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3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청와대 안팎 어두운 그림자
지지율 20% 추락, ‘美 쇠고기 재협상’ 고함치던 민심 ‘탄핵’ 선회
“송구스럽다” 낮은 포복…인적쇄신은 NO, 비서실 조직 개편 착수
특사로 민심 안기, 한나라당 새 지도부와 당·정·청 보폭 발 맞춰
청와대 안팎에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앞날도 이 그림자에 가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형국이다.
밤 깊으면 새벽 온다
이 대통령의 ‘위기관리’가 시작됐다. 6월3일은 이 대통령의 취임 100일. 이 대통령이 노리는 것은 일보 후퇴를 만회할 2보 전진이다.
이 대통령은 이를 위해 몇 가지 정국 전환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그 첫째는 ‘민심’을 끌어안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국민담화문을 발표하며 ‘송구스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 진정성과 실효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지만 그가 고개를 숙임으로써 ‘대통령의 사과’를 인정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또한 담화문은 거칠 것 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던 그가 ‘소통의 장애’를 인정했다는 데 보다 큰 의미를 지닌다. ‘소통’이 부족했음을 알았다는 것은 향후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섬김의 정치’에서 민심에 더 귀 기울여 줄 것이라는 한자락 기대감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취임 100일을 기념하는 특별 감면 조치(준사면)를 단행키로 했다. 당초 특별사면이 거론됐으나 ‘국면전환용’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자 생계형 사범에 대한 가석방 기준 완화 등으로 조정됐다.
이번 특별감면 조치로는 가석방 대상자 중 형기의 80%를 채운 생계형 모범수감자들을 가석방시키는 방안과 도로교통법상 벌점 및 운전면허 관련 행정 처분자에 대한 구제조치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러한 방안이 확정될 경우 수백만명의 수혜자가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김대중 정부 때 553만명, 노무현정부 때 420만명 등 대규모 특별감면 조치 못지않은 수다.
한편 특별사면은 8월15일 광복절 특사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특별사면보다 특별감면이 국민들의 실생활과 맞닿을 가능성이 높다”며 “특별감면 조치가 취해지면 운전면허 정지의 경우 즉각 회복되며 면허가 취소된 운전자들은 운전면허시험 응시자격을 얻게 되는 한편 벌점은 삭제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가석방도 생계형 사범에 국한되며 정치인이나 경제인은 포함시키지 않을 것”이라며 “이는 철저히 특별감면 조치가 민심을 거스르지 않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지지기반 “이리 모여라”
이 대통령이 지지기반을 회복하려는 모습도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이 대통령의 ‘노사모’라 불리는 지지모임이 여의도 한 사무실에서 대대적인 모임을 갖는가 하면 이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등 지난 대선에서 지지의사를 밝혔던 인사들을 오랜만에 찾았다.
지난해 경선과 대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을 공개 지지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재는 한나라당 공천 후 이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에 공감했다. 김 전 대통령(YS)은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의사와 함께 친박계 인사였던 김덕룡 의원을 이명박 캠프로 끌어들였고 민주계 인사들의 영입에도 힘을 실어줬다. 김종필 전 총재(JP)도 충청권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 이 대통령을 지원했다.
그러나 공천 과정에서 이들은 철저히 배제됐다. YS의 측근뿐 아니라 민주계의 ‘몰살’이라는 결과는 YS로 하여금 ‘성’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는 “한나라당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여과없이 드러냈다. JP도 “많이도 아니고 측근 한두 사람의 공천을 부탁했는데 그것조차 외면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 비공개 회동으로 YS를 만났다. 이 대통령이 YS를 찾은 것을 두고 정치권의 해석이 분분했으나 세력을 굳건히 하기 위해 물밑작업인 것으로 좁혀졌다.
