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修만에 금배지 단 386세대 ‘MB직계’, 국무총리 꺽은 군수
“일 잘하는 정치인 될 터”, “비전과 정책 수립되도록 노력”
인맥 정치에 뛰어든 ‘여풍 당당’, “큰 정치 위해 작은 힘 보탤 것”
“언론독립성 유지 위해 노력”, “불합리한 IT규제 풀어야 할 과제”
이번 총선에서 새로운 인물이 대거 국회에 입성,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으로 대표되던 당내 소장파는 양적으로도 팽창하게 됐다. 향후 당권 경쟁에서 나타날 이들의 역할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들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이유는 이 대통령의 정치철학과 지향가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이른바 ‘MB' 직계로 이들이 모두 국회에 등원하게 됨으로써 ‘MB파워그룹’을 형성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MB직계’ 대거 여의도 입성
서울 성북 갑에서 금배지를 달게 된 정태근 당선자(44). 지난 1985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군부 독재와 맞서다 27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기도 한 한나라당 내 386세대에 속한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손봉숙 후보를 꺾고 금배지를 거머쥔 ‘3수생’이다. 대표적인 이명박(MB)대통령 직계 인사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정 당선자는 2002년 이명박 서울시장 후보 선대위에서 인터넷본부장으로 일하다 정무부시장을 맡았고 지난해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 수행실장을 지냈다. 서울 광진갑의 권택기 당선자, 밀양·창녕의 조해진 당선자 등과 서울시장 시절부터 이명박 대통령을 도왔던 ‘안국포럼’ 멤버이기도 하다.
이 같은 세간의 시선 때문인지 정 당선자는 철저히 몸을 낮추면서 의정활동 성과로 지역 주민 성원에 보답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정 당선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됐고 한나라당은 집권당이 됐기 때문에 과거의 이명박 측근이라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정 당선자는 이어 “측근으로 권력을 향유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해선 안 된다”며 “오히려 대통령이 잘되고 당이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부단히 혁신하고 정부도 견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과거 초선 의원들이 소장 정치인으로서 의미있는 역할을 못했다”며 “다른 동료의원들과 잘 협력하면서 초심을 잃지 않고 의정 활동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정 당선자는 경제 전공자로서 성북갑의 지역 발전과 복지 외에도 자원위기 등 국가적 경제 위기 관리를 위한 정책 개발에도 일조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당선자가 앞으로 당내에서 이 대통령의 목소리를 적극 대변하면서 ‘범 MB계’의 중심 세력으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전·현직 실세 간 격돌로 관심을 모은 경기 고양 일산동구에서 승리한 한나라당 백성운(59) 당선자는 박빙의 승부 끝에 짜릿한 역전을 맛봤다. 상대는 야권의 대선주자이자 참여정부 국무총리 출신의 친노 중진 한명숙 후보.
백 당선자는 선거 초반 낮은 인지도로 인해 여론조사에서도 한 후보에게 큰 차로 뒤지는 것으로 나오는 등 절대 열세 속에서 시작했다. 당에서조차 막판 자체 여론조사에서 백 당선자가 10% 이상 뒤지는 곳으로 나와 “어렵다”고 분류한 곳이어서 그의 승리는 더욱 빛난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전국 시·도지사협의회 사무총장을 맡은 것을 인연으로 정치권에 들어온 그는 이명박 대선캠프의 모태격인 안국포럼을 만들 때부터 한나라당 경선과 대선에 이르기까지 그는 이 대통령 곁에서 요직을 맡아왔다. 행정관료 출신이면서도 ‘기업가적 마인드’를 갖춰 이 대통령 눈에 들었다는 후문이다.
안국포럼 비서실장을 맡으며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그는 경선캠프에서는 종합상황실장, 대선 선대위에서는 상황분석실장을 맡아 고비마다 기민한 상황판단으로 공을 세웠다. 인수위에서는 행정실장을 맡았다.
경향신문 기자 출신으로 마포 갑에서 당선된 강승규 당선자(45)는 이 지역에서 5선 의원과 구청장을 지낸 노승환 전 의원의 아들인 민주당 노웅래 의원에 맞서 신승을 거두었다. 막판까지 민주당 노웅래 후보와 접전을 겨루다 금배지를 달게 된 강 당선자는 2002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이 대통령의 후보 캠프 기획홍보팀장을 맡으면서 인연을 맺었다.
