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초 예상과는 달리 50석 확보 당내 입지·영향력 ‘막강’
한반도 대운하 등 핵심정책, 박근혜 눈치 살펴야할 처지
제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당초 기대했던 ‘절대 안정’ 의석엔 미치지 못함에 따라 향후 정국의 '캐스팅보트'는 박근혜 전 대표가 쥘 가능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한나라당엔 공천파동 이후 또한번의 파란이 예고되고 있다. 공천파동의 주역으로 손꼽혔던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이방호 사무총장, 정종복 전 공천심사위원회 간사 등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 줄줄이 낙선한 반면, 친박계가 의외의 선전을 보임에 따라 향후 여권내 권력구도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영향력이 더욱 강력해질 전망이다.
특히 친이 핵심 인사들의 주된 낙선 이유가 ‘친박 배척’으로 분석되고 있기 때문에 박 전 대표의 향후 당권 쟁취도 한결 수월해졌다는 분석이다.
배짱 두둑해진 친박계 “살살 빌면서 한나라당 복당할 이유 없다”
당내 ‘복당’ 기정사실화 반면 “강재섭이 친박 진입 전면 막을 것”
4·9 총선을 통해 세유지에 성공한 박 전 대표의 행보가 정치권의 핵심 관심사로 급부상 했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자파의원 58명(한나라당 32명, 친박연대 14명, 무소속연대 12명)을 살려내며 ‘박근혜의 힘’을 다시한번 증명했다. ‘박근혜의 힘’은 예상보다 강했다.
박 전 대표는 총선 유세 기간 도중 자신의 지역구에 거의 칩거하다시피 하면서 한나라당 후보들에 대한 지원유세를 하지 않았다. 당 밖의 친박후보들에 대한 지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럼에도 친박 후보들은 크게 선전했고 막강한 의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박 전 대표는 세 결집을 위해 친박(친 박근혜계)-무소속 연대 당선자들의 복당이 절실한 상황. 이는 7월 전당대회를 앞둔 당내 친이(친 이명박계)로 대표되는 신주류 세력과 비주류인 친박계의 당권을 둘러싼 처절한 대결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박근혜의 ‘저력’
한나라당 입장에선 정황상 절대과반(168석 이상)을 확보하려면 박 전 대표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박 전 대표의 의중에 따라 한나라당이 절대 과반을 누릴 수 있느냐 여부가 결정될 판이기 때문.
실제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서울 ‘은평을’에서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에게 10% 포인트가 넘는 표차로 패배했다. 양자 대결이 대운하 공약을 두고 치러진 것이어서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사업 추진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당권을 노리고 있던 이 전 최고위원은 낙선으로 인해 잃은 것이 많다. 그는 국회 입성 후 당권 도전에 나설 계획이었지만 이번 총선으로 인해 모든 동력이 차단됐다.
이 전 최고위원을 따르는 소장파 의원들도 구심점을 잃은 상태.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18대 국회에선 각자의 노선을 갈 공산이 크다는 정치권의 분석이다. 당 내에선 ‘이재오계’가 7월 전당대회에서 정몽준 의원을 지원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당내에선 공천 파동의 중심에 섰던 이방호 사무총장이 강기갑 민노당 의원에게 패배한 사실이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이 사무총장이 낙선한데는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박사모 등의 힘이 컸다.
이들이 이 사무총장을 표적 공격한 탓이다. 친박 지지자들은 이 사무총장의 지역구인 사천에서 강 의원을 적극 지지, 근소한 표차로 강 의원에게 승리를 안겼다. 항간에 떠돌던 ‘박근혜의 저주’가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지난해 대선 경선 때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대변인으로 맹활약했던 신진세력 박형준 의원이 부산 수영에서 무소속 유재중 후보에게 패한 것도 예상외의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박 전 대표의 ‘입’이었던 유승민·이혜훈 의원이 무난하게 재선에 승리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따라서 친이계는 이 대통령의 핵심공약인 한반도 대운하를 비롯한 금산분리·출총제 완화 정책 등 각종 경제 정책을 박 전 대표의 눈치를 살펴야 할 처지가 됐다.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의 각종 정책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온 점을 감안할 때 박 전 대표는 사실상 여당 내 야당의 수장이 된 셈이다.
