記者는 기사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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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기자를 뭐라고 기록할까

제목을 보고 기자들은 속이 불편할 것이다. 화내는 기자도, 아무소리 안하는 기자도, 고개를 끄덕이는 기자도 있겠지. 무슨 욕을 하려고 저러나. 신경이 쓰이는 기자도 있을 것이다. 특히 조중동 기자들은 더 할 것이다.

생각은 마음대로다. 다만 인간이란 동물은 조금씩의 양심은 있어서 겉으로 아무리 아닌 척 해도 속으로는 양심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분명히 밝히는 것은 이 시대의 ‘왜곡편파언론’이라고 욕먹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향해 글을 쓴다는 것도 확실히 밝힌다. 문화일보는 화 내지 말라. 원래 <강안신문>은 어떤 논의에도 빼기로 했으니까.

조중동에 몸담고 살면서 ‘그래도 나는 아닌데’ 하는 기자가 있겠지만 ‘모진 놈 곁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는 속담을 떠 올리면 위로받기 바란다.


“난 너네 신문 무가지로 받아서 화장실에서만 쓴다. 질 좀 좋게 만들어라.”
“진실을 말해줘요. 제발. 광우병 쇠고기 당신들 먼저 드세요.”
“조중동 친일, 친미에 이어 친광우, 친mb의 한길을 걷는구나.”
“영원한 어둠의 권력, 조중동의 검은 내막 촛불로 밝히겠다”

기자들이니 알겠지만 요즘 조중동에게 쏟아지는 국민들의 매질이 매섭다. 아프다면 그 나마 다행이고 아니라면 여론조사 한번 해서 공표해 보라.

일제 때 기자라고 하면 지사 대접을 받았다. 자유당 독재시절 동아일보 기자라면 민주투사로 존경받은 사실을 동아일보 기자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더 문제다. 기자는 사실보도를 하고 진실을 알려야 되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돈과 권력의 시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잘 알겠지.

요즘 세상에 기자에게 지사가 되라는 것은 과욕이다. 기자도 처자식 먹여 살려야 하는 생활인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산다. 일제 때 애국지사나 독재시대 민주투사처럼 살다가는 굶어죽기 딱 맞는다. 국민들도 그렇게 살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사실만이라도 제대로 보도 하라는 것이다. 거짓말 좀 하지 말라는 것이다. 백을 흑이라고 왜곡하지 하지 말라는 것이다.

뭘 어떻게 보도했다고 시비냐. 따지면 말을 해 주지. 허나 일일이 다 말하려면 밤을 새워도 끝이 안 난다. 우선 조중동 기자들에게 광우병 관련 보도를 사실대로 했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참여정부 시절 농림부가 그렇게 반대하던 수입금지 주장이 불과 한 달 만에 수입 주장으로 바뀐 것을 제대로 보도했는가. 한나라당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한 것을 제대로 보도했는가. 입이 삼태기만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기자에게 선거보도 제대로 한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할까. 정청래 의원 관련 보도를 물으면 무슨 대답이 나올까. 웃을 것이다. 할 말이 없으면 웃지 않는가. 아는 조선일보 기자 중에 마주치면 얼굴부터 빨개지는 순진한 기자가 있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묵묵부답이다. 불쌍해서 피해준다. 먹고 살기 힘들구나. 측은하다.

한 가지 공개한다. 조선일보 불법판촉 신고로 2008년 4월7일 나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포상금 1,090,000원을 받았다. 불법판촉 내용은 신세계상품권 1만 원짜리 3장과 6개월 구독료 무료였다. 아직도 조중동의 불법판촉이 판치고 있으니 겁내지 말고 신고해서 돈 벌어 어려운 살림에 보태기 바란다.

중앙일보의 경우 삼성관련 보도 제대로 했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동아일보는 요즘 사옥 앞에서 광우병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서 촛불시위 군중들이 대놓고 욕하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테니 더 물어 볼 필요 없다.

조중동은 광우병 관련 기사를 안 쓰려고 피나는 노력을 하는데 딱하게도 조중동의 보도를 믿는 국민이 별로 없다. 정부가 조·중·동의 힘을 과신한 것 같은데 헛짚었다. 조중동이 편들어 주면 만사형통일 줄 알았겠지만 인터넷을 중심으로 생산되고 전파되는 여론의 흐름에서 조중동이 철저히 왕따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 겨우 알았을 것이다. 이제 조중동에게 기대지 말라.

