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사건 끊이지 않는 일산, 현장에 가보니…
성추행 사건 끊이지 않는 일산, 현장에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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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경비원·인적無] 무법지대 '일산이 위험하다'

초등생 납치 미수 용의자 이씨 지난 1월, 1차 범행 저질렀다
피해 여성 B씨, “신고하지 않았지만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어”

최근 들어 부녀자를 상대로 한 성범죄가 급증하면서 사회적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일산 초등생 납치 미수사건이 벌어진 경기도 일산을 기점으로 연이어 사고가 발생하면서 이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 하지만 이 사건이 잊혀지기도 전에 또 다른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4월6일 일산의 한 아파트 입구에서 밤늦게 귀가하던 A(17)양이 40대 초반의 남성에게 성추행을 당한 것. A양은 경찰 진술에서 “집으로 가는데 갑자기 한 남자가 뒤에서 껴안고 내 몸을 더듬는 등 성추행 했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들은 이에 대해 “CCTV도 설치돼 있고 일반 주택가도 아닌 아파트촌이 밀집해 있는 일산에서 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시사신문> 취재 결과 일산 초등생 납치 미수사건의 용의자 이모씨가 지난 1월 초에도 동일한 수법으로 한 여성을 겁탈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사건이 벌어진 일산의 현장을 찾아 원인을 짚어봤다.


“맞벌이 부부들 많고 경제적 수준 높아 범죄율 증가”
순찰 강화해도 주민들이 조심해야 추가범죄 막는다


“지난달 벌어진 일산 초등생 납치 미수사건의 용의자 이씨가 지난 1월 초에도 일산 시내에서 출근 중인 한 여성을 폭행한 적이 있다. 처음부터 우리 건물에 CCTV가 설치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산에 거주하고 있는 박모(30)씨는 지난 4월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같이 밝혔다. 그는 “이 일이 벌어지기도 전에 건물 거주자들은 CCTV 설치를 요구해왔지만 수용되지 않았다”면서 “지금도 CCTV는커녕 제대로 된 경비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첫 번째 사건은 시간 속에…

실제로 지난 4월8일 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때도 사정은 달라져있지 않았다. 박씨는 “그 일이 있은 후 몇 달이 지났지만 그 여직원은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서 “당시엔 너무 당황했는지 경찰에 신고도 못했더라”고 말했다.

박씨에 따르면, 피해자 B씨는 평상시와 같이 오전 11시경 출근을 하고 있었다. 회사가 위치한 건물에 도착한 B씨는 아무런 의심 없이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고 모자를 눌러쓴 한 남자가 갑자기 엘리베이터에 뛰어들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 이 남성은 B씨에게 달려들어 폭행하기 시작했다. 이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B씨.

엘리베이터가 멈춰서자 피의자는 지난 3월 일산 초등생 납치 미수 사건의 동일한 수법으로 B씨의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하지만 피의자의 추가범행은 실패로 돌아갔다.

같은 건물 입주자에게 범행현장이 포착됐고 피해여성이 입주자의 도움을 받아 몸을 피하는 과정에서 피의자는 유유히 사라졌다. 박씨는 “피해 여성은 그날의 일을 기억하고 싶지 않아한다”면서 “주변 몇몇 지인들만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피의자가 일산 초등생 납치미수범과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언제 알았는가’라고 묻자 박씨는 “TV에서 보고 알았다”고 답했다. 그는 “동료들과 회식자리에서 우연히 TV에 나오는 용의자를 봤고 그 때 피해를 당한 친구가 말을 꺼내 알았다”고 덧붙였다.

B씨가 이씨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현장을 둘러봤다. 여전히 CCTV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건물 거주자에게 ‘CCTV는 원래 없었는가’라고 묻자 “전혀 없었다. 달아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지만 감감 무소식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산에 이런 데 많다. 요즘 TV에서 자꾸 일산에서 일이 터진다는 뉴스가 나오니까 아무래도 더 불안하다. 모방범죄라는 것도 있는데 이래서야 살겠는가”라고 한숨지었다.

