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지휘부 경질설’ 고개 드는 사연
삼성 ‘지휘부 경질설’ 고개 드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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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라인에 선 오너 일가…‘책임론’ 모락모락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삼성특검에 전격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1995년) 이후 13년 만의 일이다. 16대 대선자금 사건, 안기부 X파일 사건, 경영권 불법승계 사건 등 각종 사건의 중심에서 서슬퍼런 칼날이 겨눠졌지만 한 번도 소환 조사를 받지 않았던 이 회장이다. 더구나 이번에는 부인인 홍라희 삼성리움 관장과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까지 ‘오너 일가족 소환 조사’라는 삼성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삼성으로서는 ‘치욕’으로 기억될 것이란 게 재계의 시선이다. 때문일까.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초기 재계 일각을 중심으로 떠돌았던 ‘삼성 지휘부 경질설’이 또다시 입방아에 올랐다. 어찌됐든 삼성 내부에서 책임론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는 배경이 깔려 있다. <시사신문>이 그 내막을 따라가 봤다.

이재용→홍라희→이건희…삼성 오너 일가 줄소환 진기록 남겨
소환 인사들 ‘회장 알지 못했다’ 방어 불구 회장 소환 못 막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지난 4월4일 특검의 소환 조사를 받았다. 1995년 11월8일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대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지 13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이 회장은 굵직한 사건의 중심에서 여러 차례 ‘소환설’의 주인공이었지만 그룹 차원의 조직적 방어와 해외외유, 건강상 이유 등을 들어 매번 소환을 피해왔던 터다. 심지어 2000년 이후 해마다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거론됐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한번도 출석하지 않았던 그다.
법적인 처벌 여부를 떠나 소환이 가지는 상징성은 그만큼 크다는 게 재계의 시선이다.

온몸 방어 무용지물 ‘삼성의 치욕’

뿐만 아니다. 이번엔 부인인 홍라희 삼성리움 관장과 차기 총수인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도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피의자 신분이나 참고인 신분 등 각각에 붙여진 명분은 달랐지만 오너 일가의 소환 조사라는 삼성으로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진기록(?)을 남긴 셈이다.

사실 특검 수사가 시작된 이후 이 회장의 소환설은 특검 안팎에 계속되어 왔던 사안이다. 일각에선 시기가 문제일 뿐 ‘직접 소환은 불가피하다’는 해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분위기였다.

하지만 삼성 내부의 시선을 조금 달랐다. 실제 특검 초기에 만난 삼성 관련 인사는 “이건의 회장이 소환 조사를 받도록 내버려둘 삼성이 아니다”는 말로 소환만큼은 어떻게든 막겠다는 의지를 엿보였다.
이런 분위기는 특검 수사가 진행되는 내내 특검 안팎에서도 감지됐던 부분이다. 일례로, 특검에 소환되는 삼성 핵심 인사들 대부분이 ‘자신이 알아서 진행한 일들이다. 회장은 전혀 알지 못했다’는 일관된 진술을 하면서 오너에 튈 불똥을 차단하기 바쁜 모습을 보였다.

▲ 지난 4월2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이 삼성특검 사무실로 출두하고 있다.
또 이런저런 의혹들이 삼성에게 비판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여기에 차명계좌 의혹의 꼬리가 드러나면서는 ‘삼성의 2인자’로 불리는 이학수 부회장이 ‘온몸 방어’에 나서는 듯 승계과정에 옛 구조조정본부(전략기획실)의 개입 여부를 시인하기도 했다. 이 회장의 지시 여부를 밝히는 게 특검 수사의 핵심이지만 이 부회장의 구조본 개입 여부 시인으로 ‘전략기획실 차원에서 총대를 메려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특검 주변에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삼성 핵심 인사들의 방어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의 소환은 막을 수 없었다. 어차피 이 회장으로부터 총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하는 특검의 목적상, 종착역은 이 회장 직접 소환 조사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때문일까. 재계에선 또다시 ‘삼성 지휘부 경질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초기 한동안 재계 일각에서 입방아를 늘어놓던 시나리오다. 대국민 사과 정도로 조기에 수습할 수 있었지만 결국 커져버릴 때로 커져버린 사태에 대한 책임을 누구든 짊어져야 하지 않겠냐는 배경이 깔려 있다.

무너진 자존심, 전기실 책임론 부상

여기에 이 회장 일가의 소환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일각에선 ‘전략기획실의 완전한 해체’ 시나리오까지 나돌고 있다. 법적 책임은 물론 무너진 삼성의 자존심에 대한 책임을 피해가기 어렵다는 풀이에 따라서다.

▲ 지난 2월28일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한남동 특검사무실로 출두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항간에 특검 이후 ‘검찰 재수사’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삼성 지휘부의 전면 교체설까지 나돌고 있다”면서 “특검 수사가 별다른 성과없이 막을 내려 오히려 삼성에 면죄부를 주는 모양새가 될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이럴 경우 여론 환기용 카드로라도 그룹의 전면 개편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편, 특검팀은 배임 혐의 등을 적용해 이 회장을 기소할 계획이지만 비자금 등의 명확한 물증이 없어 구속 영장 청구는 어렵지 않겠냐는 내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부회장 등 삼성 핵심 인사들에 대해서는 처벌 수위를 놓고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사법처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삼성그룹은 오너 소환 등 일련의 특검 수사에 대해 “마지막 조사가 끝날 때까지 성실히 임하겠다”는 짤막한 공식 입장을 밝혔다.


