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집단 성폭력 파장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대구발로 시작된 집단 성추행 사건은 강원도에서 발생했다. 국민들은 이 같은 내용을 접하자 아연실색하는 분위기다. 10대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성범죄인 까닭이다. 파장이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전국 초등학교에는 ‘성추행 사건’에 대한 비상경계령이 발효됐다. 시민단체들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4월 말 대구 사건을 처음 발표한 대구시민사회공동대책위(이하 공대위)는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은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음란물 모사 놀이에서부터 시작돼 성폭력으로 까지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시사신문>은 집단 성폭력 사건의 진상과 10대 성범죄 예방대책에 대해 집중 취재했다.
교육당국에 적색경보가 켜졌다. 대구 집단 성폭행 사건으로 전국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지 2주일도 지나지 않아 강원도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 탓이다. 사건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를 보이면서 교육당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반면 시민단체와 학부모 등은 수수방관한 교육당국에 강한 질타를 쏟아내고 있다.
실제 ‘집단 성추행·성폭행’, ‘음란물 모사놀이’는 대구 뿐 아니라 이미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5월12일 교육과학기술부가 경찰청과 각 시·도교육청의 성폭력 관련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세 미만의 성폭력 피해자가 최근 2년 새 44.3% 증가했다. 미성년 가해자 증가도 60.7%로 나타났다.
1년간 지속된 성추행 ‘쉬쉬’
지난 5월13일, 강원도가 충격에 휩싸였다. 강원 지역 일간지를 통해 모 초등학교 집단 성추행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어서다. 사건의 발단은 피해자의 학부모가 사건해결을 위해 직접 발벗고 나서면서부터다. 이 학부모는 학부모가 교육당국에 문제 해결을 요청했지만 몇 개월이 지나도 사건처리에 진전이 없자 직접 지역신문에 투고했다.
전교조 강원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인 A양(12)이 학교에 가기 싫다며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그러자 부모인 K씨(38·여)가 한 종교단체에 심리치료를 의뢰했고 이 과정에서 A양이 여러 명의 같은 반 남학생들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성추행을 당했다.
이번 집단 성추행은 무려 1년 동안이나 지속됐다. 성추행은 주로 영어, 예체능과 같이 전문 교사에 의해 이뤄지는 수업시간에 남자화장실에서 일어났다. 가해 학생 대부분 남학생이지만 이중에는 여학생도 있었다.
이들은 대범하게 수업시간에도 A양을 남자화장실 등으로 불러 옷 속에 손을 넣어 신체부위를 만지는 등 집단 성추행을 일삼았다. K씨는 곧바로 학교 측에 이 같은 사실을 알려 진상조사를 벌였으나 진술이 엇갈리는 등 이견이 표출되자 지난 1월7일 경찰에 고소했다.
A양은 홀어머니와 3자매가 어렵게 생활하며 학교로부터 급식비 지원을 받았다. 그런데 가해 학생들은 이를 놀림감으로 삼았고 피해 학생은 외톨이로 지낸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강원도의 모 중학교에 배정을 받은 A양은 주변의 시선을 견디다 못해 전학을 요구했고 K씨는 연고가 없는 울산 지역으로 이사까지 했다.
하지만 성추행을 당했던 A양은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중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여 만인 지난달 정신병원에 입원해 격리치료를 받고 있어 주위에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피해가족들은 “피해 사실을 이미 9월에 학교에 알렸지만 제대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사태가 이렇게까지 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분노했다.
이 같은 사실이 수면위로 나오자 5월13일 전교조강원지부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전교조는 성명서를 통해 “대구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집단 성추행 사건으로 온 국민이 충격에 휩싸여 있는 가운데 강원도에서도 이 같은 일이 벌어져 경악을 금할 길이 없다”고 성토했다.
전교조는 또 “미온적으로 대처한 교육당국은 관계자들을 엄중 문책하고 상처받은 학생이 마음 놓고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학교 측은 이에 대해 “당시 영어 전담교사가 몸이 아파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것 같다”며 “예상조차 못한 일이 벌어졌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사건은 현재 춘천가정법원 소년부에 넘겨져 가해학생들의 정신 상담을 마치고 5월초에 첫 공판이 진행, 6월 2차 공판을 기다리고 있다.
대구서만 벌써 두 번
사실 집단 성추행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불과 일주일 전인 4월30일, 대구 A초등학생 집단 성폭력 사태가 전국을 뜨겁게 달궜다. 하지만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주일도 지나지 않은 5월13일, 대구의 다른 초등학교에서 유사사건이 또 터져 나왔다. 같은 초교생에게 성폭력을 휘둘렀다는 게 주요 골자다.
