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사회 이우재 회장이 퇴임을 앞두고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7월 ‘뺑소니 의혹’에 휩싸였던 그가 마사회 소속 기수들의 보험사기 행각으로 인해 또다시 구설수에 오르게 된 것.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보험사기 사건과 관련 마사회측 관계자는 “그 사람들은 우리측 정직원이 아니다”고 반박했지만 뒷맛이 개운할리 없다. 퇴임을 앞둔 이 회장의 말 못할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보험사기,경마정보 누출 한 마사회 소속 직원 66명 무더기 적발
마사회측 “우리 직원 아니다” 반박, 비난 여론 피할 수 있을까?
한국마사회 최초 공개모집으로 임명된 이우재(72) 회장은 마사회 재임 2년 동안 ‘깨끗한 마사회’, ‘농촌을 위한 마사회’를 목표로 사회공헌사업에 아낌없는 투자를 해왔다고 자부한다. 이로 인해 사회공헌은 물론 윤리경영 성과를 어느 정도 인정받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퇴임을 코앞에 두고 잇따라 발생한 악재들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뺑소니’ 이어 ‘보험사기’
지난 4월22일 허위 입원으로 보험금을 챙기거나 향응을 제공받고 경마정보를 누설한 마사회 기수 60여명이 무더기로 적발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들은 지난 2003년 2월부터 서울과 부산, 제주에서 경마 기수와 조교사, 마필관리사로 활동하면서 경미한 부상에도 장기간 입원하는 방법으로 보험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적발된 기수 중 A씨는 경마브로커들로부터 현금 440만원과 향응을 제공받고 경마정보를 알려준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경마브로커들에게 출전 예정인 말들 중 어떤 말의 컨디션이 가장 좋은지, 우승 가능성이 높은 말들을 알려줬다. 경찰은 이에 대해 “브로커들은 이 정보를 이용해 마권을 사서 이윤을 챙겼다”면서 “우승 가능성이 있는 말들에 대한 정보를 흘린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말이 1등을 한다’는 등의 식으로는 알려주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부산 중부경찰서 담당 형사는 보험사기 건과 관련해 “보험사기 행각은 이번에 처음으로 적발한 것”이라면서 “문제는 기수들 사이에 이 같은 일이 관행처럼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경마업계에는 전국적으로 기수 140여명, 조교사 100여명, 마필관리사 800여명 등이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의 수입은 경주에 참가해 상금을 받느냐 혹은 받지 못하느냐,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천차만별. 상금은 마주 60%, 조교사 20%, 기수 13%, 마필관리사 7% 순으로 갖는 것이 원칙이다.
이번 보험사기 사건에 연루된 66명 중 50여명이 기수들이었고 이들의 전체수입은 상금과 기승조교비(훈련수당), 출전기승료(출전수당)로 구성된다. 상금을 타지 못하는 기수들은 기승조교비와 출전기승료 명목으로 한달 평균 200~300만원의 수입을 받고 있다.
일반 직장인에 비해 그리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이들이 특수업종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전언. 언제나 낙마 등의 위험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기수 한 명이 평균적으로 가입한 보험이 6~10개다. 보험금으로만 한달에 50~60만원을 지출하고 있는 셈.
사정이 이렇다보니 ‘허위 입원으로 보험금을 타내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니냐’는 업계의 반응이다. 즉 직업적 특성이 이들의 도덕적 해이를 야기했던 것. 경찰은 “적발된 기수들은 손해사정사와 공모, 보험금을 보다 많이 타내기 위해 장애등급을 높이는 수법을 썼다”고 전했다.
보험처리를 대행하는 손해사정사 직원들이 기수들에게 접근해 “장애 등급을 높여줄 테니 수수료는 내게만 달라”는 식으로 영업을 해왔던 것이다. 경찰은 “황당했던 것은 생활고에 시달리던 기수들 외에도 연봉이 높은 사람들도 사기에 연루돼 있었다”면서 “이들은 손가락만 삐끗해도 3~4주씩 입원을 하고, 그 기간 동안 해외여행을 하는 등의 사기행각을 벌여왔다”고 말했다.
마사회측은 이에 대해 “기소가 된 상태가 아니고 입건만 돼 있기 때문에 사건 경위를 자세히 파악하지는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그들은 마사회의 정직원이 아닌 마사회가 발부한 기수 면허증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마사회와 관련된 그동안의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해명의 뒷맛은 개운하지 않다.
특히 전국경마장 기수협회 측은 이와 관련해 “보험사기의 유혹을 근절하기 위해선 외국처럼 기수들의 부상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경기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면서 “부상시 보험을 통해 소득을 보전 받는 체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마사회측이 경기 중 부상에 대해 보상금액을 책정해 지급하는 공상처리시스템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 넘어 산’
그동안 마사회는 승률조작, 전 회장의 비리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그나마도 이 회장이 취임하면서부터 그런 일들이 조금은 줄어드는 듯 했으나 최근 보험사기와 경마정보 누출, 지난해 벌어진 이 회장의 ‘뺑소니 의혹’ 등이 이 회장의 마지막 유종의 미에 먹칠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7월 말 고속도로 내 터널에서 경운기와 접촉사고를 냈고 당시 경운기 운전자 오모(69)씨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당시 이 회장은 “터널 재 구조물을 친 것으로 착각했다”고 말했지만 여러 가지 의혹들이 제기됐었다.
또한 경찰들도 이 사건을 무마하려던 움직임이 포착된 바 있어 이 회장은 한동안 구설에 휘말리기도 했었다. 이 회장은 지난 4월20일부로 퇴임이 결정됐지만 후임인사를 정하는 절차상 오는 6월까지 마사회 회장으로 역임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과 관련해 마사회 기수 관리 체제의 문제가 제기된 이상 이 회장이 비난여론을 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