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국내 미제사건 41건 과거 현재 그리고…미래?
<긴급진단>국내 미제사건 41건 과거 현재 그리고…미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참히 살해된 피해자 유구무언…용의자 종적 '오리무중'


광주 여대생 살인 사건 용의자 신원 파악조차 난항
노란색 박스 테이프 감겨 질식사, 현장 경찰 ‘경악’

‘무참히 살해된 피해자는 말이 없고, 용의자는 종적을 감췄다’. 대형 강력 사건 중 일부가 아직도 사건의 실마리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어 우려를 사고 있다. 범행동기와 혐의가 불분명한 탓에 수사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시대가 지날수록 살인수법이 점점 엽기적이고 잔혹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범죄 전문가들은 “현대사회의 살인수법은 ‘단순살인’을 벗어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인육을 먹거나 사체를 토막 내는 등, 강력사건을 도맡아온 형사들조차 몸서리칠 만큼 잔혹한 살인수법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선 경찰서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미제 사건에 대해 “사건도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점점 치밀해 지고 지능적인 범죄의 증가로 미제 사건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상황을 전했다. <시사신문>은 몇건의 장기 미제사건을 재조명해봤다.

용의자 지목·공개수배에도 사라진 용의자 소재 전혀 파악 안 돼
심증은 있지만 결정적 물증 찾지 못해 미제로 남은 경우도 있어


“사건 현장엔 그 어떤 증거도 남아있지 않았다. 범행 동기조차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 다만 면식범에 의한 살인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지난 2004년 광주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여대생 살인사건을 수사한 담당 형사의 말이다.

지난 2004년 광주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가히 엽기적이었다. 피해자 A씨(당시 23·여대생)는 발견 당시 얼굴 전체가 노란색 테이프로 칭칭 휘감긴 채 질식사한 상태였다.

그러나 4년여가 흐른 현재까지도 이 희대의 사건은 ‘미제 사건’ 파일 위에 고스란히 남아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범인은 엽기적인 범행수법과는 대조적으로 현장에 단서 하나 남기지 않은 철두철미한 지능범이었다. 때문에 경찰 수사는 아직까지도 난항을 겪고 있다.

잔혹한 테이프 교살 사건

지난 2004년 9월14일 오후 8시 30분경, 광주광역시 용봉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선 잔혹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한 여대생이 자신의 침실에서 끔찍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 것. 당시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광주 북부경찰서 형사들은 사체를 본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고 한다.

피해자는 사건 당일 혼자서 집을 보고 있던 여대생 A씨다. A씨는 하의가 벗겨지고 손과 발이 묶인 상태로 발견됐다. 당시 A씨의 어머니는 “일을 보고 돌아와 보니 딸이 피를 흘린 채 작은 방 침대위에 쓰러져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숨이 끊어진 지 반나절이 지난 듯 몸이 굳어 있었다. 형사들이 경악한 이유는 A씨의 얼굴 전체에 휘감겨 있던 노란색 박스 테이프 때문이었다. A씨의 얼굴에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빈틈없이 테이프가 칭칭 감겨져 있었다.

당시 현장을 방문했던 경찰은 “피해여성을 휘감고 있던 테이프는 여러 방향으로 겹쳐져 매우 거칠게 감겨 있었다”면서 “그 것으로 볼 때 범인은 무척 흥분되고 감정이 격앙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간 갈갈이 찢기고 피투성이가 된 사체들을 수없이 봐왔지만 얼굴 전체가 노란 테이프로 휘감긴 A씨의 모습은 여느 사체들보다 더욱 참혹한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범인은 ‘치밀한 지능범’

하지만 용의자에 대한 단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경찰은 “‘살해 당시 테이프를 사용한 이유가 무엇일까’하고 생각했고 이 같은 사실이 수사 방향을 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범인이 테이프를 사용할 때 장갑을 이용한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지문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는 얘기였다.