조중동도 기사가 안 먹힌다고 화를 낼게 아니다. 과거 조중동의 정치적 왜곡은 그런대로 먹혔다. 정치인은 그 놈이 그 놈이고 모두가 도둑놈이라고 국민들이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우병은 잘못 짚었다. 바로 자신들의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천금같이 소중한 내 자식들이 광우병에 걸려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이 먹은 기자들은 알 것이다. 박정희 독재시대와 전두환 폭압시대의 기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말이다. 쓰고 싶은 기사 한 줄 못 쓰고 독재의 입맛에만 맞게 써야 살 수 있었다. 그런 중에도 정권에 밉보여 목이 잘리고 거리를 헤매다 병들어 죽은 기자들이 많았다.

목구멍 때문에 도리가 없었다고 할 것이다. 지금도 그런가. 민주화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던 80년대, 취재를 하던 기자들은 한겨레 기자의 이름을 팔았다. 땡전 뉴스를 전하던 방송사와 신문사의 기자들은 기자로 취급 받지 못했다. 그래서 <한겨레기자>라고 이름을 판 것이다. 팔기는 팔지만 얼마나 쪽 팔렸을까. 4.19때 서울신문이 불탔다. 5.18광주민주화 투쟁 때 광주 KBS와 MBC가 불탔다. 그 때 조선일보 김대중 기자가 광주시민을 폭도로 매도했다.

“저기 철조망 넘어 총을 든 복면의 폭도가 서성거리고 있다”

족보에 남을 명(?)기사다. 그는 아직도 명기사의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조선일보 지면을 누빈다. 요즘 이 나라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인가. 광우병 쇠고기 문제다. 백 만 명이 넘은 이명박 대통령 탄핵서명이다.

조중동 지면을 한 번만 훑어보라.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을 읽어보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 초등학생도 다 안다. 조중동의 기사와 사설, 칼럼을 읽으면서 몇 번인지 화장실을 찾아야 했다. 구역질 때문이다. 조중동을 화장실에서 쓰니 종이 질 좀 높이라는 네티즌의 글이 왜 올라오는가. 이런 현상을 조중동 기자들도 분명히 알고 있을 테니 그들의 심정은 지금 어떨까.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 MBC의 PD수첩, KBS의 <미디어 포커스>는 괴담을 전파하는 ‘바이러스’라면서 억지 위안을 삼을까.

‘조중동’의 ‘광우병 쇠고기’ 거짓 보도에 대해 비난여론이 들끓는다. <미디어 다음>의 ‘아고라’에는 동아일보를 폐간하자는 서명운동이 1만 명을 돌파했다. 뿐만 아니다. ‘조중동 불매’와 ‘조중동 안 보기운동'등 수많은 '조중동' 반대 서명운동도 잇따르고 있다.

이것이 전혀 근거 없는 시민들의 횡포라고 조중동 기자들은 생각하는가. MBC와 KBS,한겨레. 경향신문의 기자들이 괴담을 분별없이 보도하는 괴담 전파자들인가. 오히려 조중동 기자들은 자신들이 휘갈겨 쓰는 광우병관련 기사들이 ‘괴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언론이 정도를 팽개치고 권력과 이익에 눈멀어 국민을 배반할 때 그냥 내버려 두면 국민은 언제까지나 썩은 언론밖에 갖지 못한다. 동아일보의 말 바꾸기는 양심부재의 파렴치 수준이다. 조중동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광우병 우려’를 그토록 강조했고 동아일보는 불과 1년 전 한국인의 광우병 취약 학설을 소개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기자이던 이동관은 ‘부동산투기’에 대해서도 정론을 폈다. 그의 기사는 <동아일보> 1991년 5월 13일자에 실렸고 제목은 “재벌들 산간벽지 헐값 사재기”이다. 지금 이동관 가자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신분이 바뀌어 ‘부동산투기’의 중심에 우뚝 섰다. 이게 記者인가.

조중동 기자들이 중병에 걸렸다. 중증기억상실중이다. 심각한 질병이다. 국민은 알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 포탈에는 이런 글이 올라 있다.


“동아일보 폐간 서명이 1만이 넘으면 동아일보 기자 전원에게 메일을 보내 양심을 물을 예정이다. 답변이 온다면 게시물에 첨부하여 여러분께 알려 드리도록 하겠다.”
“3만 명이 넘으면 <동아일보>에 모든 광고주에게 광고 중단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내도록 하겠다.”
“자기가 쓴 기사를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것을 일상화 하는 혹세무민 언론을 이 땅에서 몰아내자”
“알권리 침해와 진실보도 왜곡,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폐간 이유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한국 언론에서 기자는 보도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얼마나 사실 보도를 할 수 있는가.

