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오 칩거 마치고 정치 재개 시사, 사지의 MB구할 ‘장수’?
당 대표 출마·야전사령관 등 이명박號 막후 조정자 역할론 대두
“허허…웃고, 툭툭…털고, 일어나라! 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었습니다. 20일 동안 지리산에서 내가 잘못한 것만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산은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큰 비가오고, 눈바람이 휘몰아치고 구름이 산을 덮어도 지리산이 흔들리는 것을 본적이 있느냐. 산은 내게 흔들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냥 그대로 이재오로 살라고 했습니다. 비켜서지도 말고 꾀 부리지도 말고 거짓말하지도 말고 그냥 지금처럼 살라고 했습니다.”
이재오 의원이 20여 일의 칩거를 딛고 일어섰다. 총선 낙선 후 지리산에서 은둔생활을 했던 이 의원은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보내는 ‘지리산을 떠나면서’라는 편지로 현실 복귀를 알렸다.
패장의 편지, 그 ‘속내’
이재오 의원의 ‘패장의 편지’는 그동안의 일을 반추하는 동시에 앞으로 그의 행보를 슬며시 내비치고 있다.
그는 이 편지에서 “20일전 지리산의 신록은 서러움 그 자체였다”며 낙선 후 마음고생을 드러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내 잘못’ ‘흔들리지 말라’ ‘툭툭 털고 일어나라’라는 말을 통해 칩거를 통해 그간의 모든 일들을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할 준비가 되었음을 말했다.
또한 “패장은 군말을 하지 않듯이 장수는 전장을 떠나지 않는다. 정상은 언제나 오래 머물 수 없는 것. 남을 욕하지도 말고, 남을 폄하하지도 말고, 남의 욕설에 속상해하지도 말고, 비겁하지도 말고, 오만하지도 말고, 함박웃음 웃는 좋은 세상 만들 때까지 어려운 이웃과 어깨동무하면서 살겠다”고 말했다.
이중 “장수는 전장을 떠나지 않는다”는 말은 이 의원의 여의도 복귀를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또한 그의 복귀와 현 정치상황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정치권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한나라당 안팎에서 이 의원의 복귀를 바라는 목소리가 수면위로 떠오르는 찰나였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당선자 워크숍에서 한 의원이 그동안 은연중 금기시 됐던 이 의원을 거론한데 이어 이재오계로 분류되는 다른 의원은 “이 의원의 빈자리가 상당히 크다”며 “지지율이 급락하고 이렇게 정권 자체가 흔들리는 것은 이 의원의 그 동안의 역할에 비춰보면 일부 (이 의원의 공백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견해를 제기했다.
국정 난맥이 나타나고 있으나 친이계 주류측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그 원인 중 하나가 주류 구심점이었던 그의 부재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전장의 장수로?
현재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20%대로 하락했으며 한나라당에서는 여러 목소리가 혼재돼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지지율 하락으로 표현되는 이 대통령의 위기는 당과 청와대가 엇박자를 내며 수렁으로 빠졌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당과 청와대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점이 문제를 키웠다는 것이다.
때문에 당의 ‘행동통일’을 주문할 ‘구심점’로서의 역할과 청와대의 가교 역할을 바라는 이들에게 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당 내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던 이 의원의 복귀는 지지를 받고 있다.
반면 이 의원의 측근들은 이 의원이 당분간 정치권을 떠나있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처를 치유하고 ‘차기’를 준비할 힘을 키워 되돌아 와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 의원도 이 같은 의견을 수용, 당초 오는 29일 정도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존스홉킨스대 국제문제대학원으로 연수를 떠난다는 계획을 세웠다. 1년간 이곳에서 객원연구원 자격으로 국제정치와 외교, 북한 문제 등을 살피며 재충전의 기회로 삼는다는 것.
이 의원의 한 측근은 이 의원이 이를 위한 입학 허가서와 현지 숙소 등은 이미 준비를 마쳤으며 19일 미 대사관에서 비자 인터뷰를 하기로 스케줄을 잡아뒀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역할론과 연수를 두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분간 정치권을 떠날 준비는 마쳤지만 ‘역할’을 해줄 인물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 그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정치 상황이 복잡하다는 점, 학기가 8월에 시작돼 일찍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이 의원이 차기 당권경쟁, 원 구성들을 확인하고 떠나겠다는 의지를 보임에 따라 정치권은 그가 일정 역할을 할 것이라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부활’ 키워드를 눌러라
이 의원의 ‘부활’은 3가지 키워드로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 첫째는 7월 초로 예정된 차기 당권경쟁에 뛰어드는 것이다. 아직은 때 이른 접근일 수 있으나 현재 가시화되고 있는 친박 복당이 이뤄지고 이후 박근혜 전 대표가 친이계와 대립각을 분명히 할 경우, 친이를 대표해 박 전 대표와 맞설 수 있는 이로 이 의원이 꼽히고 있다.
경선과 대선에서 이 대통령을 대신해 박 전 대표와 대립각을 세웠던 이 의원이 ‘맞수’로 적격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견해다.
이 의원이 앞으로 나서지 않고 ‘당외 대표’ 혹은 최근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정치 특보’를 맡을 가능성도 크다. 자신이 직접 나서는 대신 ‘대리인’을 당 대표로 밀고 막후 영향력을 과시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은 이 의원이 이재오계와 소장파들을 움직인다면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다고 말한다.
실제 당 내에서는 7월 전당대회까지 각종 당직자 선거에 이 의원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차기 지도부의 큰 그림이 이 의원에 의해 그려지고 있다는 것.
오랜만에 여의도에 얼굴을 보인 이 의원은 각종 정치현안에 대해 “부재기위 불모기정(不在其位 不謨其政). 어떤 일에 책임되는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에 대해서 언급하지 말라는 뜻”이라며 “내가 끼어들 사안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또한 “5월까지는 17대 국회의원 역할을 열심히 하고 6월부터는 낙선한 당협위원장으로서 지역구 활동을 열심히 하겠다”며 외곽에서의 활동을 시사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의지와 뜻을 (국민들이) 잘 알 수 있도록 당과 정부가 합심해서 대처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그가 여의도에서 멀어진다고 해도 당 내 주류를 이명박계로 고정하고 당과 청와대가 단일대오를 형성케 하겠다는 의지로까지 해석되고 있다.
어느 때보다 ‘야전사령관’이 필요한 시점. 이 의원의 행보에 정치권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