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흔적, 억지로 지워지는 것 아니다
참여정부의 흔적, 억지로 지워지는 것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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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든 실패든 평가는 국민과 역사의 몫이다


개성 선죽동에는 선죽교가 있다. 평범한 돌다리인 선죽교가 유명한 이유는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이방원이 보낸 테러리스트 조영규에 의해 철퇴로 살해된 곳이기 때문이다.

정몽주가 죽은 후 대나무가 솟아 선죽교라 했고 지워지지 않는 그의 혈흔은 지금도 충절의 상징으로 추앙된다.

이방원은 정몽주의 혈흔이 몹시 눈에 거슬렸을 것이다. 그의 충절이 빛날수록 자신의 테러는 비난의 대상이다. 그러나 정몽주는 없앨 수 있어도 국민의 마음을 죽일 수는 없다. 선죽교를 없애버릴 생각도 했겠지. 간단한 일이다. 없애면 혈흔도 사라질 테니까. 그러나 이방원은 왕위에 오른 후 정몽주에게 시호를 내리고 충신의 표상으로 삼았다.

왜 그랬을까. 어떤 계산이었을까. 이방원은 현명했다. 선죽교를 없애도 백성의 가슴속 혈흔은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정몽주의 혈흔을 지우기보다 그의 충절을 기리는 것이 훨씬 얻는 게 많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은 보존상태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이외에는 누구의 열람도 허용되지 않았다. 절대 권력자인 왕은 실록의 내용을 얼마나 알고 싶었을까. 왕실의 공과가 고스란히 기록된 실록을 왕이 볼 수 없도록 한 것은 절대 권력자가 사실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 왜곡을 방지하기 위한 철저한 예방이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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