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인생은 내 삶의 전부로 중단 없는 연구와 개발로 매진
조리는 정성과 청결이 어우러진 예술적 표현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의·식·주·중에 어느 것을 최우선으로 선택해야한다면 당연지사 식을 선택할 것이다. 그만큼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식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 어느 곳을 가도 국가, 지역, 가정에 따라 고유의 음식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좀 더 고차원적인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해 연구, 개발하면서 등장한 것이 오늘날 전문음식점으로 그 인기는 날로 더해가고 있다.
이와함께 뭔가 특별한 맛과 향을 통해 이뤄낸 음식의 기술을 이어가기 위한 방편으로 명인제도를 마련, 오늘날 각 분야의 명장들이 선정돼 그 기술에 따른 인재양성이 매년 추진되고 있다.
그 가운데 음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밑바탕이 되고 있는 조리부문의 명장은 다른 기능명장에 비해 적은 편이지만 계속된 인재배출로 조리기능사를 꿈꾸는 후학들의 관심과 그 열기는 고조되고 있다.
특히 각 분야의 최고가 되기까지는 수많은 노력과 고통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처럼 최고는 언제나 외로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낸 결실이다.
그 중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작정 집을 나와 시작된 조리인생을 살면서 빈틈없는 가르침으로 후배양성과 뛰어난 기술력으로 2004년도 조리부문 기능장에 선정된 정 영도 명장의 삶 또한 남다르다.
과학적인 조리기술연마로 선망의 대상
조리직종은 각종 조리재료를 사용하여 한식·중식·일식·양식 등의 음식을 만드는 것으로 포항출신인 정 영도 명장(호텔 프레지던트)은 한국최고의 조리사가 되는 꿈을 갖고 호텔에 취업, 30여년을 한결같이 조리사로 살아온 인물로 2004년에 선정된 조리명장이다.
정 영도 명장은 조리사를 천직으로 생각하며 그동안 음식문화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는 연구와 기술개발을 바탕으로 과학적인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국내에 소재한 최고급 특급호텔 및 전문음식점을 방문, 각종 조리기법, 식재료관리법, 주방설계시스템을 공부한 인물로 다른 조리사보다 다양한 조리현장을 직접보고 체험하여 맛과 영양은 기본이고 데코레이션 부분이 뛰어난 명장중의 명장이다.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각종조리경연대회에 출전해 최고상을 받기도 했으며, 2000년 서울국제요리축제에서 대상, 01년과 02년도에는 서울국제요리경연대회에서 금상을 2년 연속 수상하여 많은 조리사들로부터 존경과 함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조리에 있어 조리의 기본이 식재료의 올바른 이해와 활용방법에 있음을 가장 중요시하는 평소 지론을 바탕으로 한 「식품조리재료학」을 출간하여 식재료를 연구하는 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와함께 다양하고 지속적으로 신상품을 개발 및 발표하여 한국조리기술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조리의 최일선에서 터득한 각종 Know-how를 조리에 입문하는 학생들에게 전수시키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조리사로도 평가받고 있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호텔에 취업
아마도 국내 명장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하나의 기술을 습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평생을 살아가기란 외롭고 고된 삶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기술을 국가에서 인정받기란 쉽지 않지만 명장이 되기까지는 모진 고통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랜 기간에 터득한 기술과 수상경력을 통해 지금에 와서 명장이라는 최고의 기능사로서 명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처음부터 조리인으로 삶을 살아가겠다는 계획은 서 있지 않았다. 다만 청소년기 시절 배가 고파서 무작정 집을 나와 기차를 타고 도착한곳이 대전이었다. 그러나 무작정 집을 나와서 갈곳 없이 기차의 종착역이던 대전역에서 서성거리다 재건대(속칭:넉마꾼)에 끌려가 3개월 정도 생활하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도망쳐 도착한곳이 유성이었지만 이곳이 유성이라는 것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되었다.
이렇게 유성에 도착한 나는 배가 고파 우연히 들어간 곳이 만년장관광호텔(현재 리베라 호텔)이었다.
호텔후문을 통해 들어간 나는 나중에서야 알게되었지만 당시 주방장을 만나 그동안의 행적과 배가 고프다는 말을 하고는 우선 배고픔을 해결했다. 그리고는 어디 갈곳도 할 일도 없는 나로서는 어딘가에 정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주방장에게 매달렸다.
