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보전진? 백의종군? 동면?…“고민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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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배지 물 건너 간 거물들 행보

▲ “이런…” 통합민주당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과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총선에서 고배를 마시며 정치 생명이 위태롭게 됐다.
제 18대 총선이 막을 내렸다. 이번 총선에 운명을 건 거물급 정치인들이 절대 권력을 위한 힘겨운 싸움을 벌였지만 잇따라 고배를 마셨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주류의 핵심인 이재오 의원이 낙선하면서 주류와 비주류간 힘겨루기가 예고되고 있고, 민주당의 경우 적진에 뛰어든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전 장관이 그야말로 사활을 건 싸움을 벌였다. 결국 쓴잔을 마시면서 이들은 당내 입지가 좁아져 힘겨루기에 밀리게 되면서 정치운명을 달리 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회입성 실패로 정치적 생명 위기감 팽배 ‘대안찾기’ 급급
‘사실상 파워게임에서 밀렸다’ 거센 역풍 맞을 가능성 높아
처참한 성적표 재기 불투명, 연이은 패배 ‘정치적 암흑기’
백의종군 검토 불구 자의반 타의반 정치적 동면 불가피

유권자의 관심을 끈 주요 격전지에서 여야 거물급 후보들이 줄줄이 낙선했다. 친이명박계 좌장격으로 '대운하 전도사'로 불리며 최고 실세로 통하는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이 국회 입성에 실패함에 따라 정치생명에 위기를 맞을 전망이다.

‘4년 전 역전드라마 없었다’

이 의원은 공천 갈등을 겪으면서 고비를 맞았다. ‘유력대표 후보’로 부각됐던 그가 한나라당 공천자 55명의 이상득 불출마 요구, 이상득·이재오 동반 불출마 고민에서 이재오 출마, 당내 소장파들의 이재오 출마 비판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실상 파워게임에서 밀려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실세로서 정권 초기 쏟아진 비판에 대한 책임을 지고 불출마를 택하려 했으나 불리한 지역구 상황 때문에 ‘꼼수’를 쓰는 게 아니냐는 음해가 제기되는 상황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출마를 결심했다는 이 의원.

그러나 이 의원이 출마를 결정하기까지 수차례에 걸친 이 대통령의 설득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물론 일각에선 불출마의 명분이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의원은 창조한국장 문국현 후보를 맞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당시 총선서 패하면 당권은 고사하고 정치 생명 자체가 위태로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그럴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4년 전에도 뒤지다가 역전했다며 승리를 장담했지만 지역주민은 끝내 이 의원에게 등을 돌렸다.

이 의원은 총선전이 본격 시작되기 전인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가장 유력한 차기당권 주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총선에서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에게 밀려 끝내 4선 도전에 실패하면서 당권 도전 역시 가능성이 멀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물론 ‘원외 대표론’ 가능성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집권 여당의 대표가 원외일 수는 없다는 것이 당 안팎의 기류이고 보면 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신 그가 이 대통령의 핵심측근이었던 만큼 당분간 잊혀진 채 ‘조용한’ 행보를 거듭하다 입각을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당내 정치적 입지가 좁아져 친이 진영의 역학구도는 이번 총선에서 당선한 이상득 의원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졌다.

여기에 정몽준 의원이 당선되면서 정 의원이 당권 도전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됐다. 자신의 지역구를 버리고 당을 위해 전략공천을 받아들여 ‘희생정신’을 당내에서 높이 평가 받고 있는 데다 이재오 의원과 대립각을 세운 이상득 의원의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은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해 “당의 화합을 위해서 앞장 서 주실 것으로 믿는다”면서 “박 대표님은 지난 경선, 결과에 승복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임으로써 원칙을 지켰다. 또, 경선에서 패배하셨으면서도 정당에 한나라당에 계속 머무르시면서 정당이 책임정치를 구현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박근혜 전 대표의 모습은 앞으로도 정당 내에서 아주 많은 역할을 해주실 것 같다”고 말해 이 의원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후보의 낙선은 한반도 대운하 반대 여론뿐만 아니라 당파 계파간 힘겨루기 싸움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여권 주류 입장에서는 당장 7월 당 대표 경선에 나설 대안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친 박근혜 전 대표 의원들의 거센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친이계’의 한 핵심 인사는 “이번 총선에서의 패배로 이재오는 이상득계의 힘을 받을 정몽준과 박근혜 등 대선후보급 인사들과 힘겨운 전면전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이로써 이 의원이 당권 쟁취를 향한 싸움은 더욱 힘들어 질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은 당분간 서울을 떠나 머리를 식힐 것으로 알려졌다.

‘책임론’ 후폭풍 우려

통합민주당의 ‘투 톱’인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낙선의 쓴잔을 마셨다. 손 대표는 한나라당 박진 후보의 독주를 잠재우지 못하고 ‘정치 1번지’ 자리를 내주고 물러났다.

손 대표의 종로 출마는 당 안팎의 거센 요구가 있었지만 ‘정치 1번지’라는 전략적 차원도 크게 고려됐다. 여기에 이 대통령의 측근이자 종로의 터줏대감을 자처하는 박 의원을 이기고 국회 입성에 성공해 차기 대권을 향한 확실한 디딤돌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민주당 내 세력 판도 역시 총선 결과에 달렸었다. 개헌저지선(100석)을 확보하면 손 대표는 ‘외부 인사’라는 멍에를 벗고 민주당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지역구(종로)에서 당선하면 금상첨화겠지만 낙선해도 당 대표 자리를 위협 받지 않고 손학규 체제가 지속될 것으로 관측됐다.

