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막작’으로는 자신의 특별전과 ‘마스터 클래스’를 위해 방한하는 러시아 여성 감독 스베틀라나 프로슈리나 (Svetlana Proskurina)의 2008년작 <최고의 날들 (The Best of Times)>이 상영된다. 그동안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러시아 예술영화의 계보를 이어오며 1990년 <우연한 왈츠(The Accidental Waltz)>로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수상하고, 올해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회고전까지 열린 이 노장 감독의 영화세계가 집대성된 작품이다.
올해 서울국제영화제가 마련한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인 ‘스베틀라나 프로슈리나 감독의 특별전’에는 특유의 세밀함으로 위태로운 인간존재의 모습과 내면을 묘사해온 감독의 데뷔작 <페어런츠 데이(Parent's Day)>부터 최근작까지 장편 전 작품 5편과 러시아의 거장 감독 알렉산더 소쿠로프에 대한 다큐멘터리 등 7작품을 상영한다. 6월9일 월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동국대 충무로 영상센터 충무로홀에서 ‘스베틀라나 프로슈리나 감독의 영화 세계’란 주제로 진행될 '마스터 클래스'는 그녀의 영화관과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고유한 연출 스타일 및 방법론에 대해 들어보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서울국제영화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국제경쟁부문인 ‘세네피아 08’ 섹션에는 부조리한 자본주의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들을 풍자한 <웰니스(Wellness)>, 한편으로는 저예산 SF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 <해피 뉴 라이프(Happy New Life)>, 싱글 테이크로 야심 찬 형식적인 실험을 시도하는 <왈츠(Waltz)>들을 비롯하여 다채로운 작품들이 관객들을 만난다.
거장들의 최신작들부터 해외 유수 영화제의 화제작까지 서울국제영화제가 지향하는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오버 더 시네마’ 섹션에는 폴란드의 거장 감독 안제이 바이다(Andrzej Wajda)의 신작 <카틴(Katyn>을 비롯해 에란 리클리스(Eran Riklis) 감독의 <레몬 트리(Lemon Tree)>, 아사프 베른슈타인(Assaf Bernstein) 감독의 <부채(The Debt)>등 묵직한 작품들이 포진된다.
장르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미디어 작품들과 창의적인 다큐멘터리들로 차별성을 부여해왔던 ‘이미지 독’ 프로그램은 올해 파졸리니, 앤디 워홀, 마이크 피기스, 패티 스미스 등 전복의 예술가들과, 헤어초크, 파스빈더, 빔 벤더스 등 뉴 저먼 시네마의 기수들, 유럽 SF만화의 독보적인 존재 장 지로, 헐리우드의 중국 영화 감독들 등에 관한 특별한 다큐멘터리들로 구성되어 서울국제영화제만의 개성을 창출할 예정이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궁금한 남미 영화, 그 중에서도 2000년대 이후 다시금 주목 받고 있는 칠레 영화의 현주소를 파악할 수 있는 ‘칠레 영화 특별전’도 마련했다. 칠레 외무부와 공동으로 기획을 한 이 프로그램에는 2007년 칠레 최고의 흥행작 <하트 라디오 쇼(Heart Radio Station)>를 들고 로베르트 아르티아고티아(Roberto Artiagoita) 감독이 방한해 관객들과 직접 만나는 자리도 마련된다.
<카이에 뒤 시네마>가 중요하게 추천하는 작품들 중 프랑스 영화계의 새로운 감독군이라 지칭되는 여성 감독들과 이민자 출신 감독들이 만든 작품들로 구성되어 프랑스 영화의 새로운 활력을 엿볼 수 있는 ‘프랑스 영화 특별전’도 국내 관객들을 찾아간다.
디지털 시대의 영화가 어떻게 생산되고 사유되는지를 보여주는 섹션 <HD 초이스>에는 분할화면 형식의 가능성을 한 단계 끌어올린 <트레이시: 파편들(The Tracey Fragments)>, 적나라한 신체이미지로 유명한 미술작가인 이보르 포돌착이 만든 첫 번째 영화 <시녀들(Las Meninas)> 등의 작품들이 HD 기술의 경계를 넓히는 동시에 디지털 영화의 미학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유수한 아시안영화제 프로그래머와 평론가들이 선정한 새로운 아시아 신작 영화들을 선보이는 국제 네트워크 프로그램인 ‘아시아 인 포커스’에는 실종과 감금에 관한 타이 호러 영화의 낯선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태국 감독 쳇차이 요드사라니 (Chadchai Yoodsaranee)의 <제 8의 날(The Eighth Day)> 등 자국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대중적인 작품들이 포함되어 흥미를 더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규모가 큰 온라인 영화제 중 하나인 서울국제영화제만의 프로그램인 넷 부문도 애니메이션, 단편 영화, 인터액티브, 뉴미디어 작업 등이 망라되어 풍성하게 준비되었다. 35개국 777편의 출품작 중 예심 및 본선 심사를 통해 국제 경쟁작 36편, 국내 경쟁작 28편, 웹 경쟁작 10편 포함 총 17개국 87편의 작품들이 선정되었다. 이 작품들은 제9회 서울국제영화제 개막일인 2008년 6월 5일부터 8월 15일까지 서울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www.senef.net)를 통하여 무료로 상영될 예정이다.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새로운 영상언어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미지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영상의 근본에 충실한 다채로운 작품들로 꾸려진 제9회 서울국제영화제의 옹골찬 프로그램이 뜨거운 여름의 시작을 알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