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낙선후 칩거.... 집행위원으로 선임
지난해 4·15 총선에서 낙선한 뒤 8개월여간 ‘칩거’해 온,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이강철 전 특보가 집권여당의 전면에 나섰다.
이 전 특보는 5일 9명으로 구성된 열린우리당 임시집행위의 집행위원으로 선임돼 4·2 전당대회까지만 존속하는‘시한부’이지만 그의 등장을 그저 가볍게 볼일은 아니다.
그는 “열린우리당 창당 당시 모든 것을 버리고 당을 세웠다”면서 “4·2 전당대회 때까지 당을 재편하는데 전력을 다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로 당이 분열직전까지 갔지만 막상 (각 계파 사람을)만나 보니 서로 오해가 크더라”며 “집권여당에 걸맞게 당을 화합시키는데 일조하겠다”고 했다.
그의 일성도 “지역 정당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위원은 “정동영·신기남 의장 때 지방분권과 시·도당의 위상 강화를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마이동풍이었다”고 꼬집었다. 사실 당헌·당규상 시·도당의 위치는 중앙당의 간섭에서 자유롭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왔다.
이 위원은“대구·경북에서 집권여당의 모습을 다시 세워 보겠다”며“한장 한장 벽돌 쌓는 심정으로 다가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강철 전 특보는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노무현 후보의 조직 특보였으며, 열린우리당 창당 공신이기도 하다. 지난 총선에서 대구 동갑에 출마, 대구·경북(TK) 지역 선거를 지휘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정치활동을 중단하고, 외부와의 접촉을 피해 왔다. 그러나 작년말 노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독대한 이후 점차 활동 폭을 넓혀 왔으며, 마침내 여당 임시지도부에 입성한 것이다.
배경에 대해 "대통령께서 `정치인은 정치를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밝힌 바 있다.
노 대통령과 정치역정을 함께 해온 그는 지난 2003년 신당창당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지난 4월 총선 때에는 영입추진단장을 지내며 영남 인사들에 대한 `징발'에 관여했다.
그는 경북대 재학시절인 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함께 투옥됐던 유인태, 장영달 의원과 함께 `감방 동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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