세력은 물론 박 전 대표 세력 등과 대등한 관계에서 권력 투쟁을 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의원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발등에 불 떨어진 총선에서 무슨 수를 쓰던 이겨야 하는 것이다.
문국현 산맥 ‘대운하로 뚫어라’
하지만 그가 가야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 ‘대운하 전도사’ 이미지가 강한 그와 반대의 캐치프라이즈를 내건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의 전면전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 문 후보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최근 대운하에 대한 반대여론이 거세지는 통에 이 지역 여론조사에서 이 의원은 문 후보에게 철저히 압도당하는 중이다. 이 의원 입장에선 분명한 ‘악재’다.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래저래 앞길이 막막한 상황에서 이재오는 ‘한반도 대운하로 정면돌파 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운하도 문제지만 최근 당내 입지가 줄어들고 있어 힘있는 여권 실세 이미지가 퇴색되고 있는 점이 그로서는 또 다른 고민일 것”이라고 말했다.
‘친이계’ 핵심 인사도 “실세 중의 실세였던 이재오의 파워는 예전 같지 않다”면서 “얼마 전에 벌어진 ‘323 사건’(지난 3월23일 55명의 소장파가 이상득 부의장 불출마를 요구했다가 하루 만에 요구를 철회해버린 일) 때문에 이재오 모양새가 이상하게 돼버렸다.
이상해진 모양새 탓에 이재오 이미지가 좀 안 좋아졌다”면서 “그래도 이재오 측에선 ‘반드시 살아남아 당권을 쟁취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지난 23일 밤 이명박 대통령과 이 의원의 만남에 대해서 “이재오가 여우긴 여우다”고 말했다. 이 의원 자신은 불출마할 생각이 없으면서도 이상득 부의장과 “동반 불출마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을 때 대통령 입장에선 ‘그러지 말고 둘 다 같이 출마해라’라는 답변을 미리 계산하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한나라당의 또 다른 인사도 이에 대해 “그동안 대운하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던 MB가 이재오를 만난 다음날 ‘국토대개조론’까지 언급해가면서 대운하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은 매우 전략적으로 분석 된다”고 전했다.
그는 “그 말은 결국 두 사람이 만난 자리에서 이재오가 ‘나를 밀어주려면 대운하에 힘을 실어 달라’고 요구했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라 잘라 말했다. 이어 “이재오가 총선에서 살 길은 대통령이 나서서 대운하를 강조, 운하 사업에 대한 찬성여론을 다시 살려내는 것 뿐”이라면서 “이재오 힘만으론 어림도 없기 때문에 대통령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23일 밤, 이 의원은 이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당시 불출마 논란이 일었던 이상득 부의장과 자신의 거취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 의원은 또 대통령에게 운하 공약에 대한 적극적인 이슈화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다음날인 3월24일, 국토해양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국토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소극적 입장이 아니라 큰 입장에서 구조를 한 번 바꿔놓을 필요가 있다”며 운하 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일단은 이 의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이 끝나자 이 의원 또한 대운하에 대한 ‘국민투표론’을 거론, 운하에 대한 찬성 여론을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323 쿠데타’ 해프닝
이러한 이 의원의 행보는 이상득 부의장을 의식한 것에 기인한다. 대선 이후 권력 구조 새판 짜기에서 이 부의장 세력에게 밀린 이 의원의 당내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득 부의장 세력에게 밀리는 것뿐만 아니라 박 전 대표와 정 최고위원에게도 밀릴 지경이다.
박 전 대표 측 핵심인사는 “이번 총선에서 이재오가 낙선할 경우 이재오의 정치생명은 끝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 의원의 한 측근은 “현재 상황에서 우리 측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이상득 부의장이고 일단 이상득부터 제거해야한다”고 귀띔했다. 그는 “최근에 있었던 ‘323 쿠데타’도 이 일과 무관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55명의 소장파를 동원해 일으킨 ‘323 쿠데타’도 이 의원의 위기감과 연관성이 짙다는 말이었다.
지난 23일 ‘친이계’ 한나라당 공천자 55명은 이상득 부의장의 불출마를 요구하며 자신들의 공천권 반납 배수진을 쳤다. 55명 중 ‘친이계’ 좌장격인 이 의원과 측근 인사들이 핵심에 섰고, 나머지 사람들도 대부분 ‘친이계’로 분류되는 인사들로 구성됐다.