그 후 안국포럼과 경선, 대선에 참여했다. 대선 때는 미디어홍보단장과 커뮤니케이션팀장이라는 중책을 맡기도 했다. 특히 한반도 대운하 탐사와 대선 당시 국민과의 타운 미팅을 기획하기도 했으며 대통령직인수위 수석 부대변인을 맡았다.
윤활유 역할 자처하며 파이팅 다져
경남 밀양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하게 된 조해진 당선자(46)는 원희룡·나경원 의원과 서울대 법대 동기다. 정치판에서 16년 동안 공보 업무만 맡아 온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공보·홍보 업무를 전담하면서 신임을 얻었다.
1992년 박찬종 전 의원의 보좌역으로 정치권에 첫 발을 내디딘 그는 지금까지 내내 공보 업무만 담당했다. 햇수로 따지면 무려 17년. 이중 4년을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했다. 서울시장으로 재임 중이던 이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정무 보좌역으로 일한 것이 첫 연이었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직을 퇴임한 2006년에는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전초기지이던 안국포럼에 합류했다. 지난 해 경선과 대선 과정을 거치며 때론 이 대통령의 ‘복심’으로, 때론 ‘입’으로 공보 활동만 했다.
그는 “이 대통령에게 배운 것이 ‘일 잘하는 법’”이라며 “정쟁에 함몰되지 않고 ‘일 잘하는 정치인’으로 국민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초선 의원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국민들의 염원인 경제 살리기에 관심을 두고 있는 조 당선자는 국회 활동의 포커스를 ‘경제’에 맞출 계획이다. 그는 “경제 관련 국회 상임위 활동을 통해 제 지역구인 밀양·창녕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아보고 싶다”며 재경위나 정무위에서 일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대통령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국제전략연구소(GSI)’ 연구소 운영위원을 지낸 김영우 당선자(41) 역시 경기 포천·연천에서 무소속 박윤국 후보를 제치고 국회 진입에 성공을 거뒀다.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김 당선자는 이 대통령의 핵심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구상의 실무를 담당해왔고, 이 대통령의 대선 전초기지였던 ‘안국포럼’에서도 대운하 밑그림을 그려왔다.
김 당선자는 “이명박 정부가 가지고 있는 비전과 정책이 실현될 수 있는 의회 내 세력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앞으로 당 내에서도 대화ㆍ타협ㆍ협상을 담당하는 윤활유 역할을 초선 의원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살아 돌아온 ‘친박’ 복심들
서울 도봉을의 김선동(45) 한나라당 당선자는 통합민주당 중진이자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거물 유인태 의원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면서 국회에 입성한 인물이다. 특히 서울에서는 구상찬(강서갑) 당선자와 함께 단 둘뿐인 박근혜 전 대표의 원외 측근 출신이기도 하다.
김 당선자는 1990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중 ‘김영삼(YS)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정치권에 입문했고 YS 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을 지내며 경험을 쌓았다.
김 당선자는 2005년 비서실 부실장으로 발탁되면서 박 전 대표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는 “5000년 역사에서 우리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란 생각을 가져왔다”고 밝혀 박 전 대표와의 만남은 우연을 넘어 운명적이었다.