<코리아 타임스> 김연세 기자는 ‘1개월 청와대 출입금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청와대 출입기자단에서 내린 징계다. 이유는 무엇인가. 두 가지라고 했다. 이동관 대변인의 실명거론과 다른 한가지다.

“취재를 끝내고 나왔는데, 청와대 관계자들 말씀이 ‘이것은 농림수산식품부에서 발표할 것이니까 대통령 발언은 없었던 것으로 해 달라, 쇠고기 발언은 전부 빼 달라’고 요청했다”

“기자들이 반발하자 이동관 대변인이 기자실을 찾아와 한다는 말이 “쇠고기 관련해서 대통령께서 웃으시며 박수를 치고, 이런 것들을 국민들이 TV를 통해 보면 기분이 좋겠느냐. 좀 양해해 달라”고 했다”

이것이 징계사유다.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오바마와 힐러리 관련 도교발언은 보도하지 않은 기자들이 직무유기를 한 것이다. 기자들이 금과옥조로 주장하는 국민의 알 권리는 심심할 때 까먹는 땅콩인가.

청와대 기자들은 진정 김연세 기자가 출입금지를 당할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는가. 이동관 대변인의 실명거론이 그런 중징계 감인가. 이렇게 중징계를 하다가는 춘추관이 텅 빌까 걱정이다. 국익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발언으로 중징계 당한 김연세 기자가 오히려 이 시대를 바르게 사는 기자라는 생각이 든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겐 늘 압력과 부탁이 들어오기 마련이고 여기 순응하기 시작하면 국민의 눈과 귀는 가려지고 권력은 더욱 거리낌 없이 기승을 떨 것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치열하게 취재하고 대통령의 말과 행동 과 권력의 탈선을 소상하게 국민들에게 전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렇지 않으면 왜 기자가 필요한가.

과거 기자단의 전횡을 기자들 자신이 다 알고 있다. 기자단은 자유로운 취재와 보도를 위해 존재한다. 김연세 기자의 징계가 지자단의 존재이유와 합당한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청와대를 출입한다는 기자가 인터넷의 올린 글을 보자.

“이 글을 올림으로, 혹시 IP주소 추적당해 청와대 출입 영구정지 당할 수도 있고 회사에서 불이익 당할지도 모르지만, 여러분께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신다면 개의치 않고, 양심 있는 소수의 출입기자와 더불어 기자실에서 쫓겨나는 날까지 싸우겠다.”

비장한 각오다. 이승만 독재 시절, 동아일보 기자들이 치열하게 싸웠다. 박정희 독재 때도 광고탄압을 받았고 해직되어 길거리로 동댕이쳐졌다. 이제 그 시절의 기자 정신이 그립다. 동아일보 앞 청계천 소리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전기세가 아깝다. 동아일보 불 꺼”라고 소리칠 때 창가에 서서 내려다보던 그림자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리고 불이 꺼졌다.

“당신의 아들이 철이 들어 당신이 쓴 기사를 혹시 읽었을 때 참으로 우리 아버지가 공정한 시사를 쓴 훌륭한 기자였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압니다. 그러나 기자도 조직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지금은 논설위원이 된 조선일보 기자와 7년 전에 나눈 대화다. 조직은 기자의 정도를 이탈하게 만드는가. 삼성문제만 터지면 불려나가는 홍석현 사장을 바라보는 중앙일보 기자들의 심정은 어떨까. 지금도 “사장님 힘내세요.”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까. 조선일보 사주가 ‘밤의 대통령’이라는 호칭으로 불릴 때 조선일보 기자들은 ‘밤의 대통령’을 사주로 모시는 영광으로 가슴이 벅찼을까.

판사는 판결로 말하고 검사는 증거로 말하고 운동선수는 실력으로 말한다. 기자는 무엇으로 말하는가. 기사로 말한다. 흑을 백으로 말하지 않고 거짓을 진실이라 말 하지 않는다. 조중동은 최고의 신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최고의 발행부수를 말 할 수 있어도 차마 최고의 신문이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최고의 영향력이라고 자랑할 것인가.

이제는 아니다. 국민들의 광우병 걱정이 반미 죄파의 선동적 ‘괴담’ 때문이라고 그렇게 지면을 누비는데도 국민들은 끄떡도 않는다. 이제 조중동의 실체를 알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연민으로 가슴이 아프다. 좋은 머리로 좋은 교육 받고 힘들게 언론인이 됐다.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그러나 시선이 따갑다. 양심도 아프다. 얼굴에 가면을 쓰고 굽실거리는 정치인이나 공직자들 앞에서 영향력이 과시나 하면서 살아 갈 것인가. 양심의 채찍을 맞으며 기자답게 살 것인가. 선택은 자신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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