‘대표론’ vs ‘대안론’
지난달 3월23일 박 전 대표는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말만 남긴 채,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으로 내려갔다. 이후 그는 선거기간 내내 한나라당 신주류를 겨냥한 무언의 압박을 가해왔다. 지원유세를 촉구하는 당 지도부의 요청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그 당시 박 전 대표가 58명이나 당선시킬 것이란 예상은 그 누구도 하지 못했다. ‘많아야 30석’ 정도를 얻어 당내 비주류로 남을 것이란 전망이 압도적이었다. 한나라당이 과반의석 달성을 못할 경우에나 ‘캐스팅보트’ 역할 정도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총선 결과가 발표되던 지난 4월9일 밤엔 모든 상황이 역전됐다. 강재섭 대표가 굳은 얼굴로 있을 당시, 박 전 대표는 ‘압승 축하 차기 대통령, 박근혜 대표’라고 새겨진 케이크를 자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박 전 대표의 시선은 오는 7월 열리는 전당대회장 돌아가고 있었다.
실제 박 전 대표는 10일 박종근 친박연대 의원을 만나 “한나라당이 인기를 잃어가는 것 같다”며 “표심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을 잘 읽고 반영해 잘 운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거기간 동안 한나라당에 대한 직접적 발언을 삼가온 것과는 대조되는 대목이다.
일각에선 이에 대해 “60여 석이란 자파의원을 업은 자파수장으로서 정국지형을 흔들기 위한 발언이 아니냐”는 추측과 “친박-무소속 연대 당선자들의 복당 당위성을 우회적으로 설파한 것”이란 관측이 함께 나온다. 또 “7월 전당대회에서 당권 도전을 피력한 것 아니겠느냐”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전부터 친박계 내부에서는 ‘박근혜 대표론’이 불거져 나왔고, 한나라당 안팎에서는 ‘정몽준 대안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는 지난 경선과정에서부터 이어져온 ‘이-박’ 갈등이 7월 전당대회라는 새로운 국면에서 또다른 전쟁을 예고하는 서막이 되고 있다.
복당 놓고 또 ‘파열음’
한나라당은 총선 전 친박연대·무소속연대의 복당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당시 ‘복당 반대’ 목소리를 높였던 인사들인 줄줄이 낙마한 터라 이들의 복당을 막을 명분도 사라졌다. 그러자 장외 친박계 인사들이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살살 빌면서 한나라당으로 복당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었다.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는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한나라당 지도부가 친박연대 및 무소속 연대 복당을 반대하는 것과 관련 “현재 의석수가 14석이고 교섭단체를 만들면 저희가 아쉬울 게 하나도 없다”며 “다른 정파들과 연대해 교섭단체를 만들면 되지 그렇게 비굴하게 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서 대표는 이어 “한나라당에서 자꾸만 비위 거슬리는 이야기를 하는데 아직은 가만히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섭단체 구성에 대해 서 대표는 “무소속 친박연대와 의논하겠다”면서 “박근혜 전 대표가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었기 때문에 박 전 대표의 한나라당 고사작전을 막고, 박 전 대표를 지키기 위해서 만든 정당”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번에 그래서 살아남은 건데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이지 우리가 뭐 구태여 애걸할 이유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자유선진당과의 연대에 대해서는 “아직 그렇게 생각 안한다”며 “친박연대와 무소속연대만 합쳐도 선진당보다 10석이 넘는다”고 했다.
‘할 수도…안 할 수도…’
서 대표는 복당 방식과 관련, “비례대표 의원 8명을 희생하면서까지 (복당)할 생각은 없다”면서 “당대 당으로 통합하는 방식도 있고, 정당을 해산하는 방법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열쇠를 쥐고 있는 쪽은 우리’라는 뜻이었다.
서 대표는 박근혜 전 대표가 차기 한나라당 대표직에 도전할 지 여부와 관련, “그가 당권도전 의사를 갖고 있다면 아마 당선은 아무 일(문제)도 아니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 박 전 대표가 출마한다면 한나라당이 엄청난 고민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친박 인사들의 복당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궁극엔 친박 무소속 당선자들이 복귀할 것이란 전망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이들 무소속 당선자들의 구심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한나라당 내에 존재하고, 또 7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재도전할 것이 확실시 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그리고 보다 많은 수의 친박 당선자들이 당에 복귀해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세력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7월 전당대회 이전에 친박연대와의 당대당 통합이 이뤄지고 친박 무소속 인사들이 복당할 경우 박 전 대표의 당권 쟁취는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복당 시기가 늦춰질 수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당권을 노리는 쪽에서 박 전 대표 지지세력의 당내 진입을 7월 전당대회 이전엔 불허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재오계열 쪽에서 정몽준 최고위원을 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데, 그리되면 친박 사람들을 전당대회 때 참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전당대회 전까지는 강재섭 체제로 가고 있기 때문에 강 대표가 총대를 메고 일단은 친박 진입을 막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정몽준 최고위원과 당권을 놓고 한판 대결을 벌일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정 의원의 경우 이재오계의 물밑지원이 예상되는 만큼, 향후 대권행보에서도 박 전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갈 가능성이 높다는 정치권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