이 때문에 향후 친 박근혜계(친박) 인사 복당 문제 등에서 원내 진입에 성공한 그의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선거 과정에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이 ‘싸우지 좀 마라’였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 같은 어르신들이 큰 정치를 해주셔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제 작은 역할이 있다면 역할을 찾아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당선자는 지역발전을 자신의 최대 과제로 꼽았다. 지역발전을 갈망하는 지역구민의 염원이 자신을 국회로 보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과거 도봉구는 야당거물들이 지역구의원을 거쳤지만 지역발전을 등한시하는 바람에 매우 낙후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낙후된 지역 교육환경 개선 등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면서 “인근 노원구와 비교해도 교육 격차가 커서, 지역 교육의 질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상임위도 교육위원회를 희망하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정현 전 박근혜 캠프 대변인(50)은 한나라당 ‘마지막’ 비례대표인 22번으로 아슬아슬하게 금배지를 달고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전남 곡성 출신인 그는 영남(동쪽)에서 호남(서쪽)으로 지지층을 확대하고자 한 한나라당의 서진(西進) 정책을 처음으로 입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전 대표가 호남을 자주 방문했던 것도 이당선인의 조언에 따른 행보였다는 전언이다. 한나라당 정세분석팀장을 역임하기도 한 이당선인은 정세 분석이 탁월하고, 대인 관계도 원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법조, 언론, IT 분야 등 관심 집중
자유선진당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한 이영애 당선자(61)는 전형적인 엘리트 출신이다. 춘천지법원장(59)을 지낸 화려한 법조 경력을 갖고 있는 그는 지난 1971년 제13회 사법시험 때는 여성 최초의 수석 합격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후 여성 최초의 고등법원 부장판사와 법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지난 2004년에 여성 최초 대법관 후보로 유력하게 거명됐으나 고배를 마시고 현직을 떠났다. 이 당선인은 판사 초년 시절 이회창 총재의 배석 판사를 맡으면서 그와 인연을 맺고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
이 당선자는 “좌파 정권 10년의 실정을 보면서 제대로 보수주의를 지켜 갈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유선진당은 진정한 보수 이념을 천명하는 정당이다. 이회창 총재와의 오랜 인연도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에 충실한 법과 제도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개인적으로 생명 존중운동을 해왔고 국회에서 생명 존엄성을 인식시키고 생명 문화를 확산시키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10번 최문순(52). 최 당선자는 정치권에 들어오면서 “언론의 독립성 유지를 위한 방어막을 만들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18대 총선을 통해 숱한 화제의 인물이 나왔지만 최 당선자만큼 엇갈리는 평가 속에 정치권과 언론의 주목을 끈 인물도 없었다.
최초의 노조위원장 출신 사장으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제27대 MBC 사장을 지냈지만 사장직 퇴임 뒤 곧바로 민주당 공천 문을 두드리면서 여론의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일각에서는 언론인이 그것도 전국언론노조를 이끌며 언론개혁과 독립성 강화를 외쳤던 장본인이 최소한의 유예 기간도 없이 정치권으로 직행한 것은 방송의 독립성을 해친 잘못된 선택이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그는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1984년 MBC에 입사, 보도국 사회부 기동취재반 기자를 역임했고 MBC 노조위원장으로 1996년 한 차례 해직되기도 했다. 1997년 복직됐고 1998년부터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위원장에 선출돼 2000년 11월 산별 전국언론노조의 출범을 앞당기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MBC 사장 취임 당시에는 한나라당 등 야당으로부터 코드인사 논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고 임기 시작과 함께 카우치 알몸 사건, 상주 참사 등 대형 사고들이 터졌고, 황우석과 X파일 보도로 한때 경영자로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는 18대 국회에서 IPTV 등장 등 미디어 산업 빅뱅을 앞두고 이를 관리감독하는 방송통신위를 상대하는 상임위 활동이 주목된다.
창조한국당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한 이용경 전 KT 사장(64)은 우리나라 정보기술(IT)업계의 대부로 평가되고 있다. 이 당선자는 1991년 KT 연구개발단 수석연구원으로 입사해 2001년 KTF 사장을 거쳐 2002년 8월 민영 1기 KT 사장을 역임했다.
그는 KT 사외이사 시절 문국현 당시 유한킴벌리 사장과 인연을 맺어오다가 지난해 창조한국당 공동대표를 역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초빙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이 당선자는 “개인적으로는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면서도 “당 차원에서 보면 교섭단체를 바랐는데 우리 생각만큼 창조한국당의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것 같아 아쉽다”고 소감을 밝혔다.
향후 의정활동 계획과 관련해 “IT가 21세기 부가가치 산업이지만 규제를 많이 받는 사업이다. 규제를 받으며 경영을 하다보니까 평소 불합리한 정책이 많다고 생각해왔다. 이런 생각을 정책에 반영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IT산업의 경험을 살려 과학기술분야에서 활동하고 싶다”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