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양구 여고생 ‘묻지마 살인’ [범죄의 재구성]
강원 양구 여고생 ‘묻지마 살인’ [범죄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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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불만이 불러온 잔혹한 살인극

‘내가 니 친구 죽였으니 사람 불러와라’ 주문 하기도
피묻은 옷 입은 채, 태연히 경찰 기다린 대범함 보여

강원도 양구에서 최근 벌어진 ‘묻지마 살인’사건의 파문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사건의 피해자 유족들과 주변인들이 “이번 살인 사건은 예고됐던 것”이라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 지난 4월26일 벌어진 이 사건의 용의자 이모(35?무직)씨는 피해자 A양을 자신이 소지하고 있던 칼로 수차례 난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진술과정에서 이씨는 “세상이 더러워 누구든 죽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살인을 저질렀던 것. 특히 이씨가 범행을 저지르기 며칠 전 같은 장소에서 부녀자들을 겁탈하고 공원 내 차량을 파손하는 등의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경찰이 비난 여론을 피하기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시사신문>은 사건을 재구성해 전모를 파헤쳤다.

용의자 이씨 현장 검증에서도 태연…주민들 ‘경악’
피해자 가족 오열 “아이가 끝까지 눈도 못 감았다”

사건 당일인 지난 4월26일 오후 8시 23분경 양구군 하리 서천변 산책로에서 친구와 운동 중이던 A양이 이씨에게 아무 이유 없이 흉기로 수차례 찔려 살해됐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세상이 더러워 아무나 죽이고 싶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씨는 A양을 살해한 뒤 도망치지 않고 피묻은 옷을 입은 채 벤치에 앉아 있다 출동한 경찰에 검거됐다.

이후 A양의 친구라고 주장하는 이모양의 글이 인터넷 게시판에 쇄도했다. 게시된 글을 통해 이양은 친구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있었다.

“살려달라”는 피해자 수차례 난자

이양은 ‘세상이 더러워서 죽였다던 살인자의 말이 너무도 비겁합니다. 저는 이번 양구 묻지마 살인사건의 피해자 A양의 친구입니다.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지던 일이 바로 제 친구에게 일어났다는 것이 몸서리 쳐질 정도로 끔찍하고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저희 내년이면 스무살인데…이렇게 억울하게 하늘로 가버린 친구가 너무나 가엾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양은 친구를 잃은 비통한 심경을 밝히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 A양의 외삼촌의 글도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피해자의 외삼촌이라고 밝힌 네티즌 ‘bajaho’는 부검을 마치고 장례식장에 돌아와 염을 하면서 봤던 조카에 대한 가슴 아픈 모습을 회상했다.

그의 묘사에 따르면 A양의 왼쪽 얼굴은 칼에 찢겨 너덜너덜했고 가슴이 칼로 깊게 베어져 갈라진 사이로 갈비뼈가 보였다.

그는 “양 옆구리에 서너 차례 칼에 찔린 상처가 있었고 등도 여섯 번이나 칼에 찔렸다”면서 “간, 콩팥을 비롯해 거의 모든 장기가 칼에 난도질당했는데 겨우 심장 한 곳만 멀쩡했다”며 비통해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피해자 주변인들과 사건 당일 피해자와 함께 운동을 했던 B양의 진술에 따르면 이날 A양과 B양은 자신들에게 벌어질 끔찍한 사고를 예상하지 못한 채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용의자 이씨가 이들에게 달려들었고 B양은 다행히 몸을 피했지만 A양이 이씨에게 머리채를 잡힌 것.

A양의 비명에 놀란 B양은 이씨에게 달려들었고 이씨를 행동을 저지했다. 그러면서 곧바로 경찰에 신고한 뒤 자신의 아버지에게 전화해 도움을 요청했다.

용의자 이씨의 범행 수법은 가히 엽기적이었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피해자의 절규에도 그는 일말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A양의 멱살을 잡고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흉기에 여러 차례 찔린 A양이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이씨는 벤치에 앉아 칼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면서 이씨는 B양에게 ‘내가 니 친구를 죽였으니 빨리 사람들 불러와라’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신고를 받은 경찰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B양의 아버지가 먼저 도착했다고 한다. 쓰러진 A양을 병원으로 옮긴 사람은 지나가던 군인들이었다. 군인들은 A양을 엎고 병원으로 뛰었지만 결국 A양은 숨을 거뒀다.