당시 상황은 매우 급박했다. 핵심 인사 몇몇은 공천권을 실제로 내던질 각오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는 곧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이상득 부의장 측에선 이들의 불출마 의사를 무시했고 이 의원마저 “불출마 선언한 적 없다”며 주장을 접었다. 게다가 이 대통령도 이들의 동반불출마에 대해 격노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대통령 측근이 이를 막았기 때문이었다.
이번 사태로 가장 당내 입지가 어려워진 건 역시 이 의원이다. 이상득 부의장 입장에선 잃은 것이 없었지만 이 의원으로선 심각한 데미지를 입었다.
55명의 소장파를 동원한 ‘323 쿠데타’는 우스꽝스럽게 끝난데다가 정두언 의원을 비롯한 많은 소장파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등 매우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다.
범이명박계의 ‘갈림’
‘범 이명박계’의 분화도 이 의원에게는 유리하지 않은 조건이다. ‘범이계’는 이번 거사로 이른바 ‘이재오 직계’와 정두언 의원을 중심으로 한 소장그룹으로 갈렸다.
이 의원과 정두언 의원은 각각 이 대통령의 핵심측근이었지만, 대선 직후 이상득 부의장의 ‘형님정치’가 시작되면서 공동 견제에 나선 바 있다. 이번 거사 초기에도 두 그룹은 일시 협력했지만, 결국 등을 돌렸다.
따라서 이 의원이 해결해야할 시급한 문제로 ‘세력 결집’ 또한 대두되고 있다.
특히 ‘323 쿠데타’와 관련, ‘친이계’ 한 인사는 “이상득과 불출마하겠다고 나섰을 때 대다수 소장파들은 ‘이재오만 죽일 수 없다’면서 나름 의연히 나섰지만 하루 만에 꼬리를 내려버린 행태를 보고 한숨만 나오더라”고 했다. 이 인사는 이어 “이재오와 단짝인 정두언은 언론에 대고 심한 말까지 하지 않았느냐”라고 반문했다.
실제 정두언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부의장의 불출마가 바른 길이고 이 전 최고위원도 불출마하겠다고 해서 소장파가 50명 이상 뜻을 모았던 건데 이제 와서 자신은 출마하겠다고 하니까 다들 황당해하고 있다”며 이 의원을 비판했다.
현재 상황에서 이 의원이 당권을 쟁취하기 위해선 ‘이상득계’와의 세력다툼에서 승리해야만 한다. 정치권에선 이 의원이 당내 주도권을 잡는 가장 적절한 시나리오가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과반에 실패하는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과반 실패하면 이재오 유리?
정치권의 정통한 인사들은 이에 대해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과반에 실패하고 책임론이 부상한다면 이재오는 이상득계, 특히 인선작업을 주도적으로 이끈 박영준 등을 상대로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되면 자연스럽게 ‘이상득계’를 압박하면서 주도권을 챙길 기회가 생긴다는 얘기다. 특히 과반 의석 실패의 주요 원인을 ‘말도 안 되는 청와대 인선 및 장관 임명’을 명분으로 내세운다면 ‘이상득계’는 자연스럽게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었다.
일각에선 “이재오 의원이 총선에 승리하고 소장파까지 규합하는데 성공하는 경우라면 당권을 놓고 싸워볼만 하다”는 얘기도 설득력 있게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박근혜계’와 ‘이상득계’ 틈에서 어느 정도의 지지를 이끌어 낼지 미지수라는 리스크를 안고 있다.
‘친이계’의 한 핵심 인사는 이에 대해 “이재오는 이상득계가 힘을 실어줄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정몽준과 박근혜 등 대선후보급 인물들과 전면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이재오는 박근혜나 이상득, 두 사람에 비해 급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재오는 새로 국회로 진입하는 신진세력들을 차례차례 규합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하다”며 “‘이상득 죽이기’를 계속하면서 이와 동시에 신진세력들을 자신 편으로 끌어들이는 전술을 펼치지 않는다면 사실상 승산이 없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