범행수법의 엽기성으로 보아 경찰은 이 사건 역시 원한관계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스물세 살에 불과한 평범한 여대생이 누군가에게 살의를 품게 할 만큼 원한을 살 일이 있을 리도 만무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A씨의 주변사람들을 상대로 탐문조사에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A씨 본인은 물론 가족과 원한을 맺을 만한 사건이 있었는지도 조사했으나 이렇다 할 특이 사항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A씨의 휴대폰 통화내역을 조회하는 한편 컴퓨터 및 이메일까지 검색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수사를 진행해왔다. 면식범이 아닐 가능성에도 대비, 사건 당일 A씨의 아파트를 방문했을 가능성이 있는 택배 및 음식점 배달원, 세탁소 종업원 등을 상대로도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아무런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경찰을 가장 난감하게 만든 것은 피해자의 혈흔이 곳곳에서 발견될 정도로 범행 현장이 ‘난잡’했음에도 범인에게 다가갈 만한 아무런 단서나 증거가 없었다는 점이다. 범인은 현장에 자신의 족적이나 지문은 물론 머리카락을 비롯한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당시 경찰은 고감도 특수조명기까지 동원하고도 범인의 족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 수사 관계자는 “어떤 경우라도 범인이 조금의 족적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데 사건 현장에서 족적은커녕 족적을 지운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며 “이는 이 사건이 철저한 계획범행이며 범인이 매우 뛰어난 지능범임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치밀하고 엽기적인 범행수법으로 보아 전과자나 지능범, 여성혐오증 또는 성도착증 환자의 소행일 가능성도 감안해 다각도로 수사를 진행했지만 용의자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아직까지도 사건과 관련한 단서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사건이 미제로 남아있는 한 수사를 계속 진행하겠지만 목격자도 단서도 없는 상황에서 범인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서는 여전히 ‘오리무중’

이 사건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미제로 남은 강력사건들은 많다. 특히 지난해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내 미제 살인사건은 41건으로 이 중 서울에서만 7건이 발생했다.

문제는 경찰이 용의자를 지목, 공개수배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진 용의자들의 소재가 전혀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이들은 어디선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발생한 ‘천안 주방장 살인사건’도 미제사건 중 하나다. 용의자로 지목된 이재성(47)은 자신과 한 방을 쓰던 중국집 주방장 B씨를 교살했고 용의자는 아직까지 잡히지 않은 상태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담당 형사는 “이재성의 소재가 여전히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공중파 방송을 통해 용의자를 공개수배 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재성은 가족들과 떨어져 산지 오래됐고 친하게 지내는 지인이 없었다”고 답했다.

경찰에 따르면, B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성은 마땅한 근거지 없이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중국집 주방보조일을 해왔다. 그러던 중 같이 일하며 생활해왔던 피해자 B씨와 숙소에서 말다툼이 벌어졌고 결국 B씨를 무참이 살해한 것. 경찰은 “용의자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만큼 목격자의 제보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용의자라는 심증은 있으나 결정적인 물증을 찾지 못해 미제로 남은 경우도 있었다. 실제 지난해 강원지역에서 발생한 ‘춘천 30대 음식점 업주 피살사건’은 사건이 발생한지 1년이 지났지만 구속영장 신청에 반드시 필요한 범행 증거를 찾지 못하면서 또 하나의 장기 미제사건이라는 오점으로 남았다.

지난해 5월22일 낮 12시께 춘천시 남산면 K식당에서 업주 K씨(35)가 머리에 피를 흘린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발견 당시 식당 내부는 범인과 숨진 K씨가 격투를 벌인 듯 집기 등이 파손되고, 바닥에는 온통 피범벅과 함께 뒷문 유리창이 깨져 있었다.

2명으로 추정되는 범인들은 쇠파이프로 추정되는 둔기로 K씨의 머리를 집중적으로 가격했다. 경찰은 “살해가 목적이었던 만큼 두개골 골절로 사망케하기 위해 머리를 가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경찰은 수사끝에 청부살인에 무게를 뒀다. 황당한 것은 경찰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 2명이 피해자의 가족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증거 불충분으로 인해 구속영장 신청은 기각됐다. 이후 경찰은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건 발생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난 사건들은 증거를 잡기가 더더욱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초동수사가 미흡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면서 “같은 경찰이지만 그런 부분만큼은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어 “미제 사건들의 경우엔 목격자들의 제보가 큰 단서가 되기 때문에 시민들의 제보가 절실하다”고 당부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