학교 측으로부터 제보를 받은 경찰은 5월13일 사건 조사를 시작했다. 경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지역 모 초교 1∼4학년 남·여학생 4명이다.
이들은 지난 2월 낮 아파트 옥상에서 같은 학교 3학년 여학생에게 음란행위를 했다. 이번 사건 역시 동네 선후배 사이인 가해 및 피해 학생이 함께 어울리다가 음란물을 따라하는 놀이를 시작하면서 성폭력이 일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지난 4월30일 공대위의 기자회견을 통해 표면화된 대구 A초등학교 집단 성폭력 사태는 2007년11월20일경 한 학급에서 학생들이 성적인 행위를 따라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긴 교사가 음란물 보는 아이의 명단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조사 결과 동성간 성폭력 사건은 물론 소위 학교 ‘짱’을 비롯한 6학년 학생까지 연루돼 있었다. 기자회견에서 공대위는 “이 사건은 학교폭력에 성폭력까지 결합된 심각한 사건”이라고 전했다.
공대위는 “아이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음란물을 보고 따라하는 행위를 동성 간에 시작했는데 음란물에서 보이는 행위를 그대로 따라했다”며 음란물이 아이들에게 미친 악영향에 대해 분노했다.
학교를 상대로 성교육을 실시한 여성단체 성교육전문강사팀도 “아이들이 아무 관련이 없는 장기의 명칭에도 성기의 이름을 말하거나, 성교육 중에 지퍼를 열려고 하는 등 이미 정신적으로 이상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공대위는 “어른들의 왜곡된 음란물 문화가 아무런 여과 없이 아이들에게 노출돼 이런 심각한 사태가 일어났다”며 “포르노는 교과서가 되고 성폭력은 실제가 됐다. 우리 어른들은 모두 각자의 책임을 통감하며 모든 아이들이 피해자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성인들의 삐뚤어진 성문화를 꼬집었다.
공대위는 이어 “하루 빨리 진실을 제대로 밝히고 제도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교육당국의 대책을 촉구했다.
아이와의 대화만이 해결책
“요즘 학교에서 음란물을 보고 따라하는 놀이가 유행한다고 들었다. 딸아이도 어느 날 TV 뉴스를 보다가 ‘나는 안했지만 요즘 저거 안하면 왕따된다’고 하더라. 일명 ‘번섹’(번개섹스)이라는데 일부 노는 불량한 애들 사이에서만 일어난다고 하지만 언제 어디서 내 아이가 그 꼴을 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있는 것이고 교육 환경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끔찍하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이어 “판단력이 흐린 아이들이 음란물을 보고 음란 놀이 문화가 아이들 사이에서 번지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우리 아이들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음란물을 접할 수 있는 현실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성년의 비뚤어진 성행위 모사 놀이와 성범죄율이 왜 해마다 늘어 가는지에 대해 해바라기아동센터 최경숙 소장은 “우선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성인식과 의식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접하게 되는 음란물이 그 첫 번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포르노와 같은 영상물 또는 야한 소설에서 여성은 성적 학대를 당하고 인간 이하의 성적 도구로만 묘사되고 있어 아직 판단력이 흐린 어린 청소년들에게 왜곡된 성적 정체성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최 소장은 이어 “두 번째는 또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동 중심의 양육환경이 미비하다거나 아니면 부재인 경우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서 “결국 어른들이 조장한 왜곡된 성문화와 유해 환경이 어린 청소년들의 성의식에 독이 되고 있다”고 강변했다.
그럼 이 같은 미성년 성범죄를 예방하고 비뚤어진 아이들의 성의식을 바로 잡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최 소장은 이에 대해 “미연에 아이들이 음란물에 노출되지 않게 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음란물을 봤다고 해도 다그치거나 화를 내서는 안 된다”면서 “이미 음란물에 노출된 아이들은 이런 행위를 시행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생기고 때론 실행에 옮기기도 해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런 하고 싶은 욕구와 호기심을 어른들이 올바르게 해소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소장은 또 “만약 내 아이가 음란물을 보았는지, 봤다면 따라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지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평소 성에 대해 부모 스스로가 자유성을 갖고 성문화 및 음란물에 대해 자주 대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그는 “부모가 먼저 열린 마음을 갖고 뉴스와 같은 매체를 자주 봄으로써 아이와 토론식으로 대화를 접근 하는 게 가장 좋다”면서 “진솔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음란물의 유혹을 느낀다든지 성에 대한 궁금증이 있을 땐 언제든지 부모와 상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