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 업계에 ‘응축수’라는 뜨거운 감자가 부상하고 있다. 고효율 보일러로 알려진 ‘콘덴싱보일러’에서 나오는 응축수가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논란의 발원지는 일반보일러 생산업체 귀뚜라미보일러다. 귀뚜라미 보일러 측은 “콘덴싱보일러의 응축수가 환경을 파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콘덴싱보일러를 생산하는 대부분의 보일러 업계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반발하는 상황. 오히려 귀뚜라미가 콘덴싱보일러가 아닌 일반보일러만 출시한 상황에서 선두업체 발목잡기라는 반격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들의 논란을 <시사신문>이 추적해 봤다.
헤쳐나가. 해쳐나가
경동·대성 “알카리성 생활하수와 섞이면 자연히 중화 될 것”
최근 보일러 업계의 신경전이 본격적으로 불거질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공식적으로 보일러 업계들은 “우리가 주시하는 것은 국내가 아니라 세계”라고 밝히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아직도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내 시장을 둘러싼 암투가 벌어지는 상황이다. 이 암투의 떠오르는 이슈는 바로 ‘콘덴싱보일러’다.
논란의 발원지는 40여년간 보일러업계 1위를 지켜온 귀뚜라미보일러(이하 귀뚜라미)다. 귀뚜라미 측 관계자는 “콘덴싱보일러는 친 환경은커녕 환경을 파괴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이 제시하는 주장의 핵심은 ‘수질오염’이다. 콘덴싱보일러가 높은 효율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소시킨 것으로 알려졌지만 역으로 그 오염이 고스란히 수질오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논란의 핵심은 ‘응축수’
이 같은 주장에 다른 보일러 업체들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귀뚜라미를 제외한 주요 보일러 업체가 모두 콘덴싱보일러를 출시하며 시장전환에 첫 수를 둔 상황인 탓이다. 현재 보일러업계의 신경전은 귀뚜라미를 제외한 대부분의 업체가 귀뚜라미와 대립각을 세우는 형국이다.
문제의 핵심은 ‘응축수’다. 콘덴싱보일러는 공통적으로 응축수라는 액체가 맺혀 흘러나온다. 콘덴싱보일러 자체가 가스 연소시에 날아가는 수증기를 응축시켜 이 과정에 방출되는 열을 회수하는 시스템인 탓이다. 이때 가스 속 포함된 수분이 응축수가 된 만큼 액체는 산성을 띈다.
귀뚜라미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사용할 때 이 응축수가 하수구를 통해 배출되면서 하수관을 부식시킨다”며 “나아가 응축수라는 무기산에 의해 산성이 된 하수가 생태계를 파괴시킬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30년 전부터 콘덴싱보일러를 사용해 관련 문제점과 검증을 거친 유럽과 달리 국내는 난방문화가 상이함에도 검증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실제 유럽에서 독일의 경우 산업용 대용량 콘덴싱보일러의 경우 응축수가 대량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염두 ‘중화기’ 설치를 의무화 하고 있다. 대용량의 응축수가 하수로 흘러드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경동나비엔과 대성셀틱이다. 경동나비엔 관계자는 “응축수는 ph(페하)3~4정도로 오렌지주스 정도의 약산성에 해당된다”면서 “오히려 알카리성인 생활하수와 중화되기 때문에 환경 친화적”이라고 반박했다. 대성셀틱 관계자도 “유럽에서는 하수계로 응축수를 배출하는데 아무런 제한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규제는커녕 콘덴싱보일러 설치를 의무화 하는 분위기”라고 역설했다. 오히려 일반보일러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콘덴싱보일러보다 연간240~420kg를 더 발생시킨다는 주장이다.
사실 이들의 응축수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수년전부터 콘덴싱보일러의 응축수 논란은 정기적으로 불거져왔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 논란이 일어나는 배경에 ‘보일러 업계의 타산’이 작용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콘덴싱보일러의 원조 격인 유럽에서는 이미 CO2배출이 적은 콘덴싱보일러 설치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콘덴싱보일러 설치를 의무화 했다”며 “정부에서도 이런 지원정책을 갖춘다고 하면 일반보일러만을 생산하는 귀뚜라미가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반면 콘덴싱보일러 업체도 환경오염 논란에 휘말리면서 ‘중화기 설치 의무화’ 등이 추진된다면 일반보일러와 가격격차가 더 크게 벌어진다”며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되기 때문에 콘덴싱보일러 업체에서도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내다 봤다. 콘덴싱보일러를 둘러싼 신경전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논란 딛고 ‘친환경’ 되나
결국 이런 논란의 과정에서 가장 혼란을 겪는 것은 소비자다. 한쪽에서는 친환경이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환경오염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을 신뢰하기에는 현재까지 콘덴싱보일러 응축수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구체적 자료나 근거가 희박한 상황이다.
보일러 전문가들은 이 논란이 콘덴싱보일러가 점유율을 높여가는데 있어서는 넘어가야 할 ‘논란’으로 보고 있다. 아직 절대다수의 점유율을 자랑하는 일반보일러에 대해 콘덴싱보일러가 ‘차세대 보일러’로 인정받기 위한 과제라는 지적이다. 귀뚜라미와 경동나비엔·대성셀틱을 필두로 설전이 식지 않는 보일러 업계의 새로운 화두 ‘응축수’가 새로운 발전 기회가 될 수 있을지 세간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 콘덴싱보일러란?
콘덴싱보일러는 보일러 작동시 발생하는 배기가스를 일반보일러처럼 배출하지 않고, 배기가스에 포함된 많은 양의 수증기를 응축시켜 열에너지로 재흡수 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열효율이 일반보일러보다 좋아 가스가 절감되고, 일반보일러에서 배출되던 수증기를 회수하면서 이산화탄소의 발생도 감소된다.
콘덴싱보일러 기술이란 이 수증기의 열을 흡수하는 기술의 총칭인 셈이다. 대신 일반보일러에서 하나만 사용되던 열교환기를 두 개 설치해야하는 등 원가도 상승돼 일반보일러보다 비싸질 수밖에 없다.
현재 5대 보일러 업체 귀뚜라미보일러, 경동나비엔, 린나이코리아, 대성셀틱, 롯데기공 중 귀뚜라미를 제외한 4개 업체가 콘덴싱보일러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뒤늦게 귀뚜라미보일러도 콘덴싱보일러를 제작, 발표 했지만 아직까지 판매계획은 잡히지 않은 상황.
귀뚜라미보일러 관계자에 따르면 “환경적으로 검토되지 않은 콘덴싱보일러를 판매하는 것은 소비자에 대한 배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