이곳에서 월급이 없어도 좋으니 숙식만 해결해 달라는 조건만으로 주방장에게 부탁해 호텔에 취업, 사회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호텔 종업원 생활은 잔심부름부터 굳은 일은 도맡는 일이었지만 오랜기간 동안 근무하면서 주방장과 다른 종업원들이 하는 조리기술을 조금씩 보고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통해 음식의 기본을 배우면서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정 영도 명장은 말한다.
고객의 기쁨이 최고의 행복
조리인생을 살면서 많은 고통도 있었지만 좋은 일도 많았다. 그 중에서도 조리인으로 명예롭게 생각하고 즐거웠던 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전 김영삼 대통령이 호텔에 방문, 식사를 하면서 지금까지 이렇게 맛있고 입맛을 돋게 하는 음식은 처음이라며 즐거운 식사를 대접했던 일이며, 어렵고 힘들었던 일로는 과거 63빌딩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이곳에서는 17년 동안 근무를 하면서 60여일 정도밖에 쉬지 않고 근무를 했다. 그래서인지 동료들로부터 미움을 사기도 했다. 다른 동료들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일만 한다는 이유에서다. 때로는 여유를 부리며 휴일을 즐겨야 하는데 오로지 일밖에 모르는 자신 때문에 쉬고싶어도 쉬지 못한다는 동료들간의 불만으로 결국 원치 않은 퇴사를 해야만 했던 일이 가장 아픈 기억으로 남는다고 정 영도 명장은 말한다.
공과 사를 구분하는 지도력으로 후배양성
정 명장은 평소 지론에 있어서 매사에 정확하고 깔끔한 성품의 소유자다. 그래서 63빌딩에서 근무할 때도 맡은바 책임을 완수하고 윗사람으로부터 질책을 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며 음식에 있어서 정성과 청결을 최우선으로 일관해왔다.
그리고 모든 일에는 원칙이 있듯이 원칙 없는 일은 언젠가 흐려지고 질서 없는 무의미한 일이 되고 만다는 생각에 자신의 발전을 위해 자신을 질책하고 노력하는 남다른 모습이 있었기에 동료들간에 한때나마 고통이 뒤따랐지만 지금은 그 때의 일들이 오늘이 있도록 하는 커다란 뒷받침이었다고 말한다.
정 명장은 언제나 공과 사를 구분하는 지도력 있는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매사 동료들에게 조리의 기본은 물론 하나의 가르침을 주더라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지시하는 것으로 일관하는 모습이 지도자의 덕목을 갖춘 인물이라며 동료들간에 정 명장을 평가하고 있다.
남보다 반발 앞서는 노력이 성공의 덕목
모든 일에는 우선이 있다. 따라서 자신이 어떠한 일을 통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겠지만 그 중에서도 정직과 성실이다. 이와함께 자신의 위치에서 항상 최선을 다한다는 신념과 노력이 함께 한다면 언젠가는 그 결실은 보게될 것이다.
그리고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남보다는 반발이라도 앞서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며, 뭔가 특별한 노하우가 형성되어야 가능한 것이라고 정 영도 명장은 말한다.
그래서 최고는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지만 무엇보다도 주위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할 때 비로서 최고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민경범기자 mkb@sisafocus.co.kr
인터뷰
호텔 프레지던트 정 영도 조리이사
봉사활동으로 인격수양
명장이라고 해서 모든 것에 최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분야의 최고 일뿐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초보자나 다름없다. 그래서 정 영도 명장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명장회의 손색없는 회원으로 앞으로도 인재양성에 매진함은 물론 이웃과 함께 하는 더불어 가는 삶을 이루어갈 것이다.
특히 현재 하고있는 김포에서의 1주일에 8∼10시간 정도를 치매노인복지관을 찾아 목욕이나 청소를 하는 봉사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것이며, 여유가 되는 데로 소년소녀 가장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하루일과는 신문으로
언제나 오전 4시30분에 일어나 6시까지는 호텔에 출근해 신문을 읽어보는 것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하루종일 호텔업무에 종사하다보면 사회의 이모저모를 볼 수 없어 되도록 빨리 출근하게 된다. 이와함께 잠시나마 조리학을 연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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