이씨는 출동한 경찰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도 도망가지 않고 피묻은 옷을 입은 채 벤치에 앉아 있는 대담함까지 보였다.

그는 경찰 진술 과정에서도 뉘우치는 기색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정신분열증과 간질 등으로 정신지체 3급으로 알려진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세상이 더러워서 산책로 의자에 앉아 누구든지 찔러 죽이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또 “피해자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없다. 아무 이유 없이 죽이려 했다”고 말해 경찰을 경악케 했다.

“엄마가 미안해…”

사건 당일, 용의자 이씨는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양구읍의 한 잡화점에서 흉기를 구입했다. 이미 범행 장소인 레포츠 공원은 그에게도 익숙한 곳이었고 흉기를 품안에 넣은 채 범행대상을 물색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살인엔 뚜렷한 동기가 없다.

피해자 가족들은 오열했다. 특히 피해자의 모친은 현장검증 과정에서 “엄마가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면서 그는 “엄마도 함께 가겠다”고 오열했다.

A양의 장례에 참석했던 한 측근은 “아이가 눈도 못 감고 죽었다. 눈을 몇 번을 쓸어 내렸는데도 눈이 안 감기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대로 화장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찰 조사 과정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경찰이 출동한 시각이 조작됐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함께 있던 친구의 아버지가 먼저 도착해있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경찰이 비난을 피하기 위해 도착 시간을 조작하고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고 비난했다.

B양의 아버지 또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먼저 도착해있었고 당시 범인은 피묻은 옷을 입은 채로 벤치에 앉아 경찰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이에 대해 “전혀 사실 무근이고 이번 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의 안일한 대책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용의자 이씨가 범행을 저지르기 전, 같은 장소에서 물의를 일으켜왔기 때문이다.

실제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씨가 A양을 살해하기 전 이상행동을 보였던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기 전인 이달 중순께 양구군 문화체육회관 유리창을 파손하고 군청 주차장에 세워둔 차량 3대에 낙서를 하는 등 공공기물을 파손한 혐의로 경찰에 잡힌 바 있다.

사건 발생 이틀 전인 지난 4월24일에도 이씨는 같은 장소에서 산책하던 부녀자들을 덮치려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피해자의 유가족들은 “이미 이틀전에 예고된 범행을 경찰이 예방하지 못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당시 이씨는 정신질환자라는 이유로 귀가 조치됐었다. 하지만 이씨의 범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A양을 살해하기 이르렀던 것이다. 따라서 정신질환자 관리감독 부실과 양구지역 치안 부재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남아있는 의혹들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자 주민들의 불안도 극에 달했다. 현장 검증을 지켜보던 한 주민은 “말문이 막혀 어떤 말도 안 나온다. 너무 기가 막히고, 너무 황당해서…어떤 말로도 이 상황을 표현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처음에는 거짓말인줄 알았다. 저 사람(용의자)도 사람이라고 얼굴을 가려놨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주민들은 또 “겁이나서 저녁에는 될 수 있으면 안 나간다. 딱히 누구를 겨냥해서 한 것도 아니라서 더 무섭다. 애들이고 어른이고 거의 운동하러 안가는 걸로 알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어린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반면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런 강력범죄가 잊을만 하면 한번씩 재발하고 있는데다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용의자를 그냥 풀어줬다는 비난이 높아지고 있는 것.

때문에 이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해서는 특히 단호한 처벌을 통해 경각심을 일깨워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정신 질환자가 피의자일 경우 국가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돼 있다”면서 “시민들 스스로가 위험시간대와 위험지역을 피하는 수 밖에 없다”고 조언한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치안 문제, 특히 스스로 보호 능력이 떨어지는 여학생들이나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구체적인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이번 사건이 더욱 일깨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양구경찰서는 지난 4월28일 경찰서 공식 홈페이지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제목의 공개 사과문을 올렸다.

양구 경찰 일동은 “이 순간 어떤 말을 한들 마음에 상처를 받으신 유가족 및 친구 그리고 양구군민들의 슬픔과 분노에 위로가 되겠는가. 다시는 이런 불행한 사건이 없는 평온한 양구 만들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본 네티즌의 반응은 싸늘했다. 더욱이 ‘제대로 사과하라’, ‘사과문 한번 거창하게 썼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st35@sisa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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