YS는 신임 원내대표 인사차 찾은 한나라당 홍준표 신임 원내대표와의 회동을 통해 이 대통령과의 회동이 만족스러웠음을 드러냈다. 홍 원내대표가 회동 후 “김 전 대통령께서 지난 총선 때 서운한 감정이 좀 있었으나 다 해소됐고 앞으로 한나라당이 정말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겠다는 말을 했다”고 전한 것.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새 정부 출범 후 소원해진 각계 핵심 지지층인사들과의 만남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하며 “전통 지지층을 다 잡는 것이 새 정부의 뿌리를 깊게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4·9 총선을 앞두고 잠정 중단했던 구 정권 인사에 대한 정리 작업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공공기관장들의 교체 인선을 두고 청와대 내부에서 “참여정부 출신 인사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까닭이다.
정치권은 참여정부 탄생에 기여했던 인사들의 모임인 ‘청맥회(靑脈會)’의 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중 정부 산하 공기업이나 유관 단체 대표, 감사, 이사 등에 자리를 잡으며 노 전 대통령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정권교체 후에도 각 기관이나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으나 이 대통령이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곳에 자기 사람을 심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 것.
여권 한 관계자는 “각 정치현안에 이 대통령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 줄 인물들이 절실하다”며 “전면에서 활약하던 최측근들이 각각의 이유로 물러서게 된 이상 이번 공공기관장 교체는 이 대통령의 측근을 전면으로 불러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변화 없이는 국민 눈초리 고정

인적쇄신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이 대통령도 인적쇄신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고 청와대도 “장관 교체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지만 한나라당은 ‘조기 내각’에 힘을 싣고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쇠고기 파동으로 민심이 등을 돌렸다”면서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무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국회의원들이 장관으로서 행정부에 많이 진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태희 정책위의장도 “지금 상황이 워낙 안 좋다. MB가 정리하려고 하는 분위기”라면서 “주위에서 (인적쇄신에 대한) 건의가 워낙 많다“고 전했다.
차기 한나라당 대표로 유력한 박희태 의원은 “개각을 단행할 경우 인재 풀이 많은 국회에서 입각돼야 한다”면서 정치인 장관을 기용해 정국을 수습해야 한다는 주장했다.
정국 전환의 카드로 개헌 논의도 꿈틀대고 있다. 강재섭 대표와 홍준표 원내대표가 개헌 필요성을 제기한 데 이어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 개원연설을 통해 개헌 논의를 제의하는 방안이 청와대 내부에서 검토되고 있다.
개헌 논의는 이미 17대 국회에서 여야간 상당한 공감대가 이뤄진 만큼 새삼스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상황 반전을 위한 정략적 움직임으로 비춰질 것에 대한 우려도 크다. 야권 일각에서는 “개헌 논의는 정치권 갈등이 최소화된 상황에서 가능한 얘기”라며 “청와대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햇살” VS “비 내려”
거리로 몰려나온 시민들로 암울한 취임 100일을 맞고 있는 이 대통령에게 그의 최측근 인사는 바다를 건너며 앞으로 햇살이 비칠 것이라 덕담했다. “정권을 찾은 지 3개월이기 때문에 다소 부족한 점도 있겠지만 지금이라도 심기일전해 힘을 합쳐 국민의 눈으로 보고, 전심전력하면 곧 좋아질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는 잘 할 일만 남았으니까 열심히 할 것이다. 지지도는 항상 떨어지면 올라가는 일밖에 없다”고 말한 것.
그러나 아직 비가 그치지 않았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이 대통령에 대한 불신을 넘어 탄핵으로까지 목소리를 높이게 한 미국산 소고기 수입문제에 일방적인 장관고시를 강행, 국민과의 소통을 스스로 져버렸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촛불집회에 대한 강경대응도 반발을 부르고 있다.
잠시 반등의 기미를 보였던 이 대통령의 지지도도 하락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주간 정례조사 결과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상승세로 돌아선지 한주만에 다시 5.3%p 하락, 24.3%를 기록했다. 반면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는 9.6%p 상승한 69.8%로 나타나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