초등생 납치 미수사건이 벌어진 현장을 찾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부모님의 손을 잡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의 딸아이를 둔 한 학부형은 “맞벌이를 하느라 자주 이렇게 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없을 땐 할머니한테라도 부탁을 해 아이를 집까지 데리고 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세상이 하도 흉흉하니까 애들만 다니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 학교에서도 애들이 끝날 시간이면 연락을 주곤 한다”면서도 “하지만 여전히 부모님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애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사고 이후 ‘안전불감증’

일산 초등생 납치 미수사건이 발생했던 대화동 아파트 밀집가. 지난 1월 초 B씨가 폭행을 당한 건물에서 불과 2㎞ 떨어진 곳이었다. 아파트촌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조용했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삼삼오오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하지만 부모님과 동행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아파트 경비실의 경비원의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근방에 순찰을 나갔을까’ 하는 생각에 둘러봤지만 경비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30여분이 흐른 뒤 모습을 드러낸 경비원에게 ‘경찰차가 수시로 순찰을 나오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미 현장검증도 다 끝났는데…”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동네가 원래 이렇게 조용하냐’는 질문에 그는 “여기가 일산에서 끝자락이다 보니…이 뒤쪽으론 아예 사람이 안 산다”면서 “대부분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낮 시간엔 사람이 잘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 30여분 동안 동네를 살피던 기자의 눈엔 거주자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특히 놀이터의 경우 아이들이 뛰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아예 사람이 없거나 한 두명의 아이들만이 왔다갔다 할 뿐이었다.
6살짜리 자녀를 둔 학부형은 “아파트 근처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있어서 ‘길을 건너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 했는데 이런 일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남자 아이를 뒀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라면서 “아파트 앞 공원의 경우 화장실이 하나 있는데 거기는 아예 우범지역”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주민도 이에 대해 “공원 화장실에서 자꾸 이상한 일이 벌어지니까 애들이 거기서 못놀게 한다”면서 “밤에는 비행청소년들이 나쁜 짓을 하거나 노숙자들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띠고 동네 사람들도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다 안다”고 털어놨다.

실제 놀이터를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는 문제의 화장실을 살펴본 결과, 산책하는 주민들을 위해 설치한 것이기는 하지만 범죄의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길가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다소 으슥한 곳에 있었기 때문.

인근 아파트 경비원은 이에 대해 “경비원들은 각자 자기가 맡은 구역이 있기 때문에 거기까지 나가볼 수 있는 처지가 못된다”면서 “그렇다고 거길 잠그면 주민들이 불편하다고 민원을 넣기 때문에 폐쇄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는 그나마도 경비원이라도 있고 CCTV라도 설치돼 있지만 길 건너 빌라촌은 그야말로 무법지대”라고 했다.

‘집값 떨어질라’

경비원이 설명한 빌라촌을 찾았다. 그 곳의 상황은 아파트 밀집가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 뿐만 아니라 CCTV가 설치된 빌라도 없었다.

동네 입구에 있는 수퍼마켓에 들어가 ‘동네가 꽤 조용하다’고 운을 뗐다. 그러자 수퍼마켓 주인은 “맞벌이들이 많이 살아서 낮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시간엔 애들만 있는 집들이 많다”면서 “조용하니까 살기 좋다”고 덧붙였다.

‘길 건너편에서 아이가 납치될 뻔한 사고가 났던 것을 아느냐’는 질문에 그는 “알고 있지만 다 끝난 일인데 또 그런 일이 생기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동네가 외지기는 했어도 이상한 사람들은 없다. 순찰차도 가끔 들어오곤 한다. 집값 떨어질 까 무서우니 그런 말 하지 말아라”고 당부했다.

최근 일산이 범죄의 주무대가 되는 이유에 대해 경찰은 “일산엔 맞벌이 부부들이 많은 데다 경제적 수준도 꽤 높은 편”이라면서 “하지만 이번에 잡힌 용의자 이씨의 경우 CCTV가 버젓이 설치된 아파트에서 그런 행각을 벌인 것은 아무래도 정신에 문제가 있지 않았겠는가”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안전불감증이 심각한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경찰은 “순찰을 강화하곤 있지만 주민들 스스로가 조심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st35@sisa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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