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의 아픔을 치유하는 백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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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전문집단 '홍사''의 다섯 번째 작품, <거꾸로 놓인 사다리>

서울 혜화동 대학로의 골목골목의 소극장들에서 창작을 위해 땀을 흘리는 연극인들의 월 평균 수입, 그것을 수입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오히려 곤혹스런 반문이 튀어나올 정도로 형편없다.

우리들의 정서 속에는 연극 뿐만 아니라 예술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제적 능력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다. 그런데 그 불신은 소극장 연극인들의 수입이 월 30만 원 이하라는 충격 사실로 인해 현실적인 힘을 받는다. 아닌 말로 자식 있는 부모가 연극 한다면 박수를 쳐가면서 환호작약하는 모습은 보일 리 만무하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예술을 업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주위 친지의 반대와 우려 속에서 그나마 있는 기득권마저 죄다 포기한 채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던져버릴 각오를 하고 나서야 이른바 연극판에 뛰어든다.

운이 좋아 대기업 자본의 지원을 받고, 유명 스타들을 고용해서, 케케묵은 부르조아의 미덕을 단순재생산하는 코메디물과 흥행에 성공한 해외번역극들이 관객몰이를 하는 마당 한켠에서 관객의 관심을 받지 못해 의기소침된 상황에서도 창작극에 대한 막연하지만 애타는 꿈을 저버리지 못한 연극인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연극통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어딘가에 관객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비법이 있다, 그 비결을 찾으려고 노력하라며 현실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무책임한 주문을 하지만, 극장 운영의 절대빈곤에 시달리는 소극장의 현실을 곁에서 지켜본 필자한테는 그런 주문은 좀 터무니없고 가끔은 가혹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 극중 한 장면. 좌로부터 정우, 아버지, 지민

연극인들의 존재공간은 마당이요 무대다. 그 최소한의 공간의 확보마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가난한 연극인들의 삶의 활갯짓은 그야말로 처절한 몸부림 그것이다. 이번에 다섯 번째의 창작극을 올리는 극단 '홍사'의 <거꾸로 놓인 사다리>는 그런 연극인들의 슬픔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작품이다.

휴먼멜로 코메디 <거꾸로 놓인 사다리>의 이야기는 성공과 출세 지향의 정우란 인물과 그 가족의 이야기다. 샤프한 두뇌와 핸섬한 외모로 대기업 총수의 딸의 마음을 후린 정우가 삶의 신산스런 고통 외에는 물려준 것이 없는 ‘못난’ 아버지의 배다른 동생 지민에 대한 애증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드는 설정에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얼핏 이 연극은 가족이냐 출세냐 라는 선택의 기로에 처한 잘난 청년의 로망처럼 70년대 안방극장을 풍미하던 멜로드라마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사실 이 극은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구조를 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힘은 지민의 역할에서 나온다.

▲ 전체 배우와 스텝

지민은 정신지체증이 의심되는 바보다. 지민은 출세강박증에 빠진 오빠를 보고 멋있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오로지 오빠의 안위만을 걱정한다. 백치에서나 볼 수 있는 순수함이 이 극에 묘한 복고풍의 감동을 갖고 오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계산적이고 치밀한 구도하에 정우를 조정해서 대기업의 경영권을 차지하려는 전무와 비교되면서 성공지향적인 인물들과 그 성공의 뒤편에서 희생된 못나고 능력없고 천치 같은 유형이 대비된다. 관객은 연극이 끝남과 동시에 이렇게 묻고 싶어진다. 과연 정우의 성공은 지민의 순수한 관심과 애정에게 상처를 입힐 만큼 중요한 것일까?

경제적 성공에 대한 거부감을 바탕에 깐 이 주정적主情的인 작품에서 연출가는 관객에게 은 투박하고 고집스럽게 반문한다 : ‘주변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성공은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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