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서초구청이 시끄럽다. 양재동 일부 지역 주민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탓이다. 민·관합동사업으로 진행 중인 화단 조성이 단초다. 이 사업 추진을 위한 분담금 문제를 둘러싸고 서초구청과 주민들 사이에는 팽팽한 신경전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서초구청은 ‘돈을 내지 않으면 공사를 진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일부 주민들은 ‘거둬들인 세금이 있는데 개인 돈을 들일 수는 없다’고 맞서고 있다. 급기야 서초구청은 화단공사는 전면 중지한 상태다. 때문에 녹도(녹지 사이에 인도를 냄) 조성을 위해 파헤쳐 놓은 부지는 흉물로 남아 있어 인근 주민들의 원성은 점차 고조되고 있는 분위기다. <시사신문>은 지난 4월29일, 논란의 중심에 있는 현장을 찾았다.
서초구청…“공사대금 일부 부담하겠다는 말에 공사착수, 당혹”
주민들…“인도만들면 인근 사람들만 다니는 거 아니다, 돈 못내”
양재역 사거리 성남방면 공터. 녹지를 만들다 방치해 놓은 이곳의 모습은 흉물스러웠다. 곳곳에 널브러진 쓰레기. 쓰다 남은 공사자재도 여기저기 버려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눈살을 찡그리게 할 정도였다.
이렇다 보니 인근 주민들의 불만도 높았다. 그곳에서 만난 한 주부는 “이렇게 방치한 지 오래됐다”면서 “이렇게 놔두면 미관상 좋지 않을뿐더러 아이들이 지나다니다 다칠 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방치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대체 누가 속은거야?
‘양재동 시설녹지 정비공사’는 강남대로와 논현로를 중심으로 벌이고 있는 구청관할 사업이다. 이 사업은 지난 1990년부터 제기된 민원으로 인해 시작됐다.
하지만 이 사업으로 인해 인근지역 곳곳에선 불협화음이 발생하고 있다. 완충녹지인 만큼 도로가에 위치한 건물들은 건물 4면을 다 쓰지 못하는 상황에다 인도 또한 도로 쪽으로만 편중돼 있어 유동인구가 있어도 상권 활성화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 골자다.
지난해 12월 민·관협동사업으로 진행된 이 공사는 현재 전면 중단된 상태다. 법에 따르면 민·관합동사업인 만큼 주민들의 분담금이 따르는 공사다. 하지만 분담금을 둘러싼 서초구청과 강남대로와 논현로 도로가에 위치한 일부 건물주들은 분담금에 대해 “인도를 만드는 것은 공익을 위한 것이지 우리만을 위한 특혜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서초구청에 따르면 이번 사업의 책정비용은 약 30억원. 강남대로의 경우 23억원의 공사비용에 주민부담금이 15억원이다. 구청의 사업계획서에도 이 같은 사실은 정확하게 명시돼 있다. 즉 구청에서 10억원의 예산을 책정, 나머지 금액은 고스란히 주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실정인 것이다.
구청 측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 2004년 전까지만 해도 법적으로 문제 지역의 녹지는 완충녹지였기 때문에 정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2004년도에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면서 주민들이 일부 분담금을 부담할 경우엔 용도변경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신설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업도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라면서 “당초 주민설명회를 할 때도 구청에선 이 같은 내용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또 “일본이나 선진국들은 민,관합동사업이 활성화 돼 있고 이런 사업들을 항상 우선순위로 쳐준다”면서 “주민들도 불만이 없는 이유는 결국 주민들이 이득을 보기 때문이고 주민들만 공사금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도 지원을 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사업을 추진 중인 서초구청 해당 공무원은 이번 사업과 관련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공사만 해준다면 우리도 돈을 내겠다’는 주민들의 말만 믿고 사업을 추진했다가 괜히 더 곤혹스러워졌다”고 털어놨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이에 대한 민원을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하지만 지난 2004년 지구단위계획이 수립되기 이전까지는 법적으로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
구청 관계자는 “때문에 (주민들로 구성된) 추진위원회에선 지난해 ‘가로수를 뽑아주고 인도를 정비해주면 우리라도 돈을 내겠다’고 말했고 그 말에 따라 사업을 추진, 지난해 12월 가로수를 제거하고 어느 정도 정리를 했지만 지금까지 돈을 낸 사람들은 50%밖에 안 돼 공사를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방문 중에도 정비사업과 관련한 민원 전화는 끊이지 않았다. ‘왜 공사를 빨리 끝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담당 공무원은 이에 대해 “분담금을 내지 않은 주민들 사이에선 ‘돈 내고 버티면 공사를 해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팽배한 것 같다”면서 “그럴 때면 허탈한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구청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분담금을 부담해야 하는 해당 건물은 강남대로가 91필지, 논현로에 41필지다. 하지만 이 중 부담금을 이미 납부한 건물주는 단 53명. 과반수 이상이 분담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과반수 이상의 건물주들이 이번 사업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 질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했다. 구청 관계자는 “그 것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통의 민원전화를 받지만 ‘이런 공사를 왜 하느냐’는 불만은 없다 다들 ‘빨리 공사를 끝내달라’고만 하는 것이다. 공사를 하지 않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청에서 모든 것을 해주길 바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는 결국 ‘영세민’
하지만 구청 측의 이 같은 해명에 대해 주민들은 분노했다. 분담금을 납부해야만 하는 해당 건물의 세입자는 “10년이 넘도록 민원이 제기됐는데 해결을 안 해줬다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고 울분을 토해냈다.
그는 “나는 여기 온지 1년밖에 안 됐지만 정말 너무한다. 영업이 잘 되면 부가세가 늘 것이고 지가가 오르면 재산세가 오르는데, 그만큼 세수가 늘어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구청이 이번 사업을 두고 주민들에게 인심 쓰는 것처럼 구는 행태가 어이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총체적으로 보면 서초구가 못사는 동네도 아니고 세수가 적은 타 지역이면 이해를 하겠지만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굳이 주민에 부담금을 징수해야 하는 것이냐”면서 “여기 인도를 정비하면 인근 주민들만 이용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 서초 구민 모두가 다니는 길을 왜 우리만 돈을 내야하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또 다른 세입자도 “지가가 높아졌다고 세액을 감액해주는 것도 없는데 명분자체가 그리 뚜렷하지 않다”면서 “우리도 여기 길을 보면 사유지를 골목길이나 주차공간으로 내어주고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요금을 받아야 하는 것이냐”고 토로했다.
그는 “(화단을) 자꾸 저렇게 방치하니까 쓰레기 투기량이 늘었다”면서 “우리가 가끔 치우니까 그나마도 덜한 것이지 사람들이 막 갖다 버린다. 빨리 어떻게 해줘야지 이게 뭐냐. 그리고 우리는 세입자 입장이지만 결국 피해는 우리가 다 본다. 건물주들이 분담금을 어디서 메꾸겠나…다 우리한테 걷어간다. 벌써 임대료 12%가 올랐다”고 분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