▶ 삼성특검팀, 무엇 조사하고 어떤 결론 내릴까?

삼성특검팀에 전격 소환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어떤 조사를 받았을까. 또 일련의 의혹들에 대해 특검팀은 어떤 결론을 내리고 수사를 마무리하게 될까.

▲ 지난 4월2일 홍라희 리움미술관장이 삼성특검 사무실로 출두하기 직전 진보신당 당원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피케팅을 하고 있다.
일단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이 큰 줄거리의 조사 대상이다. 삼성에버랜드 사건과 삼성에스디에스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발행 등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경영권 승계 과정이 핵심인 것이다. 삼성 계열사들이 이 전무에게 몰아주기 배정을 했던 것이 이 회장의 지시로 이루어진 것인지가 주요 조사 내용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비자금 문제도 비중이 크다. 차명소유로 드러난 삼성생명 지분과 1300여개의 삼성증권 차명계좌가 비자금 성격인지에 대한 것이 핵심이다. 고 이병철 선대 회장에게 물려받은 이 회장 일가의 개인적인 뭉칫돈이란 삼성 측의 주장이 특검으로부터 어떤 조사 결과로 발표될지 이목이 모아지는 대목이다.
이밖에 정관계 불법 로비 의혹 부분도 관심이 모아진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리를 폭로하는 과정에서 제시한 삼성 내부 문건에 적혀있던 ‘회장 지시 사항’이라는 로비 정황이 어떤 실체로 드러나게 될지 여론의 궁금증이 높다.

하지만 특검팀 주변에서는 이 회장 소환을 삼성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수순 밟기로 해석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불법 로비 의혹의 경우 삼성으로부터 로비를 받았다고 지목된 인사들의 소환 조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회장에게 무엇을 추궁할 것이 있었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실제 삼성가 안주인 홍라희 삼성리움 관장의 경우 지난 이 회장 소환 이틀전인 지난 4월2일 소환돼 6시간 동안이나 조사를 받았지만 특검팀은 무혐의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삼성 오너 부부의 소환은 여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 회장과 홍 관장의 소환 조사 당시 기자들 200여명이 몰려 취재 경쟁을 벌였고, 경찰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전경 병력 300여명을 특검팀 주변에 배치했다. 특검팀 주변에서는 성역없는 조사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일부의 시위도 벌어져 긴장감을 높였다.

▶ “삼성, 범죄집단 아니다!”
이건희 회장, 특검 소환되던 날…

4월4일 오후 1시58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서울 한남동 특검팀 사무실에 소환된 시각이다. 국내 재계 최고의 거상이 소환되는 탓일까. 현장은 그야말로 북세통을 이뤘다. 언론사 기자들과 경찰, 시위대 등 특검팀 주변은 발 딛을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다는 방증인 셈이다.

이 회장은 포토라인에 서서 수백여대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작심한 듯 삼성 비리 의혹 전반에 대해 단호하게 부인했다.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과 계열사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선 “지시한 기억이 없다. 한적 없다”고 했고, 삼성생명 차명주식 의혹에 대해서는 “(상속재산이 맞는지) 난 모르겠다”고 말했다. 덧붙여 정관계 로비를 지시했느냐는 질문에도 “없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불편한 심기도 감추지 않았다. ‘글로벌 기업 삼성이 범죄 집단으로 인식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범죄집단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렇게 옮긴 여기 계신 여러분(기자)들이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맞받아쳤다.

하지만 이 회장은 국민들에게 “그룹 회장이니까 당연히 책임을 느낀다. 여러 달 동안 소란을 끼쳐 대단히 죄송하다.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간에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비리 의혹이 불거진 이후 처음으로 공식적인 사과 발언을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올라간 이 회장은 조준웅 특검과 간단한 면담을 가진 뒤 8층 조사실에서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비자금 의혹, 불법 로비 의혹 등 3대 핵심 의혹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한편 이날 특검팀 사무실은 이른 아침부터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일부 언론사는 하루 전날부터 포토라인 주변에 자리를 잡기 위해 취재용 사다리를 비치해 두는 등 취재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각 방송사에서 내보낸 중계차들도 하루 전날부터 특검 사무실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또 오전부터 삼성SDI 울산공장 노동자와 진보신당 관계자 등이 나와 특검팀 주변에서 시위와 기자회견을 벌였다. 한 시민이 “아름다운 구속”이란 피켓을 들고 한남대교 위에서 시위를 벌이다 경찰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오후 1시58분, 이 회장이 담당 변호사와 비서 1명을 대동하고 특검 사무실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이들은 “이건희를 구속하라”는 피켓시위를 벌였고, 이 회장은 경찰 저지선 사이로 특검 사무실 로비에 발을 들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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