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자동차가 새 모델발표를 앞두며 재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제네시스를 필두로 외국 유수의 자동차와 직접적으로 겨루겠다는 의지다. 이 배경에는 세계와 겨뤄도 품질에서 뒤지지 않는다는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자신감이 있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사실상 A/S 측면 등이 취약한 국내 시장에서 외제차와 ‘품질’을 겨루기에는 아직 부족한 측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품질에 대한 평가는 완성차뿐만 아니라 후속 관리 등에서도 이뤄지기 때문이다.
세계 자동차와 일전 앞둔 현대차의 자존심 품질경영 성적표
목소리 커야 서비스 다 받는 ‘요상한’ 서비스센터 지시사항
현대자동차가 변혁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표적 세단인 에쿠스를 단종 시키고 올해 말 신형 최고급 모델인 VI(프로젝트명)을 출시할 계획이다. 그 뒤로 라비타, 투싼, 그랜저 등의 후속모델 출시가 이어진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목적은 확고하다. 세계 유수의 경쟁사를 뛰어넘는 브랜드를 구축하겠다는 욕심이다.
그 근거로 자신하는 것이 바로 ‘품질경영’이다. 외제차에 비해 잔고장이 많던 90년대 이전의 현대자동차에서 각고의 발전을 이뤘다는 평가를 듣는 부분도 바로 품질이다. 하지만 현대차의 품질경영을 소비자가 체감하기는 아직까지 쉽지 않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현대자동차의 A/S를 둘러싸고 세간의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 탓이다. A/S는 자동차가 폐차되기 전에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거쳐 가는 과정이다. 때문에 정작 A/S부분에 느끼는 소비자의 불만은 고스란히 품질평가에서 감점이 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손님가리는 서비스센터?
현대자동차가 최근 쏘나타와 그랜저 등에서 발견되는 ‘부동액 황변 현상’(부동액이 누렇게 변하는 현상)에 대해 한국소비자원의 권고를 받아 교환을 해준다는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여성 고객이 가면 이상이 없다며 교환을 해주지 않고 남성이 갔을 때는 교환을 해주는 등 이중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 이유는 바로 황변현상에 대한 공문이 내려갔기 때문.
공문에는 ‘기능상 이상이 없다고 설득’하고 ‘그래도 교체해 달라고 하면 교체해줘라’라고 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때문에 일부 일선 서비스센터에서 교체할 필요가 없다고 소비자를 돌려보낸다는 것이다.
현대차 관계자에 의하면 “일단 기능상 이상이 없다는 설득을 할 뿐이고 교체를 해달라고 하면 무조건 해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목소리 큰 사람만 교체해주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줄을 잇고 있다.
산타페를 모는 A씨는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시동이 자주 꺼지는 현상이 나타나 A씨의 부인이 엔진필터에 차를 가지고 갔지만 “별 이상 없으니 가지고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A씨가 직접 찾아갔을 때 반응은 달랐다. 엔진필터가 수명이 다 됐으니 교환하라고 했던 것. A씨는 이를 두고 “차를 잘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두고 서비스센터가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부품 교체에 재생부품으로?
품질에 있어서 소비자가 가장 피부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A/S다. 하지만 잊을만하면 현대차 서비스센터에서 부품 교환을 순정품이 아닌 재생품으로 교체해줬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미 2005년 연료펌프 이상으로 자발적으로 리콜됐던 그랜저XG LPG도 부품 교환을 재생부품을 사용했던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재생부품은 순정부품보다 30%가량 저렴하다. 때문에 리콜차량에 대해 값싼 순정부품을 사용한 것.
게다가 무상보증기간의 고장에서도 순정부품이 아닌 재생부품을 설치한 사례도 있다. 실제 B씨는 2006년 그랜저XG의 오일누수현상으로 미션을 교체해야 했지만 일말의 설명도 없이 재생부품으로 교환됐다. 그는 “새것으로 교환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따졌지만 원래 재생부품으로 된다는 말에 그런 줄로만 알았다”라고 밝혔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이때 소비자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없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소비자에게 교환된 부품을 알려주지 않으니 정작 차후에 재생부품을 발견하고 허탈해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국내만 짧은 A/S 보증기간
많은 소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것은 바로 A/S 보증기간이 짧다는 점이다. 현대차는 기본적으로 일반부품 2년/4만km, 엔진 및 동력전달계통 3년/6만km의 품질보증기간을 적용한다. 하지만 이것은 경차나 소형차에 해당하는 것으로 실제 현대자동차의 경우 아반떼를 비롯한 쏘나타, 라비타, 그랜저, 에쿠스, 제네시스 등 중·대형으로 갈수록 보증수리기간은 일반부품 3년/6만km, 엔진 및 동력전달계통은 5년/10만km로 길어진다. 이는 르노삼성차가 출범 때부터 차종에 관계없이 ‘일반 부품 3년/6만km, 엔진 및 동력전달장치는 5년/10만km’이라는 기준을 세웠던 탓이다. 당시에는 국내 업체들 사이에서 이러한 보증제도를 제시한 곳이 없었기 때문에 경쟁에 있어 적잖은 자극이었다. 따라서 현대차는 르노삼성차와 동일한 모델에 대해서만 같은 조건으로 보증해줬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국내 소비자에 대한 품질보증기간이 외국 자동차사의 자국의 소비자에 대한 보증기간보다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현대차의 경우에는 동력장치 보증이 10년/16만km, 기본장치 보증이 5년/8km에 이른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자동차 메이커의 보증수리기간 차등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셈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를 두고 “경쟁이 치열한 미국 시장의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드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본 시장에서 판매 부진에 빠지자 보증 기간을 미국 수준으로 올린 바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이를 시행하지 않는 것이 현대차의 독점적 구조에 비롯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시장지배력, 기대에 부응해야
사실 현대자동차를 타지 않는 사람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현대차의 국내 점유율을 올 1·4분기에서 52%를 넘어섰고 계열사인 기아차까지 합치면 70%를 넘는다. 사실상 독점기업으로 국산 자동차에 대해선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폭이 크지 않은 셈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독과점 구조에 빠져 있는 자동차 시장에서 소비자의 후생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수리비의 일부가 자동차 값에 반영된 걸 감안하면 이에 맞는 서비스가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현대차의 ‘품질경영’이 국내에 인정받기 위해서는 국내 소비자를 위한 A/S제도 개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