당에서는 개헌저지선이 목표지만 내부적으로 80석 정도를 이번 총선 승패의 기준으로 보고 있었다. 80석 이상이면 손 대표가 당내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회심의 ‘승부구’였던 지역구에서 낙선하고 자신이 진두지휘한 첫 선거에서 견제의석 확보에 실패한 손 대표는 당내에서 일게 될 ‘책임론’ 공방의 후폭풍에 휩쓸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만만치 않은 상대인 한나라당 박진 후보를 맞아 뒤집기에 실패함으로써 결국 원외 인사로 밀려나게 됐다. 무엇보다 민주당의 처참한 성적표가 손 대표에게 더욱 큰 충격을 안겼다.

특히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이 이끈 공천 혁명 분위기에 손학규-박상천 대표가 합작한 비례대표 자기사람 심기가 찬물을 끼얹었다는 당내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에 따라 지난해 초 한나라당을 전격적으로 탈당하면서부터 시작된 ‘손학규 대장정’은 대권도전 실패, 원내 입성 실패로 이어지는 연속 타격을 입으며 정치적 재기 자체를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손 대표는 일단 전대 때까지 당을 추스르는 데 주력한 뒤 이후 당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훗날을 도모하기 위한 ‘터 닦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손 대표는 10일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다가올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총선 결과를 둘러싼 지도부 책임론으로 빚어질 수 있는 당내 논란에 대한 조기 차단에 나선 것이다.

손 대표측 인사는 “손 대표는 총선으로 일단 당 대표로서의 역할은 끝나는 것이라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며 “당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당원으로서의 역할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비례대표 상당수가 자신이 직접 천거한 인물인데다 지역구에서도 김부겸, 송영길, 전병헌, 신학용, 조정식, 김동철 의원 등 ‘손학규의 사람들’이 적지 않게 살아 돌아오면서 당내 주류 질서를 장악할 가능성이 있어 손 대표의 정치 일선 복귀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손 후보가 당 대표직을 내놓을 경우 당분간 민주당은 박상천 공동대표 등을 중심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

재기 발판 마련 실패

정동영 전 장관은 손 대표보다 상황이 심각하다. 동작을에서 맞붙은 정몽준 의원의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맥없이 무너졌다.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동작을에 출마한 정동영 전 장관, 선거 막판 역전에 열을 올렸지만 정 전 장관은 정몽준 한나라당 후보의 거센 도전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무릎을 꿇었다.

이로써 대선 패배 이후 재기의 발판 마련에 실패하면서 정 전 장관은 대선 패배에 이은 연패란 점에서 또 한 번 가시밭길을 걸어야 할 처지가 됐다.

성공하면 대선 참패의 상처를 한 번에 치유하며 정치적 재기에 나설 수 있으나 또다시 실패할 경우 한동안 정치적 동면기를 맞을 전망이다. 정 후보에게 힘없이 무너지면서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게 된 것이다.

특히 패배를 안겨준 상대가 차기 대선의 잠재적 경쟁자인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이란 점에서 상처가 더욱 컸다. 정치권 안팎에선 정 전 장관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당분간 정치권과 거리를 둘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 대선 때만 해도 당내 최대 계파를 자랑했던 정동영계 사람들이 이번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비례대표 공천에서 줄줄이 탈락해 전멸하다시피했다. 예전보다 힘이 많이 약해지면서 당내 입지가 흔들릴 것이란 전망이어서 당분간 정치적 회생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재기 모색의 일환으로 전주 텃밭을 떠나 야심차게 결정한 수도권 출격이 결국은 부메랑이 된 셈이다. 지난해 대선 패배에 이어 원내 진입마저 실패함으로써 정 전 장관은 ‘정치적 암흑기’를 빠져나오기 쉽지 않아 보인다.

국회 입성에 실패하고 수족이 모두 잘려나간 상황은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여간해선 돌파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 때문에 “정치생명이 위태롭다”는 분석이 조심스레 제기된다. 물론 “섣부른 판단”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정 후보는 “어떤 선택이든지 국민의 선택은 옳다”며 “아프지만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사실상 이번 총선 패배를 인정한 것이다.

그는 또 “어떻게 여기까지 온 민주세력인데 제 대에 와서 민주세력이 소멸위기를 맞았다”며 “그걸 보고 있자니 견딜 수 없어서 몸을 던졌는데 안타깝다”면서 이번 선거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를 털어놓기도 했다.

정 전 장관은 향후 거취와 관련해 “지난 1년 동안 진이 빠졌다. 좀 쉬고 싶다. 저에게는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며 “쉬게 되면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이제부터 좀 깊이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한 핵심 인사는 “이번 총선에서 정 전 장관의 정치적 운명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대선 패배에 이어 이번 총선에서도 고배를 마시면서 사실상 ‘패배자’로 낙인찍혔다”고 전했다.

손 대표와 정 전 장관은 향후 재보선 출마 등을 통해 원내 진입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되나 현재로선 그마저도 난망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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